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낮은 금리가 정상일까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4. 4. 2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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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사진=유효상

미국 연준은 주로 '물가와 고용'지표를 참조하여 금리를 결정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물가상승률 '2%'를 통화 정책의 기준으로 삼고, 동시에 고용도 신경 쓴다. 굳이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고용이 먼저다. 지금과 같이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높고, 경제성장이 견조하고 고용 환경도 호전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굳이 금리를 내릴 이유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파월 의장은 지난 주 워싱턴에서 열린 포럼에서 "작년에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둔화됐던 인플레이션이 금년에는 진척이 없다"고 언급하면서, 금리인하를 확신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2년부터 미국은 11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현재 금리는 5.25~5.5%를 유지하고 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둔화되면 조속히 금리를 인하하겠다고 예고했었다. 그러나 연준의 기대와 달리 인플레이션의 하락 속도가 더디다.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는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목표치인 2%보다 훨씬 높다. 3월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3.5% 상승하여 2월의 3.2%보다 오히려 더 높아졌다. 이는 전문가들의 예상치를 상회하는 수치다. 올해 인플레이션이 2%이하로 내려갈 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또한 3월 고용보고서에 따르면, 3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늘어나며 노동시장이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실업률은 3.9%에서 3.8%로 떨어지며 매우 안정적이다. 정체된 인플레이션 하락세와 견고한 노동시장은 연준이 금리 인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이렇게 미국 경제가 놀랄 만큼 활기를 띠자 금리 인하 필요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연준 위원들도 금리인하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는 2024년 전미경제학회에서 올해 미국의 적정 금리 수준은 5%라고 발표했다. 또한 중장기 기준금리도 3~4% 선에서 형성될 것이며, 낮은 금리를 기반으로 자산시장 버블을 만들었던 '제로금리' 시대는 막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테일러 교수는 중앙은행의 적정 금리를 결정하는 기준을 제시한 '테일러 규칙Taylor Rule'으로 유명한데, 이 규칙은 인플레이션과 생산량 격차를 기반으로 금리를 산정하는 방식으로 연방준비은행을 포함한 전 세계 중앙은행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저명한 경제학자들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올리면 경기침체가 불가피하다고 했지만,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지 않고 연착륙 가능성이 커지자, 100년에 한 번 정도 발생할까 말까 한 팬데믹과 같은 특수한 상황을 기존 경제모형에 기계적으로 적용한 것이 실수였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면서 금리인하에 대한 신중론을 펴고 있다.

역사는 비슷하게 반복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과거를 쉽게 잊어버린다. 요즘 미국 금리가 그렇다. 작년부터 '금리가 곧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시장을 휩쓸었다. 금년에만 7차례 금리인하를 호언장담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그러나 4월말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한 차례 인하도 없었다. 심지어는 올해에는 금리인하가 없을 거란 전망도 나오기 시작했다. 오히려 추가 인상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세계적 투자은행 UBS는 금리인하가 아닌 인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내년 기준금리가 6.5%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현재로는 '금년 하반기 인하론'이 대세다. 그러나 이 또한 알 수 없다. '금리는 조만간 내릴 것'이라는 막연한 전망으로 투자자들을 유혹하고 사라지는 희망고문이 거의 1년동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은 최근 수십년 동안 '저금리 국가'가 아니었다.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1950년대 2%대에서, 1980년대에는 15%까지 올랐다. 1990년대 평균 금리도 6.7%다. 1953년부터 2023년까지 70년간 평균은 5.57%다. 2024년 4월 말 현재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4.6%를 약간 넘는 수준으로 과거 평균보다 오히려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리는 낮아야 정상(normal)'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전문가들이 많다. 오랜 기간 전세계가 저금리, 저물가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각국 중앙은행들이 무제한에 가까운 금융완화 정책을 펼쳤고, 나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일 만하면 위기가 터졌다.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20년 팬데믹 등이다. 저금리는 주식, 부동산 등 자산가치를 끌어올렸다. 가처분 소득이 늘어난 소비자들도 지갑을 열었다. 국채 이자 부담이 줄어든 주요국 정부도 정치적 이득을 노리고 아낌없이 재정을 퍼부었다.

그런데 저금리 시대가 지난해 급작스레 막을 내렸다. 막대한 유동성의 후폭풍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치자 물가가 폭등했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금리 인상 행렬이 이어졌다. 미국 중앙은행은 불과 1년여 만에 제로금리를 연 5%대로 끌어올렸다. 같은 기간 한국도 기준금리를 연 0.5%에서 3.5%로 인상했다. 연 3.5%나 5%가 절대적 수치로 높다고 할 수 없지만, 10년 이상 저금리에 취해 있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컸다. 금리가 단기간에 300%, 400%씩 튀어 오르자 경제가 여전히 활황인 미국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나라가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다. 그래서 많은 국가가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리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지만, 높은 물가와 연이어 발발한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전쟁으로 결정이 쉽지 않다. 또한 미국이 고금리를 지속하는 한 다른 나라들도 금리를 내리긴 어렵다.

금리인하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금리정상화 (interest rate normalization)'가 목적이라 한다. 지금 금리가 너무 높기 때문에 금리를 낮춰서 정상(normal)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금리를 올릴 때도 정상화를 강조한다. 너무 낮기 때문에 올려서 정상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정상일까.

제로 금리시대를 기준으로 보면 현재 미국 금리는 지나치게 높고, 70년간의 평균금리에 비하면 약간 낮은 수준이고, 과거 폴 볼커 의장 시절에 비하면 지나치게 낮다. 금리에서 절대적인 정상은 없다. 정상은 언제나 상황의 지배를 받는다. 처해진 경제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달라져야만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해관계에 따라 목소리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금리는 그럴만한 상황이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면 내려갈 수도 올라갈 수도 있다.
지난 주말 임기를 마친 조윤제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지금은 금리를 내릴 여건이 안 된다며, "통화정책보다도 생산성 저하, 고령화, 저출산 등으로 인한 경제성장 둔화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 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루 빨리 대한민국 경제가 회복되기를 기대해 본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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