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보다 힘든 플라스틱 규제 [강석기의 과학풍경]

한겨레 2024. 4. 2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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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 한 신문사에서 객원기자로 일할 때 편집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이전 대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할 때는 상상하지 못한 풍경이었다.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에는 이와 관련한 사설과 기고문, 서신이 실렸는데 다들 기대보다는 우려를 담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러시아 등 몇몇 산유국(플라스틱 대부분은 석유로 만든다)과 관련 업체가 고용한 로비스트의 방해로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것을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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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막대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유출되면서 바다도 플라스틱 부유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플라스틱 오염은 거의 모든 사람의 일상에 깊이 관여돼 있어 흡연보다도 훨씬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나야 베르톨트 옌센(Naja Bertolt Jensen)/언스플래시 제공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1990년대 후반 한 신문사에서 객원기자로 일할 때 편집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기사를 쓰며 담배를 피우는 기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전 대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할 때는 상상하지 못한 풍경이었다. 당시는 버스 의자 뒤편에 재떨이까지 달아 뒷자리 승객의 흡연 편의를 제공하던 때였으니 연구소가 시대를 앞섰던 셈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흡연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필자 같은 비흡연자가 ‘살 만한 세상’이 됐다. 세계 각국이 흡연으로 인한 보건 비용이 막대하다는 연구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도 동참한 것이다.

최근 영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담배 영구 퇴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16일 영국 하원은 ‘담배 및 전자담배 법안’을 2차 독회에서 통과시켜 다음 단계로 넘겼다. 현행법에 따라 2009년생이 담배를 살 수 있는 나이(18살)가 되는 2027년부터 담배 구입 가능 나이를 매년 한 살씩 높여 2009년생 이하는 평생 살 수 없도록 했다. 당장 모든 연령층에 적용하면 흡연자 중 다수가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어 내놓은 차선책이다.

이처럼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흡연 문제는 가닥을 잡아가지만,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플라스틱 오염 문제는 갈수록 심각하다. 싸고 편리해 여전히 수요가 증가세인데다 재활용 기술마저 비용 문제로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해성에서 흡연과 차원이 다른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을 위해 결국 유엔이 나섰고 23일부터 캐나다 오타와에서 국제플라스틱협약 4차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에는 이와 관련한 사설과 기고문, 서신이 실렸는데 다들 기대보다는 우려를 담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러시아 등 몇몇 산유국(플라스틱 대부분은 석유로 만든다)과 관련 업체가 고용한 로비스트의 방해로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것을 걱정한다.

이에 따르면 등록한 로비스트의 수가 과학자의 3배에 이른다. 이들의 가장 큰 목표는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는 대신 재활용도를 높이고 오염물질(첨가제)을 규제하는 쪽으로 협약의 방향을 유도하는 것이다. 무리하게 생산을 줄여 경기 침체와 소비자 불편이란 역효과를 내는 것보다 재활용도를 높여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는 쪽이 현실적 대안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는 눈속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재활용도를 단기간에 높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플라스틱 생산량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최대한 시간을 벌겠다는 전략이다.

여러 나라의 흡연 제한 정책이 나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흡연자보다 비흡연자가 많아 여론의 지지를 얻어서다. 반면 플라스틱 오염 문제는 사실상 모두가 가해자(또는 중독자)라 막상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불편과 비용이 발생하면 여론이 나빠져 정부가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 유엔 차원의 강력한 규제력을 지닌 협약이 성사돼야만 하는 이유다.

이번 4차 협상에 이어 11월에 부산에서 5차 협상을 벌인 뒤 협약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로비스트의 입김으로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실효성 없는 몇 가지 합의만 하고 나머지는 각국이 알아서 하라는 식의 결말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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