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도 누군가에겐 ‘돈 줄’…단둥의 꿈은 이뤄질까 [특파원 리포트][북중접경]②

김민정 2024. 4.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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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신의주와 마주보고 있는 접경지대로 잘 알려진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에는 현지 발음으로 '신청취(新城區)', 줄여서 '신취'라고 불리는 지역이 있습니다.

신압록강대교와 새 단둥 세관 건물 일대로, 북중무역으로 유명한 단둥에서 새로운 무역 중심지가 될 곳으로 손꼽히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이 지역에는 불명예스러운 별칭도 하나 붙어 있습니다. 바로 '유령도시(鬼城)'입니다.

[연관 기사] 북·중 접경지역은 지금… 밀착에 ‘관광 회복’ 기대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39272

■유령도시로 변한 새 북중 무역 중심지…왜?

태양절로 잘 알려진 북한 김일성 생일을 앞두고 단둥 신취를 찾았습니다.

취재 첫날, 밤 9시쯤 도착해 늦은 저녁을 먹으려 하니 문을 연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고깃집이든 호프집이든 간판만 켜놓고 영업은 종료한 상태였습니다.

원래 일찍 문을 닫는 것이 지역 문화인가 했는데, 주택가로 들어가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빽빽이 들어선 고층 아파트에 정작 불을 켜놓은 집은 손에 꼽을만큼 적었기 때문입니다.

현지인들의 설명에 따르면 신취에서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아파트는 건설되는 족족 팔려나갔지만 사실 북중 무역 활성화 호재를 기대하는 투자의 성격이 큽니다.

대부분 외지인이 부동산 투자용도로 구매해 관광객들에게 임대를 주거나 비워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머지도 북중 무역업자들이 앞으로 사용할 사무실 겸 새집 장만을 위해 미리 사둔 것이기 때문에 실거주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겁니다.

단둥 신취의 전경. 신압록강대교 개통을 기대하며 고층 빌딩과 새 세관 건물이 들어섰지만, 미개발 부지도 적지 않다.


단둥 신취는 본래 새로운 북중 무역 중심지를 만든다는 목표에 따라 건설됐습니다.

북중 국경 국제 금융 무역과 물류 허브 역할을 위해 서쪽으로 201번 국도, 동쪽으로 북한 신의주와 맞닿은 압록강변을 끼고 있는 부지를 골라 터를 닦았습니다. 40만 명이 거주할 수 있습니다.

2014년 완공된 신압록강대교, 다리와 통하는 새 단둥 세관 건물, 그리고 그 인근의 고층빌딩이 신취를 상징합니다.

지금까지는 압록강철교를 통해 북중 화물차와 열차가 오갔지만, 신압록강대교가 개통되면 이곳을 중심으로 화물 무역이 이뤄질 전망입니다.

세관 역시 이를 고려해 신압록강대교 쪽에 새 건물을 지었고, 인근에 들어선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니 벌써 몇몇 무역 회사들이 사무실 간판을 달아 놓은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문제는 정작 신압록강대교는 10년째 개통되지 않고 있고, 북중 무역도 언제 예전 수준으로 올라설지 모른다는데 있습니다.

새 북중 무역 중심지에서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도시까지, 신취는 북중관계의 부침에 따라 희비가 갈렸습니다.


신 압록강대교 건설 등 굵직한 호재 속에 한 때 1제곱미터당 6천 위안 수준까지 올랐던 신취의 부동산 가격은 2014년 완공된 대교의 개통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4천 위안 수준까지 가격이 급락했습니다.

