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겸의 세렌디피티]차해리 "빅오션의 성공, 사회에 큰 임팩트를 주는 일이죠"

김원겸 기자 2024. 4. 2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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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우연한 발견, 기쁨을 뜻합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우연히 발견한 영향력 있는 인물이나 의미 있는 일화, 콘텐트를 소개합니다.

①차해리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대표

▲ 멤버 전원이 청각장애인인 아이돌 그룹 빅오션을 데뷔시킨 차해리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대표. 그는 "빅오션의 성공은 사회에 큰 임팩트를 주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혜미 기자 khm@spotvnews.co.kr

[스포티비뉴스=김원겸 기자]빅오션(Big Ocean)이라는 청각장애인 아이돌 그룹의 데뷔가 가요계 안팎에서 화제다. 세계적으로도 멤버 모두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돌 그룹은 유례를 찾기 힘들어, 빅오션의 데뷔는 매우 특별한 일로 평가된다. 들리지 않으면 노래하기 힘들고, 박자와 리듬을 들을 수 없으면 춤추기도 버거운 일이다. 이런 난관 속에 빅오션은 장애인의 날인 4월 20일 데뷔했다. 데뷔곡은 H.O.T. ‘빛’을 리메이크한 동명 싱글. 이날 MBC ‘쇼! 음악중심’에도 출연했다.

빅오션은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이하 파라스타) 1호 아이돌 가수다. 파라스타는 장애를 가진 대중문화 예술인을 전문적으로 매니지먼트하는 회사. SBS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로 익숙한 차해리 대표는 파라스타를 이끌며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냈다. 봄기운이 완연하던 날, 서울 상암동에서 차해리 대표를 만났다.

#계기

차해리 대표가 파라스타를 설립한 계기는 우연이었다. YTN 아나운서 시절, 88서울패럴림픽 30주년 기념행사 진행을 맡았다가 현장에 모인 300명 넘는 장애인 선수를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장애인 체육인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그들의 활기차고 멋있는 모습에 두 번 놀랐다.

“막연한 선입견이었을까요. 현장에 모인 선수들의 활기 넘치는 모습을 보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됐어요. 그것도 3초 만에.”

그날 행사로 몇몇 패럴림피언과 친분을 갖게 됐다. 방송 출연, 광고계약 기회가 많지만, 세부사항을 조율하고 계약서를 쓰는게 어려워 기회를 놓치거나 부당한 조건으로 계약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에이전시를 해보라는 주변 권유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럼 ‘같이 해보자’ 했죠. 행정적인 부문만 해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88서울패럴림픽 진행을 같이 했던 장애인 아이스하키 선수 한민수와 2020년 9월 파라스타를 설립했다. 그러다 한민수가 국가대표 감독이 되면서 혼자 회사를 이끌게 됐다.

“그때가 마침 YTN을 그만두는 시기였어요. 6개월 준비 끝에 파라스타를 설립했죠.”

처음 파라스타는 13명의 패럴림피언으로 시작했다. 회사 설립 준비 과정에서 소문이 나면서 장애인 모델, 댄서, 유튜버들이 회사 문을 두드렸다,

“비장애인들은 어차피 선택지가 많으니까, 장애인들만 입사할 수 있게 했어요. 청각장애인 발레리나, 시각장애인 첼리스트 등 본업이 있는 분들을 캐스팅 했어요. 현재는 약 40명의 장애인 예술인을 관리하고 있어요.”

JTBC ‘효리네 민박’에 나왔던 청각장애인 모델 정담이가 파라스타 설립 초기 함께 했다. 현재는 ENA ‘구독왕’에 출연했던 국내 최초 휠체어 모델 김종욱, 평창 패럴림픽 개막식 등 주요 국가적 행사에 자주 부름을 받는 휠체어 댄서 김용우, 그리고 빅오션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파라스타 소속 아티스트들이다.

#도전

파라스타 설립 초기엔 모델 위주의 매니지먼트 사업을 영위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델이 설 수 있는 행사는 없었다. 영상 콘텐츠가 주목받으면서 연기자, 유튜버를 키우기로 했다. 녹록치 않았다. 방송 제작 환경이 장애인친화적이지도 않을뿐더러 대기 시간이 하염없는 단역, 엑스트라로 장애인이 활동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연기자를 키우기가 구조적으로 너무 어려웠어요.”

차 대표는 ‘완성도 있는 콘텐트’를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졌고, 고민 끝에 아이돌에 도전하기로 했다. 사실 아이돌 그룹은 회사 설립초기부터 차 대표의 머릿속에 있던 것이기도 했다.

“아이돌은 대중문화 콘텐츠로 제일 어려운 분야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23년 1월, 빅오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청각장애인 최초로 상업영화 주연을 했던 김리후가 시장조사와 캐스팅에 힘을 보탰다. 이미 파라스타에 몸담고 있던 크리에이터 출신 박현진(25)이 일찌감치 ‘센터’로 낙점됐다. 이제 박현진과 어울리는 멤버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선천적 청각장애가 있던 김지석(21)은 파라스타 기획 공연을 보러 왔다가 회사 관계자에 눈에 띄어 오디션을 거쳐 팀에 합류했다. 중2 때부터 서울시 장애인스키협회 알파인 스키 선수로도 활동했다.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청력 검사를 해주는 청능사로 일하던 이찬연(26)은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됐다. 이렇게 다양한 경로와 관문을 거쳐 모두 7명이 모였다.

