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자연 영화] 10대 문제아와 60대 고집불통을 품어준 숲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2024. 4. 2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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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특별한 숲속 여행'

유엔 전문기구인 유네스코UNESCO(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는 전 세계에 걸쳐서 3대 보호지역을 설정한다. △세계유산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이다.

우리 귀에 익숙한 세계유산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과 지구의 역사를 잘 나타내고 있는 자연유산, 그리고 이들의 성격을 합한 복합유산으로 구분된다.

생물권보전지역은 보전의 가치가 있는 지역에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국제적으로 인정한 육상 및 연안 생태계 지역을 말한다. 지정되면 해당 지역은 무분별한 개발이 억제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설악산, 제주도, 신안 다도해, 광릉숲 등 10여 곳이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세계지질공원은 유네스코가 인증하는 지질공원으로, 미적 가치와 과학적 중요성 및 고고학적·생태적 가치를 지닌 곳을 말한다. 지질공원Geopark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류와 동식물의 터전이 되는 지질과 경관을 보존하고자 만든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경북 청송군, 무등산권, 한탄강 일대 등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지난해 5월 유네스코는 18곳의 새로운 세계지질공원을 지정했는데, 전북 서해안 일대가 국내 다섯 번째 세계지질공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수백만 년의 지질학적 역사를 가진 이곳은 갯벌 퇴적층이 매우 두껍고 홀로세 퇴적물이 풍부하다고 한다.

당시 뉴질랜드의 와이타키 화이트스톤 지질공원Waitaki Whitestone Geopark이 뉴질랜드 최초이자 오세아니아 유일의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공식 지정됐다. 이에 따라 뉴질랜드는 유네스코에서 인증 받은 48개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영화 <나니아 연대기>(감독 앤드루 애덤슨, 2005)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진 면적 7,200㎢의 이곳은 석회암 절벽, 빙하 계곡, 고대 해양 화석 등 다양하고 장엄한 지질 지형으로 유명하다.

<반지의 제왕>과 <호빗>의 촬영지

천혜의 자연을 가진 뉴질랜드는 여러 영화의 촬영지로 이름난 청정 국가이다. 무엇보다 뉴질랜드에서 100% 제작된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감독 피터 잭슨) 3부작과 <호빗> 3부작이 있다. J. R. R. 톨킨의 동명 고전 소설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이 시리즈는 뉴질랜드 전역에 걸쳐 150여 곳에서 촬영했다. 험준한 절벽과 기묘한 석회암, 그리고 깊은 원시림 등이 화면을 채우며 작품의 감동을 효과적으로 증폭시켰다.

뉴질랜드의 깊은 덤불을 배경으로 한 <내 인생 특별한 숲속 여행Hunt for the Wilderpeople>(감독 타이카 와이티티, 2016)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주목받고 있는 뉴질랜드 출신 감독의 작품이다.

수도 웰링턴에서 태어난 타이카 와이티티(49)는 배우와 제작자를 겸하고 있는 다재다능한 감독이다. 블록버스터 <토르> 시리즈인 <토르: 라그나로크>(2017)와 <토르: 러브 앤 썬더>(2022)의 감독으로 눈에 익지만, 사실 그의 대표작은 블랙코미디 작품인 <조조 래빗Jojo Rabbit>(2020)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엄마(스칼렛 요한슨)와 단둘이 살고 있는 10세 소년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의 이야기를 특유의 유머와 풍자로 다룬 이 영화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각색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감독 스스로 히틀러 역을 맡아 호연을 펼치기도 했다.

독특한 그의 이름 '와이티티'는 마오리족 출신인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다. '타이카'는 마오리어로 '호랑이tiger'를 뜻한다고 한다.

<내 인생 특별한 숲속 여행>의 소년 주인공도 마오리족 출신으로, 그의 여러 작품에서 마오리족의 문화를 반영한 장면을 볼 수 있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의 '숲속 동거'

영화는 뉴질랜드의 깊은 숲속으로 난 도로를 경찰차 한 대가 유유히 달리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차에는 아동복지국 직원 '폴라 홀'(레이첼 하우스)과 경관, 그리고 위탁가정에 맡겨질 '리키 베커'(줄리안 데니슨)가 타고 있다.

이들은 숲속 외딴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헥터 포크너'(샘 닐)와 '벨라 포크너'(리마 테 와이타) 부부의 집에 도착했다. 폴라 말에 따르면 13세 소년 리키는 '골칫덩어리'이다. 반항, 절도, 침 뱉기, 돌 던지기, 물건 걷어차기, 방화, 배회, 벽에 낙서하는 그라피티까지 어느 곳에서도 적응 못 하고 계속 말썽만 피운다는 거다.

