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전한 롯데에 나타난 신선한 캐릭터 황성빈, 스스로의 의구심도 지웠다
과거 롯데의 한 코칭스태프는 “우리 선수들은 너무 착하다”라고 말하곤 했다.
“기다려라”고 했더니 곧이 곧대로 모든 공을 다 지켜보길래 “좀 공격적으로 해볼까”라고 했더니 모든 공에 배트를 붕붕 휘두르더란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이처럼 롯데에는 이른바 ‘튀는 행동’을 하는 선수들이 잘 없었다. 황성빈(27)의 캐릭터는 다소 특이한 사례였다.
황성빈은 지난달 26일 KIA전에서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1루에 있던 황성빈이 KIA 선발 양현종을 바라보면서 뛸까 말까한 동작을 보이면서 도발을 했다. 다음날 김태형 롯데 감독은 이런 동작을 금지시켰고 KT 황재균, 삼성 구자욱 등이 이를 ‘챌린지’처럼 따라해 웃음을 자아냈다.
지난 18일 LG전에서는 벤치클리어링의 발단을 제공했다. 타석에서 파울 타구를 친 뒤 전력 질주를 했다가 다시 타석으로는 천천히 돌아오는 등의 행동으로 LG 케이시 켈리의 심기를 적잖히 불편하게 했다. 결국 양 팀이 모두 더그아웃에서 쏟아져나오는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소래고-경남대를 졸업한 황성빈은 2020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5라운드 44순위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본격적으로 1군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2022시즌에는 몸을 던지는 플레이로 팬들의 환영을 받았다. 자유계약선수(FA) 계약으로 NC로 이적한 손아섭의 빈 자리를 그리워했던 롯데팬들은 ‘근성의 아이콘’이 다시 나타난 것에 대한 기쁨을 표했다. 그 해 황성빈은 102경기에서 타율 0.294 16타점 등을 기록하며 자리를 잡는 듯 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74경기 출장에 그치지 못했고 타율도 0.212로 급격히 떨어졌다. 열정 가득한 플레이가 때로는 경기 흐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올시즌에도 초반부터 여러 사례로 타 팀들에게서 ‘미운 털’이 박히는가하면 롯데 팬들에게도 우려를 샀다.
그랬던 황성빈이 최하위로 처진 팀을 구했다. 황성빈은 지난 2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KT와의 더블헤더 경기에서 무려 3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다.
1차전에서는 1회와 5회 홈런을 쏘아올렸다. 상대는 무려 KT의 윌리엄 쿠에바스였다. 지난해 18경기에서 단 4개의 홈런을 내줬던 쿠에바스는 이날 황성빈에게만 2개의 홈런을 맞으며 고개를 숙였다. 개인 통산 홈런이 1개였던 황성빈은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1차전에서 이미 갈아치웠다.
한번 불붙은 방망이는 식지 않았다. 황성빈은 2차전에서도 ‘손맛’을 봤다. 5회 엄상백을 상대로 2점 홈런을 쏘아올렸다. 엄상백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롯데는 황성빈의 활약으로 더블헤더 2경기에서 패배 없이 1승 1무를 거뒀다. 그리고 10위에서 9위로 한 계단 상승하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황성빈이 KT와의 3경기에서 기록한 타율은 0.583에 달한다.
롯데는 개막 2연패, 그리고 또 다시 8연패에 빠지는 등 잦은 패배로 선수단 분위기도 많이 처졌다. 팀 분위기를 끌어올려야하는데 다들 자신의 플레이를 하기 바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황성빈이 시원한 홈런포를 쏘아올리면서 분위기를 전환시킨 것이다.
황성빈 스스로도 자신감을 얻었다. 황성빈은 타 팀들에게 이른바 ‘미운털’이 박히면서 적지 않게 심적으로 힘들어했다. 게다가 자신의 타격에 대한 의구심도 점점 커지던 상태였다.
황성빈은 “내가 노력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 가끔 의심할 때도 있었다. ‘과연 노력을 한다고 해서 전부 결과로 나오는 걸까?’라는 의구심을 가져본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또한 자신의 행동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는 “요즘 내 행동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분명 불편한게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내가 나쁜 의도가 없더라도 그런 행동을 애초에 하지 않으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라고 털어놨다.
수많은 물음표들을 날려버린 황성빈은 더욱 성숙해지고, 강해졌다. 그는 “내가 틀린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나를 응원해주시고 도와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 지난해에는 타석에 서면 맞히는데 급급했는데 김주찬, 임훈 코치님들이 저에게 투자해주신 시간이 틀리지 않았다고 보답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황성빈은 “심적으로 힘들었던 것도 사실인데 다른 부분에 있어 나를 조금 더 강하고 과감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나의 이런 태도를 조금 더 오래 기억하고 경기에 나서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하진 기자 h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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