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됐으니 우리도”…지리산 케이블카 재추진 ‘논란’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2024. 4. 2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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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등 지자체 4곳, 환경부에 설치계획안 다시 제출
2010년대부터 추진돼 환경부 수차례 반려로 무산
‘지역경제 활성화 계기’ vs ‘다시 지역 갈등의 씨앗’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지난 30여년 간 지역의 '뜨거운 감자'였던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의 규제완화 움직임에 발맞춰 지리산국립공원 인근 4개 지자체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세우며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거나 검토하면서 난개발과 생태계 파괴 논란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지리산케이블카 재추진이 관심을 끄는 것은 해당 사업이 수십년 동안 환경부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면서 사실상 포기상태에 있던 묵은 사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악산 케이블카와 제주 2공항, 흑산공항 건설이 잇따라 환경부 문턱을 넘으면서 지자체들의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40여년 만에 매듭지어진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논란이 지리산으로 옮겨 붙은 셈이다. 이에 개발과 보전을 둘러싼 논쟁도 한층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지자체는 관광객 유입과 일자리 창출로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많은 지역민이 원해서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환경파괴 등을 이유로 설치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리산 케이블카 추진이 지역 경제와 관광산업 활성화의 계기가 될지, 또 다시 지역 갈등의 씨앗이 될지 눈길이 쏠린다.

지리산 전경 ⓒ지리산국립공원

지역에선 '주민 원하는 숙원사업'

지리산권 지자체(구례·남원·경남 산청·함양)들은 현재 케이블카 설치를 두고 각 지자체별로 노선을 정해 환경부에 신청하고 있다. 환경부가 지난해 2월 설악산 국립공원에 오색케이블카 신규 설치 사업 환경영향평가를 조건부로 통과시키면서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사업도 재개될 동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현재 케이블카 노선을 두고 경쟁하는 전남 구례군, 경남 산청군과 함양군, 전북 남원시가 단일 노선에 합의한다면 새로운 케이블카 계획이 추진될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이에 그동안 여러 차례 추진하다 무산돼 수면 아래에 있던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이 강하게 재추진될 전망이다.

구례군은 지난해 12월 환경부에 산동면 온천관광단지부터 성삼재 휴게소(3.65㎞)구간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안을 다시 제출했다. 구례군은 1997년부터 2014년까지 네 차례 케이블카 설치를 시도했지만 모두 무산됐다. 환경부가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사업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그동안 중단됐던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구례군은 지리산권 상생의 첫걸음으로 케이블카 설치를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지방소멸 대책의 일환으로 속도를 낼 계획이다. 만약 이번에도 정부가 막을 경우 행정소송도 불사한다는 각오다. 

전남도도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다. 김영록 전남지사도 지난해 9월 구례에서 열린 도민과의 대화 자리에서 긍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전남도 또한 별도의 TF 팀을 꾸려 적극 지원키로 하고, 구례군, 전북·경남도와 함께 공동 협력 체계를 구축해 논의하고 있다. 환경부가 반려할 당시 경남·전남·전북 등 지리산국립공원이 속한 3개 광역지자체, 5개 시·군이 합의해 하나의 계획을 수립하는 전제가 없다면 지리산케이블카 설치는 검토조차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을 고려한 조치다.

경남 산청군도 단독으로 지난해 6월 지리산케이블카 사업 추진을 위해 공원계획 변경안을 환경부에 제출했다. 경남에서 네 번째다. 산청군이 환경부에 제출한 케이블카 설치 구간은 2017년 산청·함양군이 공동 추진해 무산된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함양군 마천면 추성리를 잇는 10.5㎞ 구간에서 크게 줄어든 시천면 중산리에서 장터목 인근 간 3.15㎞ 구간이다. 남원은 지난해 12월 케이블카 설치 사업 구상 및 타당성 용역을 시작했다. 함양군도 관련 용역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들 지자체가 지리산케이블카 사업을 다시 꺼내든 배경에는 현 정부 들어 환경에 대한 규제가 상당히 완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립공원 내에 있는 흑산도에 공항이 건설되고, 지리산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던 국립공원인 강원도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가 눈앞에서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힘 입어 지자체들의 케이블카 건설 움직임이 더욱 빨라지는 모양새다. '유력 후보지'는 설악산과 함께 긴 케이블카 추진 이력을 지닌 지리산이다. 그간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이 어려웠던 까닭은 국립공원이기 때문이다. 1967년 우리나라 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은 산청과 함양, 하동, 전남 구례, 전북 남원 등 3개도에 걸쳐 있다. 해당 지자체들은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그동안 적극적인 케이블카 유치 각축전을 벌여왔지만 까다로운 환경규제에 막혀 지금껏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리산케이블카 설치사업이 '해묵은 숙원사업'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놓자는 공식 제안은 2010년대부터다. 환경부는 지난 2012년 구례, 남원, 산청, 함양이 추진했던 케이블카를 부결시켰고, 2016년과 2017년에는 경남도가 추진한 케이블카를 반려했다. 이에 경남도는 2019년 사업 중단을 결정했다. 2022년에는 구례군이 단독으로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다시 반려했다. 당시 환경부는 반달가슴곰 보호구역 인근이라는 점과 4개 지자체 단일화 노선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 등을 반려이유로 밝혀 여지를 남겼다. 

