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냥꾼·경영난·세무조사 ‘삼중고’에 만신창이 된 대우조선해양건설

송응철 기자 2024. 4. 2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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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산은 공개 매각 이후 네 차례나 주인 바뀌어…어렵게 법정관리 졸업했지만 국세청 세무조사로 또 ‘발목’

(시사저널=송응철 기자)

대우조선해양건설이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용빈 회장발(發) 악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때 4000억원대 연매출을 올리던 중견 건설사 대우조선해양건설은 김 회장 등 기업사냥꾼들의 손을 거치며 사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2022년부터는 임직원들의 임금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이후 기업회생절차를 거치며 스카이아이앤디를 새 주인으로 맞아 정상화에 속도를 냈지만 이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제동이 걸렸다. 김 회장에 대한 수사와 맞물려 국세청이 특별 세무조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건설의 경영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건설 사옥 ⓒ시사저널 최준필

계속된 자금 유출로 사세 '휘청'

대우조선해양건설 잔혹사의 시작은 2017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우조선해양건설은 최대주주이던 산업은행이 공개 매각을 진행하며 M&A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대우조선해양건설은 사모펀드인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키스톤PE)를 거쳐 JR파트너스에 인수됐다. 인수가는 구주 인수 대금(45억5000만원)과 유상증자를 통한 신주 발행 대금(125억원)을 더한 170억5000만원이었다.

JR파트너스는 현재 구속 상태인 한아무개씨가 자본금 1000만원으로 설립한 법인이었다. 그는 자동차 부품업체 화진 등 여러 상장사를 무자본 인수한 기업사냥꾼이었다. 라임 사태의 주범 중 한 명으로 지목되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인수했던 스타모빌리티(당시 인터불스)도 한때 한씨의 소유였다.

대우조선해양건설 경영권 확보 직후 한씨는 친형을 대표이사로 내세우는 등 전체 경영진 7명 중 6명을 자신의 측근들로 채웠다. 그는 이후 대여 등을 명목으로 대우조선해양건설 유보금을 외부로 유출하기 시작했다. 가치가 전무한 부동산을 담보로 잡거나, 부지조차 마련되지 않은 공사 수주를 빌미로 자금을 대여하는 식이었다.

대우조선해양건설이 김 회장에게 인수된 건 2019년 1월이었다. 한씨와 고등학교 선후배 관계인 김 회장은 당시 자신이 실소유한 한국테크놀로지를 통해 대우조선해양건설 지분 100%를 152억5000만원에 인수했다. 한씨가 대우조선해양건설을 매각한 건 이 무렵 그의 횡령 혐의 등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한씨는 그해 6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두고 중국으로 밀항을 시도하다 해경에 검거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한씨로부터 대우조선해양건설을 넘겨받은 김 회장 역시 M&A 시장에서 기업사냥꾼이라는 의혹을 받아온 인물이다. 그는 2017년 국내 1세대 고객관리(CRM) 서비스 기업 한국코퍼레이션(옛 피엠씨)을 시작으로 한국테크놀로지와 이디(현 코너스톤네트웍스), 수성 등 상장사들을 차례로 무자본 인수했다. 사채업자나 저축은행으로부터 융통한 자금으로 상장사를 인수한 후 해당 기업의 자금을 사채 변제나 새로운 상장사 인수에 활용하는 식이었다.

실제로 김 회장이 인수한 기업 대다수는 상장이 폐지되는 등 위기에 내몰렸다. 대우조선해양건설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투자나 대여 등 명목으로 유보금 240억원가량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유동성 위기에 내몰렸다. 이 때문에 하도급 대금 지급이 지연되면서 고양시 공공분양주택 공사가 중단되는가 하면, 1500억원 규모의 경기도 평택 고덕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공사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대우조선해양건설의 재무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했다. 2022년 말 대우조선해양건설의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1896억2500만원 초과했고, 순자산은 –2034억6500만원을 기록했다.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도 각각 887억3800만원과 2492억4800만원에 달했다. 이 때문에 대우조선해양건설은 2022년 5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임직원들의 임금과 퇴직금도 지급하지 못했다. 이 기간에 미지급된 임금 및 퇴직금 규모는 47억원에 달한다.

