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명칼럼] 서울, 원망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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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재래시장 근처의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시장과 주변 동네를 걸었다.
시장이 있는 지방 도시에서 자라 그 풍경에 익숙한데 기억과 큰 차이점 하나를 발견했다.
총선 전에 여당은 서울 위성도시의 서울 편입을 공약했는데 그것은 요컨대 '너희가 원한다면 서울로 불러줄게' 같은 말이었다.
이들의 기득권 행사로 지방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그럴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서울 진입을 열망하게 되는 구조가 1000년 전에 이미 있었고 이후로 죽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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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열망이 원망으로 고착
보수당 수도권 패배는 그 귀결
주말에 재래시장 근처의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시장과 주변 동네를 걸었다. 시장이 있는 지방 도시에서 자라 그 풍경에 익숙한데 기억과 큰 차이점 하나를 발견했다. 동네가 온통 빌라와 빌라, 또 빌라뿐이다. 담벼락과 작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은 딱 두 집만 보인다. 이곳은 지난 총선 때 강남 3구 중 야당 후보가 당선된 유일한 선거구에 속해 있다. 사람들은 이 선거구에서 보수 정당이 이기기 어려운 이유로 대규모 빌라촌을 꼽기도 한다.
22대 총선 결과는 21대 총선과 너무 유사해 따분할 정도였다. 더불어민주당이 수도권 대부분 지역구에서 조금씩, 그러나 거의 다 이기는 패턴이 반복됐다. 왜 그럴까. 나는 '원망 도시' 서울의 원망 정도가 어느 순간 임계치를 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진입을 열망하지만 문이 좁아 열망만큼 원망을 양산하는 도시를 원망 도시라고 치자. 인천·경기는 서울을 열망하고, 서울 강북은 강남을 열망하고, 강남의 빌라촌은 인근 대단지 아파트를 열망하는 연쇄 구조 속에서 원망이 싹튼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할 확률이 낮다. 그 결과 수도권 대다수 지역에서 원망 세력이 안정희구 세력을 조금씩 앞선다.
총선 전에 여당은 서울 위성도시의 서울 편입을 공약했는데 그것은 요컨대 '너희가 원한다면 서울로 불러줄게' 같은 말이었다. 서울 열망은 가치가 중앙으로만 쏠리면서 생겨나는 현상이다. 서울 경계를 넓혀본들 강북과 강남, 강남 내의 분화처럼 열망의 세부 분열만을 부를 뿐이다. 즉 내일부터 김포가 서울로 불려도 김포는 중앙이 될 수 없다.
나는 최근 30년 대부분을 대수도권과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규모의 경제'를 신봉하고 살았다. '이 작은 나라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구분해 무엇하나. 수도권에서 나온 경쟁력으로 온 나라가 먹고살면 되지' 하는 믿음 말이다. 지금 와 보니 한국은 그렇게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 한국 정도의 나라치고 대(大)수도 하나를 키워 잘 먹고 잘사는 나라는 없다. 후배 기자들이 유럽의 저출생 대응을 취재하고 돌아와 쓴 기사에서 내가 얻은 통찰은 그나마 지방이 살 만한 나라가 출산 회복력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지방에 살며 더 많은 아이를 낳는 프랑스가 그렇고 독일도 그렇다.
우리도 출생률은 지방이 더 높다. 그러나 지방에 사는 젊은 층 자체가 극히 희소하다. 또 지방에서 난 아이들은 서울에서 기회를 찾으려 한다. 수도권에서 서울로,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어지는 사다리를 따라가다 지쳐 아이를 낳을 의지는 사라지고 기득권에 대한 분노가 자리한다. 그 결과물이 초저출산과 보수 정당 필패 구도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인들이 수도를 열망하는 현상은 연원이 깊다. 한국학자 존 B 덩컨은 그 기점을 고려 광종 때 실시된 과거제로 잡는다. 지방 호족이나 향리가 서울(고려 때는 개경)로 올라와 기반을 잡으면 중앙의 문벌이 됐다. 이들의 기득권 행사로 지방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그럴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서울 진입을 열망하게 되는 구조가 1000년 전에 이미 있었고 이후로 죽 그랬다.
시골 소년 스탕달이 열여섯 살에 꿈에 그리던 파리에 도착한 것처럼 수도 열망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중요한 것은 결국 정도 문제로 귀착된다. 열망이 원망에 이르면 위험하다. 서울이 원망 도시로 존재하는 한 한국인 절대다수는 행복하기 어렵다. 그것은 항상적인 '결여'로 우리의 기분을 지배하고 우리의 출생력을 갉아먹고 정치 불안의 원천이 될 것이다. 열망의 물꼬를 지방으로 트는 1000년의 그랜드 플랜이 지금 나와야 한다.
[노원명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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