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착한 ‘벨트 검사’ 기운 빠지게 한 ‘벨트 전관’

김지환 기자 2024. 4. 2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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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년 차 검사였던 A씨는 기업의 부가가치세 포탈 사건을 수사하다 법률 대리를 맡은 변호인에게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었다.

인증을 받은 A씨는 법무연수원에서 저연차 검사를 상대로 수사 실무에 필요한 내용을 강의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전달했다.

그런 그가 검사 시절 단죄에 나섰던 다단계 사기범에게 거액 수임료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고, 다른 공인전문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블루·블랙벨트를 몸값을 높이는 데 활용한 것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공분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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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거 맞아요?”

2014년, 8년 차 검사였던 A씨는 기업의 부가가치세 포탈 사건을 수사하다 법률 대리를 맡은 변호인에게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었다. 세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수사하는 것이냐는 취지로 역공하는 변호인 앞에서 움츠러들었던 그는 당시 굴욕감을 발전 기회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A씨는 검찰 내 커뮤니티를 만들어 조세 형사 사건 법리, 판례 등을 공부하고 수사 방법을 연구했다. 2018년에는 대검찰청의 조세 분야 공인전문검사 2급(블루벨트) 인증을 취득했다.

공인전문검사 인증 제도는 수사 검사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대검찰청이 지난 2013년 도입했다. 1급(블랙벨트) 8명, 2급 289명이 배출됐다. 매년인증심사위원회가 ▲전문사건 처리 실적 ▲전문 분야 커뮤니티 활동 내역 ▲검찰 전문지식 축적 기여 실적 ▲학위 또는 자격증 보유 여부 등을 평가해 인증 여부를 결정한다. 전문성을 키우고 싶어 하는 검사들이 많아지면서 경쟁률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올해 초 심사에서 76명이 2급을 신청했는데 이중 23명만 문턱을 넘었다. A씨도 두 번 시도 끝에 2급을 받았다.

인증을 받은 A씨는 법무연수원에서 저연차 검사를 상대로 수사 실무에 필요한 내용을 강의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전달했다. 17년 검사 생활을 마치고 변호사가 된 지금은 한국세법학회 세미나에서 세법 관련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국제조세협회 회의에도 참석해 정책 아이디어를 낸다. 탈세 혐의 피의자의 조력인이 되는 대신 현장의 어려움을 개선할 방안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벨트 검사’란 타이틀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그는 박은정 조국혁신당 당선인의 남편 이종근 변호사를 둘러싼 논란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변호사는 검사 시절 다단계·유사 수신 분야에서 굵직한 사건을 해결하고 공인전문검사 블랙벨트를 받았다. 그런 그가 검사 시절 단죄에 나섰던 다단계 사기범에게 거액 수임료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고, 다른 공인전문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블루·블랙벨트를 몸값을 높이는 데 활용한 것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공분을 샀다. 일각에선 공인인증검사 제도가 실효성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그러나 이 변호사와 달리 도입 취지대로 제도를 활용하는 검사들이 여전히 많다. 공정거래 분야 블루벨트 인증을 받은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사를 그만둔 후에도 국내 경쟁법·정책 발전을 위해 설립된 한국경쟁포럼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준법 경영을 연구했다. 현재 국내 여러 기업을 상대로 공정거래 법규 준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강의를 하고 있다. 범죄정보, 송무 분야에서 블루벨트를 딴 검찰 출신 변호사들도 사직 후 일반 형사 사건 변호에 나서기는 하지만, 인증 분야와 연관된 범죄 혐의자들의 법률 대리는 맡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범죄 수법이 점점 더 교묘해지고 피해액도 나날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일부 전직 검사들의 비윤리적 행위를 이유로 공인전문검사 인증 제도를 손 보거나 없애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많다. 현직 부장검사는 “수사 전문성은 하루 아침에 쌓이는 게 아니다”면서 “한 분야에서 오랜 경험이 필요한데, 그들을 육성하기 위한 제도는 필수적”이라고 했다. 검사의 전문성은 곧 검찰의 전문성이다. 몰염치한 한 개인의 문제로 인해, 멀쩡한 제도까지 손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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