하지만 연습이 시작되고 4명이 여러 사정으로 팀을 떠나면서 박현진, 김지석, 이찬연의 3인조가 됐다.

▲ 수어로 노래하는 청각장애인 보이그룹 빅오션. 이들은 장애인의 날인 4월 20일 '빛'으로 데뷔했다. 제공|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실전

국내에도 이미 청각장애인 대중문화예술가들이 있다. ‘핸드스피크’는 수어로 노래하고 랩도 하는 농인들의 예술단체다. 팝스타 리한나의 2023년 미국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에 수어 통역사로 활약한 저스티나 마일즈의 현란한 수어는 세계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차 대표도 이들의 활약을 눈여겨보면서 빅오션을 트레이닝 시켰다.

“이들이 수어로 아름답게 랩을 하는 모습에 감명 받았어요. 빅오션이 K팝 아이돌로서 음악도 비주얼도 모두 호감 가는 팀을 만들고자 나름의 방법을 모색했어요.”

차 대표는 빅오션의 데뷔 과정을 지휘하며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장애로 주목받지 않는 평범한 아이돌 그룹이 됐으면 하는 것,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팀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빅오션이 줄 수 있는 임팩트 만큼은 월드 스타급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돌 트레이닝은 고되다. 온종일 노래 연습, 춤 연습만으로 체력이 방전된다. 빅오션은 ‘칼군무’를 위해 빛과 진동으로 박자를 맞춰야 하기에 몇 배로 더 많은 연습을 해야했다.

“아이돌 시장은 극도의 경쟁 사회입니다. 그런 체제에 진입하려면, 과거엔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냉철한 평가도 받아보고, 또 그간 해보지 않았던 극한의 노력을 해보는 그런 경험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했어요. 그런 과정 속에서 장애에 대한 스스로의 틀을 깰 수 있는 것이죠. 장애가 있다고 얼추 비슷하게만 해선 안되는 일이잖아요.”

▲ 차해리 대표는 파라스타를 운영하기까지 다양한 인생경로를 거쳤다. 그 모든 과정이 의미가 있었고, 더욱이 "나다운 결정이었다"고 했다. 곽혜미 기자 khm@

#여로

어릴 적 차해리의 꿈은 미국 애니메이션 ‘파워퍼프걸’ 캐릭터 같은 영웅이 되고 싶었다. 어리고 작은 아이들이 악당을 물리치는 것이 멋있었기 때문이다. 약자의 편에서 악당을 물리치는 것, 어찌 보면 지금 파라스타에서 하는 일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차혜리 대표는 서울대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언니와 동생이 모두 의사인데 자신만 조금 다른 길이었다.

“체육교육과는 스포츠경영학, 스포츠심리학 등 할 수 있는 게 많아서 선택했어요. 체육교육과는 자기어필을 잘해야 하고, 선후배 관계도 끈끈하죠, 보통 동기들끼리 뭉쳐 다니는데, 저는 20년 선배들하고도 잘 어울렸어요. 사회성이 좋아지고, 지금 사업하고 영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차 대표는 MBC강원영동, YTN 아나운서를 거쳐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활약했다. ‘체대 언니’ 출신답게 SBS ‘골때리는 그녀들’, MBN ‘내일은 위닝샷’ 등 스포츠 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했다.

처음엔 변호사나 외교관, 기자 같은 전문직을 바랐다. 학생 기자도 해보고, 변호사가 되려고 로스쿨도 지원했다. 말로 뉴스를 전하는 직업에 호감을 느껴 아나운서가 됐다.

파라스타 대표가 되기까지 그가 걸어온 여정은 그야말로 변화무쌍. 차 대표는 그 다이내믹한 경로를 돌아보면서 “나답게 잘 살고 있다”고 했다. 또 “모든 순간, 한 꼭지 한 꼭지 살펴보면 모두 나의 결정이었고, 나다운 결정이었다”고도 했다.

실제 그는 아나운서로 일하면서 방송과 엔터 업계를 알게 됐고, 문체부 산하 국제스포츠협력센터 미디어 연구원으로 1년간 일하면서 문서 작업부터 정부지원사업을 따내는 일까지 모든게 공부가 됐다. 로스쿨 준비로 법을 공부하면서 계약서 조항도 어렵지 않게 느껴지게 됐다.

“결국 지금을 위한 빅픽처였나 싶을 정도네요.”

▲ '체대 언니' 차해리 대표는 SBS '골때리는 그녀들' 시즌2 챌린지리그에 합류해 1골을 기록했다. 부상으로 하차했던 그는 행복한 오늘을 소망하고, 의미 있는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제공|SBS

#희망

차해리는 빅오션을 성공시키고 파라스타를 크게 키우고 싶다고 했다. 파라스타가 잘 될수록 장애인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갈 것이고, 사회에도 큰 임팩트를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장애인들의 수호천사로 비춰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저 자신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서있겠다고 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 가운데서 만나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차 대표는 파라스타 소속 장애인 예술인들에게 ‘소셜 스킬’도 교육한다.

“장애인들이 최고의 스타가 되려면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해야만 하니까, 그에 걸맞은 성숙한 태도, 사고방식,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파라스타도 그와 관련한 가이드를 많이 주고 있어요.”

사람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사는 법.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을까. 차 대표는 “당장 내일 죽어도 오늘 후회가 없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오늘 내가 뭘 하면 행복할까, 뭘 하면 후회가 없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하루하루 소중하게, 열심히, 행복하게 살게 되고, 매일 하루가 의미 있겠죠. 지금 느끼는 이 세상, 찬란하고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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