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세에 큐레이터 데뷔… 이젠 화려함보다 소박한 일상 더 소중”[요즘 어떻게]

장재선 기자 2024. 4. 2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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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목소리엔 봄 햇살처럼 환한 기운이 배어 있었다.

"젊었을 때는 배우와 작가, 두 가지 일 중 한 가지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나이 들어보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융통성 있게 하면 되니까요. 그렇게 깨달았으나, 이제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도 제가 영화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배역에 맞게 살을 빼거나(웃음) 이미지를 바꿀 수도 있겠지요. 나이에 맞게 서민 역할을 해 보고 싶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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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어떻게 - 배우출신 미술작가 강리나
개인전뒤 기획자 제의받아
8월엔 한강비엔날레 합류
요즘 디지털 아트에 큰 관심
모친 병간호에 대인기피증
고통 딛고 꾸준한 작품활동
영화 섭외오면 당연히 출연
강리나(오른쪽) 작가가 지난 3월 개인전 때 권숙자 안젤리미술관 관장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안젤리미술관 제공

그의 목소리엔 봄 햇살처럼 환한 기운이 배어 있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설렘 때문인 듯했다.

“지난 3월부터 미술관 학예사로 일하게 됐어요. 1주에 4∼5번 출근하는데 일이 참 많네요. 전시 기획을 하며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전국의 학생들과 지역민에게 전시 공간 대여 작업도 하니까요.”

강리나(59) 작가는 일이 많다면서도 무척 즐거워했다. 그는 지난달 경기 용인에 있는 안젤리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랬던 작가가 그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한다니….

“제가 6개월 전에 요 근처로 이사를 왔어요. 그래서 미술관에 자주 놀러 갔는데, 화가인 권숙자 관장님과 대화가 잘 통했어요.”

권 관장은 지난달 전시 평문을 직접 써서 강 작가에 대한 애정을 담뿍 표현했다. 생명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세상에 좋은 향기를 뿌리기를 바라는 내용이었다.

강 작가는 중앙대에서 예술경영 석사 과정을 공부했던 것이 미술관 일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오는 8월 서울 노들섬에서 펼쳐지는 제2회 서울-한강비엔날레 조직위원 일도 맡았다고 전했다. “출품작가로 초대받았는데, 조직위 일도 해 보겠느냐는 제안을 해 와서 응했어요. 다른 작가들 작품을 추천하는 일도 보람이 크니까요.”

알려진 것처럼, 그는 홍익대 미대 재학 시절에 CF 모델 활동을 계기로 영화계에 데뷔해 배우로 활동했다. 1989년 개봉한 ‘서울무지개’에서 주역을 맡아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1996년 ‘알바트로스’를 마지막으로 영화계를 떠나 미술계에서 작가 활동을 해 왔다. 그동안 그림뿐만 아니라 설치 미술 작품을 꾸준히 선보였다. “제가 했던 영화가 모든 매체를 다루잖아요. 전시관에도 그걸 가져와 영상, 소리, 디지털 미디어 등을 다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왜 돈이 안 되는 거만 하냐, 잘 팔리는 그림에 주력해라, 이런 조언들을 하니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이 어렵더라고요.”

1989년 개봉한 영화 ‘서울무지개’에서의 모습. 자료 사진

그는 최근 우리 미술계에서 만화 캐릭터를 들여온 디지털 아트가 각광받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일시적 유행에 그칠지, 고정 장르가 될지 그 흐름을 살피고 있다는 것이다.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일 뿐 아니라 기획자이기도 하니 시야의 폭을 넓히려 한다는 이야기였다.

“미술관 일을 하면서도 막간을 활용해 그림을 꾸준히 그릴 거예요. 건강을 지켜야 하니 운동도 열심히 할 거예요. 그래서 미술관 안에 운동 시설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는 배우 생활을 그만둔 후 지병이 있는 어머니를 모시는 한편,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로 인한 체중 폭증을 겪었다. 지금도 그 후유증이 남아 있다고 했다. 얼굴이 또래보다 어려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그게 실은 살이 쪄서라는 게 그의 솔직한 생각이다.

“운동을 해서 살이 빠지면, 얼굴에 주름이 드러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운동을 해야 건강을 지킬 수 있어요. 안 하면 큰일 납니다.(웃음)”

강 작가는 인생 후반 삶의 모토가 ‘더불어 살아가기’라고 했다. 젊었을 때처럼 화려하게 빛나는 것을 꿈꾸기보다는 주변 사람들과 잘 소통하며 평범한 일상의 기쁨을 함께 누리며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그들의 이해를 돕는 미술관 기획자 일이 소중하다고 했다.

그에게 영화 출연 제의가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젊었을 때는 배우와 작가, 두 가지 일 중 한 가지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나이 들어보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융통성 있게 하면 되니까요. 그렇게 깨달았으나, 이제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도 제가 영화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배역에 맞게 살을 빼거나(웃음) 이미지를 바꿀 수도 있겠지요. 나이에 맞게 서민 역할을 해 보고 싶긴 합니다.”

장재선 전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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