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의사와 지키는 의사들, 원망과 고마움이 교차하는 의료현장 [스프]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2024. 4. 2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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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조동찬] "사표 쓴 교수님, 그래도 계속 계실 거죠?"

"의료 파업 관계자들은 출입 금지입니다"

서울의 한 유명 식당 사장이 "잠정적으로 당분간 의료 파업 관계자분을 모시지 않습니다. 정중하게 사양합니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그 이유를 "최소한의 직업윤리에 대한 사명감마저 저버리는 행동은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많은 의사들이 댓글로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 중에는 식당과 다른 병원의 현실을 자조적으로 드러낸 것이 많았다. 병원은 더 비싼 의료 재료를 쓰더라도 최소한 본전이거나 손해다. 예를 들어 의사가 처방한 약의 가격은 고스란히 제약사로 넘어가기 때문에 1억 원짜리 항암제를 쓰든 5천만 원짜리를 쓰든 병원이 취할 수 있는 이득은 없어서 본전이다. 수술 비용은 1억 원짜리 최신 뇌 수술 도구를 쓰더라도 기존 5천만 원짜리를 썼을 때와 같아서 병원은 비싼 걸 쓸수록 손해다. 수술실 침대도 안전도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이에 대한 의료 수가는 책정되어 있지 않아서 비싼 것을 쓸수록 병원은 손해다.

그러나 식당 사장을 격려하는 댓글도 이어졌다. 병원에 의사가 없는 건 식당에 주방장이 없는 것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일일 터이고, 그런 공포를 느끼는 국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의료 대란에 대한 국민 공포는 과장된 것이 아니다. 고관절 골절 수술 부위가 감염된 고령의 환자가 대학병원 중환자실 치료를 받을 수 없어 2차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사망했고, 전립선 암이 콩팥으로 전이돼 응급 시술이 필요한데도 발을 동동 구르는 사례를 나는 직접 목도했다.

의사 출입을 금지시킨 식당의 게시글이 내게는 현재 의료 대란을 겪고 있는 국민 공포가 표출된 사례로 느껴졌다. 식당 출입을 금지당한 의사들의 서운함보다 병원을 못 가고 있는 국민의 공포감이 내게는 더 안쓰러웠다. 의사들이 식당 주인에 대한 서운한 댓글을 멈춰 주기를 바라면서 글을 읽어 내려갈 때, 식당 주인의 마지막 문장이 머리를 쳤다.

"늦은 밤 새벽까지 애써주신 한양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이비인후과, 흉부외과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게시글에서 언급된 한양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관계자분들은 대부분 이번 전공의의 집단 사직을 지지하고 있으며, 식당 주인이 출입을 금지시킨 의료 파업 관계자들은 각자의 병원에서 대부분 늦은 밤 새벽까지 애써주고 있기 때문이다. 거센 비난을 받고 있는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나기 전, 늦은 밤이나 새벽까지 환자를 치료했던 의료진이고, 그들이 사라지면 늦은 밤 새벽까지 치료받을 환자의 권리 역시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표 쓴 교수님, 그래도 계실 거죠?"


"기자님, 환자들의 사생활을 보호해주세요."

방송사 로고가 쓰여 있는 커다란 카메라를 보자 폐암 환자는 신경이 곤두섰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최창민 교수는 서둘러 진정시킨다.

"제가 전국의대교수협회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거든요. 저를 인터뷰하러 온 거고 환자분은 안 나옵니다."

취재진이 진료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간호사가 안으로 들어오라며 손짓한다. 환자가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를 변조해준다면 인터뷰를 하겠다는 것이다. 잠깐 사이 어떤 대화가 오갔길래 환자의 마음이 180도 바뀐 것일까? 그 이유를 진료 현장을 취재하며 쉽게 알 수 있었다.

"교수님, 사표 쓰신 건 아는데, 그래도 계속 계실 거죠?"

"그러려고 이렇게 활동하는 겁니다."

진료 현장에서도 의사에 대한 원망과 고마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병원을 떠난 의사는 밉지만, 병원을 지켜주는 의사는 고맙다. 문제는 병원을 떠난 의사와 병원을 지키고 있는 의사의 생각은 대부분 같다는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의대 교수들은 4월 25일부터,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5월 1일부터 사직이 현실화된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사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한다.

"저희들이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렇게 환자한테 못된 짓을 하겠습니까? 정부가 하자는 대로 밀어붙이면, 5월 초로 들어가면 정말 의료 붕괴이기 때문에 그때는 완전히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교수들이 남아서 병원을 지킨다고 지켜질 게 아니거든요. 전공의들이 1년 뒤에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고, 교수들이 이대로 계속 버틸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박민수 차관은 교수들의 사직은 가능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의대 교수 사직서는) 수리하지 않으면 효력이 없는 거고요. 국립대 교수같은 경우는 국가공무원이 되겠고, 또 사립대 교수의 경우에도 국가공무원법을 준용하도록 돼 있어, (사직서를 내면 수리하지 않더라도 한 달 이후 자동적으로 효력이 생긴다는) 규정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dongchar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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