환경부가 낼 수 있는 답은 동의(조건부 동의), 부동의, 반려이다. 동의면 사업이 추진되고 다른 답이면 사업이 사실상 무산된다. 환경부의 케이블카 설치에 따른 정책이 바뀌지 않은 이상 어려울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환경부는 지난 2012년 자치단체 간 합의에 의한 단일안이 나오지 않으면 지리산 케이블카 설차 사업을 검토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환경부는 2012년과 2017년 부결 당시 정책이 현재도 변화된 것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사업 추진이 쉽지만은 않다는 분석이다.

30여년 간 '자연보존' vs '개발' 충돌 

지리산케이블카 설치사업을 두고 반달곰 등 지켜야 할 동식물이 사는 천혜의 자연을 보전해야 한다는 주장과 자연을 활용해 낙후한 지역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맞부딪친다. 케이블카가 산을 걸어 오르는 등산객과 교통량을 줄여 결과적으로 환경피해를 줄인다는 주장도 있지만 케이블카 설치 후 탐방객이 늘어난 덕유산국립공원 반례도 존재한다.

케이블카가 장애인과 고령자 국립공원 접근성을 높인다는 주장엔 국립공원 무장애 탐방로(65개 구간 55.43㎞)가 전체 탐방로(617개 구간 2011㎞) 2%에 불과하고 공원까지 이동편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는 상황에서 케이블카 설치를 위해 교통 취약자를 끌어들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육상국립공원 케이블카는 1989년 허가돼 1997년부터 운영된 전북 무주군 덕유산리조트와 덕유산 설천봉을 잇는 곤돌라다. 이 곤돌라는 정부가 애초 국립공원 케이블카 시범사업을 추진한 명분인 '답압(踏壓·밟는 힘) 피해 예방'을 반증하는 사례다. 답압 피해는 탐방객이 산을 밟아서 생기는 피해를 말한다. 국립공원공단이 2015년 발표한 '국립공원 탐방로 이용압력지수' 1위가 곤돌라 도착지인 덕유산 설천봉에서 산 정상인 향적봉까지 구간이다.

광주환경운동연합 등 지리산 권역에서 활동하는 환경단체 134곳이 22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지리산 케이블카 재추진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광주환경운동연합

환경단체 "자연에 크게 부정적…재추진 중단하라"

환경단체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광주환경운동연합 등 지리산 권역에서 활동하는 광주·전남·경남지역 134개 환경단체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 단체들은 22일 광주시 동구 5·18민주광장과 경남도청 서부청사에서 동시에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이 살고 있는 지리산 케이블카 재추진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단체들은 "지리산권 4개 지자체의 케이블카 계획은 정상 지향 산행문화를 부추기고 반달가슴곰 등 야생 동물의 삶에 악영향을 미친다"면서 "보호 가치가 높은 식생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기존 탐방로와의 연계를 피할 수 없고 경관을 훼손하고, 지역 간 갈등을 유발하는 등 너무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리산과 지리산의 생명들을 지키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할 것"이라며 "지리산권 지자체들은 생태 환경과 공익적 가치를 훼손하고 경제적 타당성도 없는 케이블카, 산악열차, 골프장 건설 등을 포기하라"고 촉구했다. 또 "보전 가치가 높은 자연보존지구까지 케이블카를 건설할 수 있게 한 자연공원법이 문제"라며 "22대 국회는 케이블카 악법을 개정해 국립공원의 생태적 건강성과 생물종 다양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현재 육상국립공원 케이블카는 덕유산 곤돌라와 설악산 속초~권금성 케이블카, 1980년 건설된 내장산국립공원 케이블카까지 총 3개다. 울산 울주군에서는 영남알프스에, 대전에서는 보문산에, 대구에서는 팔공산 갓바위에, 경북 문경시에서는 주흘산에 케이블카 설치가 추진되고 있다. 지리산은 국립공원 영역 밖에 산악열차(남원시) 설치 사업 등이 추진되면서 환경단체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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