그러다 2018년 3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 및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소식이 전해지며 다시 유망한 부동산 투자처로 각광 받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중국 매체 기사를 살펴보면 하루 사이에 50%가 뛴 사례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국경봉쇄, 한반도 정세 긴장 고조 등의 악재가 닥치며 신취 부동산은 요즘 들어서는 좀처럼 과거의 기대만큼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인 집값 상승 흐름에 따라 가격은 조금씩 올랐지만, 단둥 전체 평균 부동산가격이 지난해와 올해 사이 1제곱미터당 7082위안에서 7372위안으로 오른데 반해 신취는 7066위안에서 7046위안으로 떨어지며 오히려 약보합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취가 요즘 들어 조금씩 들썩입니다. 북중 교류 활성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압록강대교 인근 고층 빌딩의 1층 내부 모습. 사무동이 될 고층에는 모델하우스용 인테리어도 진행중이었다.


■신압록강대교 개통?…북중 교류 확대에 '들썩'

"국가 차원의 정책과 신압록강대교 개통 정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약 신압록강대교가 개통되면 이 건물은 순식간에 다 팔리고 없을 겁니다"

신압록강대교와 새 세관건물 인근 25층짜리 고층빌딩을 찾아간 기자에게 개발업체 직원이 건넨 말입니다.

한 때 공사를 멈췄던 걸로 알려진 건물인데, 8월 완공을 목표로 이미 모델하우스 인테리어에 한창이었습니다.

직원이 준 홍보 책자 속 '미래 중조(중국과 북한) 무역의 첫 번째 문'이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습니다.

직원은 저층은 상업 시설로, 창문으로 압록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고층은 사무동으로 임대를 줄 계획이라면서 연신 투자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신압록강대교 북한 방향을 손으로 가리키며 '최근에 북한 쪽에서 보수 공사를 하는 듯한 모습을 봤다'고도 했습니다.

북중교류가 곧 정상화 될 수 있다고 넌지시 말해주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압록강철교 아래 북한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 사이로 관광객들이 오가고 있다.


올해는 북중 수교 75주년, '북중 우호의 해' 입니다.

제로 코로나 이후 지난해 말부터 압록강철교를 통한 북중 화물차 운송이 재개됐고, 지금은 하루에 20대가량, 많게는 70대 가까이 차가 오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 서열 3위인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해빙 분위기가 조성되자 북중무역과 북한 관광을 주 먹거리로 삼는 단둥에서 북중 교류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코로나로 관광이 멈추며 타격을 입었던 여행사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압록강변의 한 여행사에서는 아쉬운 대로 일단 4년 전 북한 관광 상품 홍보 전단을 꺼내놓고 있었습니다.

평양 4일 관광에 인당 2980위안(우리돈 약 57만 원).

여행사 관계자는 "4년 전 가격이기 때문에 금액은 달라질 수 있다"면서, "올해가 북중 우호의 해이니 연내에는 관광이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습니다.

압록강철교 근처에서 각종 북한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도 "코로나 시기에는 이조차 구하기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차가 다녀서 구하기 쉬워졌다"면서 철교를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노점상에서 판매하는 북한 기념품들. 담배와 목걸이, 팔찌 등 저렴한 기념품이지만 이들에게는 중요한 수입원이다.


■북중관계, 훈풍? 한파?…'기대 금물' 지적도

하지만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한 대북 소식통은 기자에게 "신압록강대교가 개통한다는 소문은 지난해에도 들렸다"면서 "사람들은 집값이 오르는 것을 기대하지만 언제 개통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북중관계는 단순한 양자 간의 관계가 아닙니다.

미국, 러시아를 둘러싼 국제 역학관계 등 정치적 변수가 큰 만큼, 북중관계가 언제 어느 수준까지 회복될지는 지켜보아야 합니다.

단둥 압록강변에서는 북한 신의주 땅이 손에 잡힐듯 가깝습니다.

북중관계의 훈풍과 한파를 가장 먼저 느끼는 땅인만큼, 단둥 신취의 기대가 현실이 될지 한 때의 꿈으로 그칠지 역시 앞으로의 국제 정세와 북중관계의 변화에 달려있습니다.

(그래픽 : 이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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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기자 (mjne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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