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투석’ 교수마저 사라진다…“아이들 죽일 셈인가” 울분

강윤서 기자 2024. 4. 2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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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소아신장분과 교수 2명 사직서 제출…“8월31일 사직 희망”
환자·보호자 불안감 속 애타는 호소 “왜 환자 생명 담보로 싸우나”
신장 이식 청소년 母 “희망 안 버려…교수 사직하면 가족 무너질 것”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4월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위치한 서울대병원 어린이병동에 소아 환자와 보호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 시사저널 강윤서

23일 오전 9시 반께 찾은 서울 종로구 연건동의 서울대병원 어린이병동. 갓난아기 울음소리로 가득찬 병동 복도로 아픈 아이들과 긴장한 표정의 보호자 발걸음이 쉴새 없이 이어졌다. 의과대학 교수 줄사직이 초읽기에 접어든 가운데 각 소아 진료과 대기 장소마다 40여 명의 아이와 부모들이 초조함 속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 한 켠에는 '환자의 권리, 진료받을 권리'라고 적힌 게시물이 붙었다. 그 바로 아래에는 지난달 25일을 기점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의 성명서가 내걸렸다. 성명서에는 "저희에게 사직서는 환자 곁을 떠나는 것이 아닌 정부와의 대화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며 "사직서를 제출하고도 병원을 지킬 것"이라고 적혀 있다. 각 교수들의 진료실 앞에는 성명서와 더불어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제작한 '4월1일 대통령 담화문에 대한 팩트체크' 안내문도 부착돼 있었다.

4월23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위치한 서울대병원의 어린이병동 소아청소년과 진료실 앞에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작성한 성명서가 부착돼 있다. ⓒ 시사저널 강윤서

그러나 이날 소아신장 진료실을 찾은 환자 보호자들은 '병원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뒤로 하고 떠날 채비를 하는 교수들의 움직임에 깊은 절망감을 토로했다. 최근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산하 소아신장분과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면서다. 서울대병원의 소아신장분과 교수는 총 2명이지만 이들 모두 8월31일을 기해 병원을 떠나겠다고 예고했다.

아이와 함께 병원을 찾은 보호자들은 해당 소식을 접한 뒤 비난을 쏟아내면서도 '설마 환자 곁을 떠나겠느냐'며 절박한 심정을 전했다.

서울대병원에서 11년간 진료를 받아온 신장 이식 환자 A(18)군의 할머니 김아무개(68)씨는 "손자가 7살 때 이식 수술을 받고 계속 이 병원을 다녔다"면서 "교수들이 벽보에 붙은 성명서에선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한다면서 왜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싸우는 건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진료를 보고 나온 후 "(교수에게) 병원을 떠나면 위급한 아이들은 다 죽일 셈이냐고 묻자 '어쩔 수 없다. 저희로선 이게 최선'이라고 답하더라"며 "너무 화가 나고 이러한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힐난했다.

또 다른 신장 이식 환자 이아무개(18·남)씨의 어머니 박아무개(57)씨도 사직 예고 소식을 듣고 걱정이 커졌다. 박씨는 "여기(서울대병원)에 소아신장분과 교수님은 딱 두 명인데 설마 다 떠나진 않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희망을 걸고 있다"면서도 "이분들이 정말 사직한다면 저희 가족은 마음이 무너질 것"이라고 호소했다.

5개월 된 아이의 어머니인 육아무개(30대)씨는 "아기가 새벽에 고열이 나서 응급실을 찾아갔는데 요로 결석에 걸렸다고 해서 이곳에 왔다"며 "저희 부부도 아이를 봐줄 의사가 없을까봐 조마조마 했는데 수술 받는 아이들의 부모 심정은 감히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4월23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위치한 서울대병원의 어린이병동 소아청소년과 진료실 앞에서 소아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시사저널 강윤서

"아이들 누가 봐주나"…서울대 신장 투석 진료, 전국 50%

소아신장분과는 만성 콩팥병을 앓고 있는 체중 35kg 미만 소아청소년을 담당하며 투석 치료도 진행한다. 전국에서 소아 투석이 가능한 병원은 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경북대·부산대·전남대·제주대 병원 등 총 8곳뿐이다.

서울대병원은 이 중에서도 소아 전용 투석실을 갖춘 유일한 병원으로 신장질환 소아 환자 대부분이 몰린다. 전국 신장 투석을 받는 100여 명의 소아 환자 중 50~60%가 이곳에서 진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지난해 소아청소년과의 소아신장분과에서 진료한 외래 환자는 6000여 명에 달한다.

이날 신장 투석을 앞둔 8세 백혈병 소아 환자는 진료실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다 구토를 했다. 어머니인 신아무개(37)씨는 대형 유모차 안에서 힘없이 엎드려 있는 아이의 등을 토닥여주면서 교수들의 사직 소식에 울분을 토했다. 신씨는 "저희 아이는 항암 치료를 받다가 신장에 합병증이 생겨서 이곳으로 왔다"면서 "주변에 보면 저희 아이가 받는 신장 투석 외에도 신장이나 골수 이식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그런 아이들의 수술에는 보통 (의사들이) 6명 정도 투입된다고 하는데, 전공의가 이탈하면서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며 "수술이 늦어지면서 신장이나 폐, 간에 합병증이 생기는 경우도 많은데 교수가 병원을 떠나면 도대체 누가 아이들을 치료해주나"라며 처참한 심정을 전했다. 교수들의 이탈로 병원을 옮겨야 할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해선 "다른 병원에서 아이를 당장 받아줄 지도 의문"이라며 "수개월씩 대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강희경·안요한 서울대병원 소아신장분과 교수는 진료실 앞에 '사직 안내문'을 붙이고 "저희의 사직 희망일은 올해 8월31일"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면서 "믿을 수 있는 소아신장분과 전문의 선생님들께 환자분들을 보내드리고자 하니 병원을 결정해 알려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이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대해 사직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두 교수는 소아 신장질환을 볼 수 있는 전문의가 속한 병원도 안내했다. 이들이 제시한 병원 목록에서 서울은 강북권 3곳·강남권 3곳 등 6곳, 경기권은 7곳, 지역은 9곳이었다. 이어 "소변검사 이상, 수신증 등으로 내원하는 환자분들께서는 인근 종합병원이나 아동병원에서 진료 받으시다가 필요시 큰 병원으로 옮겨도 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안내문 마지막에는 "여러분 곁을 지키지 못하게 돼 대단히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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