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병원 가세요" "파업 의사 오지 마" 환자 떠난 의사, 의사 떠난 민심

정심교 기자 2024. 4. 2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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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신장분과 교수 2명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공지한 전원 안내문(왼쪽)과 파업에 동참한 의사들에 대해 출입을 금지한다고 공지한 식당의 SNS 게시물. /사진=의료계 및 해당 식당 인스타그램

의사는 환자를 떠나고, 민심은 그런 의사를 떠나고 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한 대학병원 교수들이 사직 일정을 환자에게 고지하는가 하면, 환자를 두고 병원을 떠난 의사들에게 음식을 판매하지 않겠다는 불매(不賣·팔지 않음) 움직임이 민심에서 나타나고 있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신장분과 강희경·안요한 교수는 지난달 28일부터 환자들에게 "사직 희망일이 8월 31일로, 믿을 수 있는 소아신장분과 전문의 선생님들께 환자분을 보내드리고자 하오니 희망하시는 병원을 결정해 알려주시길 부탁드린다"는 안내문을 공지하고 있다.

이 안내문에는 서울 강북(3곳)과 강남(3곳), 경기(7곳), 지역병원(9곳) 내 전원이 가능한 병원들이 소개됐다. 예컨대 서울대병원 소아신장분과 환자가 이 병원을 쭉 다녔다면 "고려대 안암병원으로 옮기겠다"고 이들 교수에게 알려주면 전원 의뢰서를 써주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들은 "소변검사 이상, 수신증 등으로 내원하시는 환자분들께서는 인근의 종합병원이나 아동병원에서 진료받으시다가 필요시 큰 병원으로 옮기셔도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여러분 곁을 지키지 못하게 돼 대단히 죄송하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소아청소년 콩팥병센터를 운영하는 곳은 서울대병원이 유일하다. 서울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병원에 남아 진료하는 교수라 하더라도 매주 1회 외래 진료, 수술을 모두 취소하는 방안을 23일 총회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전공의에 이어 교수들까지 병원을 떠날 채비를 하자, 민심은 의사들을 등지고 있다. 21일 한 이탈리안 식당 대표는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의사들에 대해 출입을 막겠다는 글을 식당 공식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려 주목받았다.

해당 식당 대표는 "사업가는 언제 어떠한 경우에라도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떤 성향의 고객을 만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하지만 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라면 스스로 생각하는 본질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꿔버리는 기회주의자로 살아온 적이 없다"며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한 소신으로 살아갈 것이며,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불이익 또한 감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직 동참 의사에 대한 출입을 금지하는 데 따른 영업상의 손실도 감수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는 "잠정적으로 당분간 의료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관계자분을 모시지 않겠다"며 "정중하게 사양하겠다"고 공지했다.

2020년 전공의 파업 당시 한 카페 사장이 올린 커피 불매(不賣) 안내 공지문. /사진=SNS

환자를 등지고 병원을 떠난 의사를 보이콧하려는 움직임은 지난 2020년 전공의 파업 때도 나타난 바 있다. 한 카페 사장은 "파업에 참여한 의사들과 의대생들에겐 커피를 판매하지 않겠다"며 "사람 목숨을 흥정 대상으로 삼는 당신들은 커피 한 방울도 먹을 자격 없다"는 내용의 공지문을 내걸기도 했다.

한편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료계와 정부의 입장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으면서 이달 말부터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두 달 넘게 메워온 의대 교수들의 사직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암 등 중증질환과 필수의료 분야에 몸담아온 교수들마저 병원을 떠날 움직임을 보여 의료 공백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오는 25일은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등에 반대해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되는 날로, 민법상 사직의 효력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앞서 각 의대 교수들은 지난달 25일을 기점으로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차원에서 사직서를 취합했다. 하지만 22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일각에서는 4월 25일이 되면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지 한 달이 지나 자동으로 사직 효력이 발생한다고 하는데, 일률적으로 사직 효력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며 "사직서 제출 여부, 제출 날짜, 계약 형태는 상이하다"고 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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