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란 ‘1차대전 확전 모델’ 따를까[김상운의 빽투더퓨처]
“이란의 이스라엘 직접 공격은 중동지역의 판도를 뒤흔들 ‘게임 체인저’다.”
수전 멀로니 브루킹스연구소 부소장이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지금껏 하마스, 헤즈볼라 등 이스라엘 주변 무장세력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때린 이란의 ‘그림자 전쟁’이 직접 공격으로 바뀌면서 중동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우려한 겁니다.
보복, 재보복에 나선 이스라엘과 이란이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공격 양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언제라도 확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핵심 원유 공급지인 중동지역 전쟁은 세계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에 한국도 강건너 불구경할 순 없는 상황이죠.
세계 전사(戰史)에서 대표적인 확전 모델로 꼽히는 제1차 세계대전을 이스라엘-이란 무력충돌과 비교 분석함으로서 향후 전개를 예상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보겠습니다.
‘세력균형’의 지각 변동
1차대전의 원인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오스트리아-독일-이탈리아(3국동맹) vs 영국-러시아-프랑스(3국협상)의 세력균형이 발칸 반도에서 깨지면서 발발했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입니다. 그 발단은 1871년 통일 이후 독일제국의 부상이었죠. 독일의 부상이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의 안보위협을 키우면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됐던 세력균형이 무너진 겁니다.
물론 여기에는 오스트리아, 러시아를 구슬려 프랑스를 고립시켰던 비스마르크의 절묘한 외교술이 빌헬름 2세 집권과 더불어 무력화된 영향도 있었습니다. 독일 국민들의 제국주의 열망에 영합한 빌헬름 2세의 팽창주의 외교 노선이 영국, 러시아, 프랑스에 공세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최근 이스라엘-이란 무력충돌도 사우디, 이집트, 튀르키예, UAE 등 수니파 vs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 시아파 국가들의 세력균형이 깨졌다는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적극적인 중재로 사우디-이스라엘 수교가 추진되면서 중동에서 두 적대적 블록의 힘의 균형이 무너지게 된 겁니다. 이란으로서는 철천지 원수이자 군사강국으로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이 사우디에 가세하면 코너에 몰릴 수밖에 없다고 본 거죠.
실제로 미국과 사우디는 이란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수니파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의 국교 수립을 지원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2020년 9월 UAE, 바레인과 ‘아브라함 협정’을 맺고 국교를 수립한 데 이어 수단, 모로코와도 수교했죠. 1차대전을 촉발시킨 세력균형 붕괴가 중동에서도 이미 진행 중이며, 이스라엘-이란 무력충돌을 계기로 수니파 vs 시아파 국가들 간의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겁니다.
소수민족 변수의 개입
이번 이스라엘-이란 무력충돌도 이란의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지원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1차대전의 경로와 유사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영토, 민족의 문제는 21세기에도 강한 휘발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분쟁을 격화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이란 무력충돌은 이슬람의 반유대주의나 수니파-시아파 갈등과 같은 종교갈등의 구조까지 안고 있다는 점에서 더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패권국의 애매한 태도
로이드 조지(1863~1945) 영국 총리는 1차대전 후 펴낸 전쟁 회고록에서 외무상이던 에드워드 그레이의 애매모호한 태도가 전쟁을 일으킨 요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전쟁 관련국들 간에 갈등이 점차 높아지던 1914년 7월 위기 국면에서 영국이 프랑스, 벨기에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은 게 독일의 오판을 불러왔다는 겁니다. 만약 1차대전 당시 패권국 위치에 있던 영국이 단호한 개입 의지를 밝혔다면 독일이 공세적으로 나오지 못했을 거라는 얘깁니다.
지금 중동에서의 확전 여부도 사실 패권국 미국의 움직임이 중요한 변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란이 지금껏 눈엣 가시 같은 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하지 못하고, ‘그림자 전쟁’을 수행한 건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미중전쟁에도 대비해야하는 미국이 중동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비 지원을 위해 미 의회를 가까스로 설득할 수 있었죠. 얼마 전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에게 “이란 공격을 도울 수 없다”고 선을 긋기도 했죠. 향후 미국의 수세적 입장이 이란의 군사 모험주의를 자극할 수도 있을 겁니다.
신호에 대한 오인
실제로 바로 다음 날 오스트리아가 동원령을 내리고 이틀 뒤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를 포격합니다. 이에 러시아가 다음 날인 7월 29일 부분 동원령을 내리자, 8월 1일 독일과 프랑스가 총동원령을 내리면서 걷잡을 수 없는 양상으로 번지게 되죠.
사실 빌헬름 황제 등 독일 수뇌부는 러시아의 군사력이 더 커지기 전에 전쟁을 벌이자는 군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러시아의 동원령 소식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이처럼 국가간 갈등에서 신호에 대한 오인이 확전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거듭된 상호 보복 공격도 어느 순간 오판을 불러와 자칫 확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힘들 겁니다.
국내 정치적 압력
현재 중동도 국내정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반미 이슬람혁명이 국시인 이란은 이스라엘의 보복을 외면할 경우 체제 정당성이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퇴진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강경론에 치우칠 가능성이 높죠.
결국 정리하면 ①사우디-이스라엘 수교 추진으로 중동지역 패권을 둘러싼 세력균형이 깨진 상황과 ②소수 민족(팔레스타인)을 둘러싼 개입 ③우크라이나 전쟁, 미중갈등 등 여러 전선을 앞둔 패권국 미국의 한계 ④보복-재보복의 악순환이 낳을 수 있는 신호에 대한 오인 ⑤이스라엘과 이란의 국내정치 압력 등이 1차대전이 발발해 확전된 과정과 유사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다행히 이스라엘, 이란 양측의 무력대응이 현재 소강 상태로 들어갔지만 이런 변수들이 한꺼번에 맞물리면 확전 국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상황을 예의주시해야할 듯 합니다.
[참고 문헌]
-박건영 〈국제관계사〉 (2020년, 사회평론아카데미)
-이내주 〈제1차 세계대전 원인 논쟁: 피셔 논쟁 이후 어디까지 왔는가?〉 (2014년, 영국연구 32호)
-이장훈 〈하마스, 이스라엘 전쟁의 이면에 담긴 국제정치 함수〉 (월간중앙 2023년 11월 17일)
“모든 해답은 역사 속에 있다.” 초 단위로 넘치는 온라인 뉴스 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잡기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면 연이은 뉴스들 사이에서 하나의 맥락이 보일 수 있습니다. 문화재, 학술 담당으로 역사 분야를 여러 해 취재한 기자가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뉴스를 분석하고, 미래에 대한 인사이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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