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을 결정지을 두 가지 키워드
4·10 총선은 끝났다. 2024년 파이널 정치 이벤트, 미 대선 상황에 눈을 돌려보자. 맞대결이 성사된 바이든과 트럼프는 각각 ‘낙태 찬성’과 ‘이민 반대’라는 무기를 들고 서로를 저격하고 있다.
낙태를 둘러싼 양 진영의 전쟁은 2년 전 시작됐다. 2022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Roe v. Wade)’로 불리는 낙태 관련 판례를 뒤집는다. 기존 임신 6개월까지 가능했던 여성의 낙태권을 제한하면서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이 법에 의해 제약받게 됐다.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반발을 불러왔다.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에도, 이 나라에도 슬픈 날"이라고 분노했고, 찬반으로 엇갈린 많은 사람이 워싱턴 DC 연방대법원 앞에서 격렬한 시위(혹은 환호)를 벌였다. 분노한 시위대는 매년 수백 명이 사망하는 총기 사고를 꼬집으며 "법원이 총기 대신 여성의 자궁을 지배하려고 한다"고 맹비난했다. 여성들은 "나의 몸이고, 나의 선택(My body, my choice)"이라 외쳤고 낙태 옹호 남성들은 "그들의 몸이고, 그들의 선택"이라며 발을 맞췄다. 분노한 사람들은 "법이 침실로 들어왔다"고 비난했다.
연방대법원 결정에 대한 파장은 길었다. 5개월 뒤인 2022년 11월 민주당은 중간선거에서 선방했다. 정확히 대통령 임기 가운데 열리는 중간선거는 4·10 총선과 마찬가지로 정권심판 성격이 강해 대개 야당이 승리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하원에서 9석을 빼앗겼지만, 상원에서는 1석을 얻으며 예상보다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외신은 "낙태 이슈가 중간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낙태권 침해 피해자들, 나에게 오라"
2022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사생활, 자유, 평등에 대한 권리는 모두 투표용지에 있다"고 투표를 독려했던 바이든은 이번 연설에 낙태권 침해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초청해 주요 좌석에 앉혔다. 실제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일부 주가 낙태를 금지하면서 성폭행으로 임신했거나 태아 또는 산모의 건강이 위협받는 때도 수술하지 못해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일부 산모가 법을 피해 수백km 떨어진 다른 (낙태 가능한) 지역에 가서 수술받거나 음성적으로 치료하게 돼 특히 저소득층, 이민자 등이 더 큰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도 문제로 지적된다.
백악관과 민주당은 '여성 권리’를 부각하고 동시에 트럼프를 공략할 수 있는 핵심 어젠다로 낙태를 적극 활용 중이다. 특히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3%p 차이로 패배한(트럼프 51%, 바이든 48%) 곳이자, 11월 낙태 관련 국민투표가 예정된 플로리다에서도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2022년 낙태권 제한을 결정한 대법관 5명 중 3명은 트럼프가 재임 당시 임명한 보수 성향 대법관이다. 임기가 마무리되기 전 조속히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을 임명한 트럼프의 전략이 통했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 전역에서 낙태를 지지하는 사람은 60% 이상. '파이낸셜타임스’가 "낙태 문제가 트럼프의 워털루 전투(나폴레옹이 몰락한 전투)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 이유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왜 선거 공학적으로 다수 여성 표와 일부 남성 표심을 잃을 게 뻔한 낙태 규제에 열을 올릴까.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에드워드 루수는 4월 "공화당의 '복음주의’라는 꼬리가 공화당이라는 개를 흔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수적인 공화당 바탕에 최근 트럼프식 복음주의가 색을 더하면서 낙태 문제에 보다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해석이다. 최근 각종 소송에 휘말린 트럼프 전 대통령은 60달러에 성경을 판매한다고 밝혔다.
"이민자가 미국의 피를 오염시킨다"
트럼프의 도 넘는 발언은 미국 유권자들의 이민 문제에 대한 민감한 반응에 기인한다. 멕시코 국경을 통한 이주민의 불법 입국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반(反)이민 정서가 확대되고 있다. '갤럽’이 지난 2월 1~20일 미국 성인 10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이민을 꼽은 응답자가 28%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정부(20%), 경제 일반(12%), 인플레이션(11%), 빈곤·굶주림·노숙(6%) 등의 순이었다. 갤럽 조사에서 이민 문제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꼽힌 것은 2019년 7월(27%) 이후 처음이다.
바이든은 딜레마에 처해 있다. 이민자 문제에 단호한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역사적으로 '민주당의 가치’에서 봤을 때 이민자를 비난하고 고립시키는 것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현실적으로 바이든에게는 이민자들의 표가 매우 중요하기도 하다. 경합 주인 애리조나를 비롯한 일부 주에서 불법 이민 문제가 심각해지자 바이든의 발언이 좀 더 강경해지고 있다. 일례로 바이든은 불법 월경 문제가 심각해지면 대통령에게 국경을 닫는 '긴급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국경 법안 통과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평균 불법 월경이 5000건에 달하면 긴급 권한 효력이 발생하는 동시에 대부분의 난민 심사가 중단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합 주 민심과 이민자 표심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딜레마 상황에 놓인 바이든과 달리, 이민자들을 상대로 공격을 해온 트럼프는 반(反)이민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공화당은 연두교서에 불법 이민자로 인해 피해를 입은 가족들을 초청했다. 초청 명단에는 미국에 불법 입국한 갱단 조직원에 의해 딸을 잃는 비극을 겪은 인물도 포함돼 있었다.
이민자 정책은 미국의 국경보호 같은 군사적 문제,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서류 미비 이민자의 합법적 신분 취득 등 복잡한 사안이 얽혀 있다. 이민자들이 국경 지역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면서 사회경제적 이슈도 등장했다. 2025년이 되면 백인이 미국 내에서 다수민족 지위를 잃고 소수민족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가 나온 게 벌써 5년 전이다. '불법’ 이민이 아닌 이민자 전체에 대해 미국인들의 시선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바이든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 옹호로 트럼프를 저지할 수 있을까.
#바이든 #트럼프 #낙태 #이민 #여성동아
사진 AP뉴시스
이승원 국제 칼럼니스트
Copyright © 여성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