아동복지국의 폴라와 달리 벨라는 자기를 '이모'라 부르라면서, 이제 자기 집에 왔으니 모든 게 괜찮을 거라며 리키를 반겼다. (원어가 '앤트aunt'이니 고모, 이모, (외)숙모, 아줌마, 모두 가능하겠다. 호칭 '벨라 이모'는 자연스러운데, '엉클uncle' 헥터를 '헥터 이모부'라 번역하게 돼 적잖이 어색하다) 벨라와 달리 헥터는 무뚝뚝하고 쌀쌀맞게 리키를 대했다.

벨라의 환대에도 불구하고 도시에서 갑자기 첩첩산중으로 오게 된 리키는 밤사이 도망을 시도하지만, 다음날 집에서 겨우 200m 떨어진 곳에서 자고 있다가 벨라에게 발견된다. 총쏘기를 가르쳐 주고 자신을 위해 생일 케이크와 멋진 노래를 불러 주는 벨라 이모 덕분에 리키는 서서히 마음을 열고 이곳에 잘 적응하게 된다.

선물로 받은 사냥개 '투팍'과 숲속을 뛰어다니며 행복하게 지내던 어느 날 벨라 이모가 갑자기 사망(아마도 심장마비)한다.

아동복지국은 벨라가 사망하자 다시 리키를 데려가겠다는 편지를 헥터에게 보낸다. 글을 모르는 헥터를 대신해 편지를 읽어 준 리키는 결국 자신이 소년원에 보내질 거라 여기고는 개를 데리고 혼자 무작정 숲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곧 먹을 게 동나고 혼자라는 무서움에 집으로 돌아가려 숲속에서 헤매던 때에 그를 찾아 나선 헥터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헥터가 발목을 다치게 되고, 상처가 아물어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숲속에서 야영을 하며 함께 지내게 된다.

그 사이 리키를 데리러 온 아동복지국 폴라는 헥터에 의해 리키가 유괴됐을 수 있다며 경찰과 함께 이들을 뒤쫓기 시작한다. 사실 헥터는 젊은 시절에 술 먹고 싸우다가 살인을 저지르고 복역한 이력이 있다.

30만 평 규모의 덤불에서 리키와 65세 헥터는 물고기를 잡아먹고 민가에서 옷과 음식을 훔치는 등 요령 있게 숲속 생활을 이어간다. 평소 하이쿠(짧게 쓰는 일본식 시) 짓기를 좋아하는 리키는 말한다.

"나무, 새, 강, 하늘/ 헥터 이모부와 가는 것/ 영원히 사는 것."

그러는 동안 리키와 헥터의 소식이 방송과 신문을 타면서 현상금이 걸린다. 둘은 서로 의지하며 절대 잡히지 않기로 다짐한다.

헥터: 벨라가 이 모험을 참 좋아했을 거야, 그렇지?

리키: 왜 아이를 못 낳았어요?

헥터: 그냥 못 낳았어. 내가 못 낳았지.

리키: 불공평하네요. 어떤 사람은 아이를 가질 수 없고,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아이를 원하지 않고요. 우리 엄마처럼요.

헥터: 아니야. 네 엄마도 너를 원했어. 아마 그냥 어렸을 거야. 너를 키울 수 없었겠지. 그래도 너를 사랑했을 거야.

리키: 아닐 거예요.

헥터: 모르지. 너는 좋아할 만한 아이거든….

리키: 잘 자요, 이모부.

헥터: 잘 자렴.

자연의 위대한 포용력과 치유력

악당 사냥꾼 3인조에게 잡힐 뻔하고, 숲속 대피소에서 죽어가던 공원 경비원을 구하기도 하면서 겨울까지 넘기던 그들은 드디어 발각돼 경찰 특공대와 헬기까지 동원되는 소란 끝에 체포된다.

시간이 흘러 리키가 감방살이를 마치고 나온 헥터를 찾아오고, 감옥에서 글을 배운 그가 하이쿠를 들려준다.

"나랑 뚱뚱한 아이/ 도망 다니고, 먹고, 책을 읽었지/ 아주 최고였지."

의기투합한 이들은 다시 숲으로 향한다.

영화는 보기만 해도 피톤치드 향이 느껴지는 뉴질랜드의 깊은 숲을 충실히 담았다. 천혜의 자연이 시각적인 만족과 힐링을 준다. 숲속 생활을 통해 10대 문제아와 60대 아웃사이더 노인도 가족이 될 수 있음을 경쾌하게 보여 줌으로써 감독은 자연의 포용력과 치유력에 대한 믿음을 효과적으로 펼친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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