[법의 날 특집] 박종훈 대전고등법원장 "법관의 제1 덕목, 공정과 경청"

황해동 기자,정인선 기자 2024. 4. 2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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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는 '말을 열심히 듣는 사람'"…경청 강조
"재판 지연 문제 해결 위해선 법관 증원 필수"
"재정신청 장기미제사건 배당받아 직접 처리도"
대담=황해동 디지털뉴스3팀장
박종훈 대전고등법원장은 "법관의 제1 덕목은 공정과 경청"이라며 "재판 과정은 공정해야 하고, 법관은 당사자들의 주장을 경청해야 한다"고 소신을 말하고 있다. 김영태 기자

'공정과 경청'. 제61회 법의 날(4월 25일)을 앞두고 만난 박종훈 대전고등법원장은 '법관의 제1 덕목'을 '공정과 경청'이라고 했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신념 아래, 실체적 판단은 공정해야 하고, 공평한 기회가 부여된 뒤에는 '경청'이 따라줘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부산에서 장기간 법관으로 근무했던 그는 지난 2월 5일 대전고등법원장으로 부임하며 대전과 첫 연을 맺었다. 1993년 3월 수원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 창원, 부산 등을 거쳐 올해 대전고등법원장으로 올 때까지 무려 30여 년간 법(法)과 원칙에 따라 법정을 지켜왔다.

박 법원장은 "법관은 기본적으로 재판을 주재하는 심판자의 역할을 한다"면서도 "재판 결과가 당사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만큼,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은 공정해야 하고, 당사자 모두에게 공평한 주장·입증 기회를 부여한 뒤 법관은 이를 경청해야 한다"며 법관의 덕목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잘 들어야 한다. 판사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말을 열심히 듣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의 경력이 말해주듯, 그는 각급 법원에서 민사·형사·행정 등 다양한 재판 실무를 경험한 정통 법관이다.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됐던 사건도 두루 맡았다. 박 법원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재판을 묻는 질문에 '빛 공해' 사건을 꼽았다.

그는 "통유리로 된 신축 건물에서 발생한 태양반사광으로 고통을 받던 인접 거주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했던 소송이었다"며 "태양반사광으로 인한 생활 방해의 정도가 사회 통념상 일반적으로 참아내야 할 정도를 넘는 것이라면, 민사상의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선례가 없는 첫 사건이어서 많은 고심을 했다"며 "요즘에는 태양반사광 외에도 '인공조명'으로 인한 야간 빛 공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형사 재판 중에서는 '간병 살인'을 꼽았다. 장애가 있던 딸을 40년 이상 지극 정성으로 돌보던 70대 노모가 오랜 간병으로 인해 우울증을 앓게 되고, 결국 딸을 살해한 뒤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던 사건이다.

그는 이 재판에 대해 "우울증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인정하고, 피고인의 나이와 건강 상태, 지난 40년간의 살아온 과정 등을 참작해 2022년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사건"이라며 "간병 살인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어, 이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정신적·신체적 장애나 중한 질병으로 인해 보호가 필요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 가족의 짐을 덜어주는 공적 부양과 보호가 더 강화돼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법원장으로 부임했지만, 그는 아직 주요 사건들을 배당받아 직접 처리하고 있다. '재판 지연' 문제가 사법부의 당면 과제 중 하나로 떠오르면서, 전국 각 법원에선 일선 법원장이 재판을 직접 진행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박 법원장은 "재판 지연을 우려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잘 듣고 있다"며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사건 수가 늘어나고, 개별 사건의 양적·질적 난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점이 큰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관의 증원이 필수적이지만, 이는 국회에서 '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 개정이 선행돼야만 실현될 수 있다"며 "현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후, 법원이 할 수 있는 문제 해결 방법을 다각도로 강구했고, 그 일환으로 올해부터 법원장이 직접 장기미제 사건을 재판하기로 했다"고 했다.

이어 "대전고등법원의 경우, 그간 구성원들의 헌신과 노력 덕분에 장기미제사건이 적정수준에서 관리되고 있는 편이지만,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불복하는 재정신청 사건이 폭증하면서 이에 따른 장기미제사건이 많이 늘어난 상황"이라며 "법원장인 제가 재정신청 장기미제사건들을 배당받아 직접 처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판결문 작성에 소요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도록 판결문 간이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법관 증원'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법원장이 구원투수로 나선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법관 증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다른 사법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법관 1인당 사건 수가 매우 많은 편"이라며 "과거에 비해 사안이 복잡한 데다가 기록이 방대해지고, 당사자의 주장도 훨씬 많아져 사건 심리부터 판결에 이르기까지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법관이 증원되지 않으면 재판 지연을 피할 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며 "많은 국민들이 원하는 회생법원의 추가 신설이나 노동법원, 해사법원 등 전문법원의 신설을 위해서도 법관 증원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고등법원은 현재 청주 원외재판부를 포함해 총 26명의 법관들이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박 법원장은 "재판 지연 해소를 위한 제1심 법원들의 노력으로 사건처리 속도가 빨라지게 되면 항소되는 사건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더 신속하고 충실한 재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대전고등법원도 향후 법관 증원과 재판부 증설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은 임기 동안 법원장으로서의 소소한 각오도 전했다. 그는 "법원장은 법관들을 비롯한 소속 구성원들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고 신속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재판·민원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편안한 근무 여건을 조성하고, 밖으로는 법원 구성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라면서도, "국민들이 믿고 편안한 마음으로 찾아올 수 있고, 구성원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근무할 수 있는 법원이 되도록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후배 판사들에겐 "초심을 지켜라. 변하지 말라"고 메시지를 내놨다. 그는 "10년에 한 번씩 재임용될 때마다, 법관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의 '초심'을 생각하곤 한다"며 "초심을 지킨다면 (법관으로서) 절반 이상은 성공한 것"이라고 전했다.

끝으로 "이곳에 온 지 두 달여 만에 대전의 매력에 푹 빠져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며 "과학의 중심지이자 국가 행정의 중심지인 대전·세종·충청 지역에서 좀 더 나은 사법 서비스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정리=정인선 기자

박종훈 대전고등법원장은1963년생으로, 부산진고와 서울대 공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9회 사법시험(사법연수원 19기)에 합격했다. 1993년 수원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지법, 창원지법 통영지원장, 부산지법 수석부장판사, 부산고법 수석부장판사 등을 역임한 후 올해 2월 대전고법원장에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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