견디다 못한 대우조선해양건설 노동조합은 2022년 말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고, 지난해 2월 회생절차가 개시됐다. 대우조선해양건설은 지난해 6월 매각 절차에 돌입해 같은 해 8월 스카이아이앤디에 인수됐다. 이후 대우조선해양건설은 올해 1월 이주용 스카이아이앤디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고 경영 정상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의 특별 세무조사가 시작되며 발목이 잡힌 상황이다. 이번 국세청의 세무조사 역시 김 회장에 대한 수사의 연장으로 알려졌다.

횡령과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용빈 대우조선해양건설 회장 ⓒ연합뉴스

늑장 수사, 부실 키운 요인으로 지목돼

일각에서는 수사기관의 뒤늦은 대응을 대우조선해양건설 경영 악화의 한 배경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수사가 계속 지연되면서 대우조선해양건설의 부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것이다. 김 회장의 대우조선해양건설 무자본 인수 및 횡령 의혹은 2020년 8월 시사저널의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시사저널 제1608호 '[단독]김용빈 한국홀딩스 회장 검찰 수사에 드리운 기업사냥꾼의 그림자' 참조).

이 무렵 검찰에는 김 회장에 대한 각종 고소·고발이 접수됐다. 그러나 검찰이 김 회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건 시사저널 의혹 제기로부터 20개월여 후인 2022년 4월이었다. 그마저도 당시 압수수색 대상에는 한국코퍼레이션과 한국테크놀로지 본사, 김 회장의 자택만 포함됐다. 대우조선해양건설에 대한 검찰의 강제수사는 지난해 2월에야 이뤄졌다.

수사 결과, 시사저널이 제기한 의혹이 모두 사실로 밝혀지면서 김 회장은 지난해 4월 자본시장법 위반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우선 2018년 12월 사채를 이용해 279억원 규모 한국코퍼레이션 유상증자 대금을 가장 납입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한국코퍼레이션은 자본잠식 해소를 명목으로 3자 배정 유상증자와 CB 발행 등을 단행했다. 그러나 가장 납입된 자금은 페이퍼컴퍼니로 흘러가 주가를 부양하기 위한 용도 등으로 사용됐다.

김 회장은 사채 변제를 위해 대우조선해양건설 자금 50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는다. 여기에는 사채업자가 소유한 대전 소재 부동산을 고가에 매입하는 방식이 동원됐다. 또 법인카드로 명품을 구매하고 법인 명의의 포르쉐 차량을 사적으로 이용하는 등 4억원 상당을 횡령한 혐의도 있다. 이 밖에 2020년 3월 외부감사인으로부터 재무제표에 대한 의견거절을 받아 거래가 정지되기 직전에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자신과 특수관계법인이 보유 중이던 주식을 처분해 손실을 회피한 혐의도 적용됐다.

M&A 업계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가 지연된 배경을 김 회장의 화려한 인맥과 연관 짓는 시각도 적지 않다. 김 회장은 체육계를 중심으로 정치권, 검찰까지 거미줄식 인맥을 형성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김 회장은 체육계 원로인 이아무개씨의 도움을 받아 스포츠계에서 입지를 쌓았다.

검찰은 2022년 4월과 2023년 2월 김용빈 대우조선해양건설 회장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시사저널 박정훈

김 회장 거미줄 인맥도 '눈길'

그 결과 2017년 대한카누연맹 회장에 올랐고, 2018년에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부단장을 맡았다. 또 2021년에는 대한컬링연맹 회장으로 선출됐고,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 선수단 부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스포츠계에서의 입지를 발판으로 정치권까지 인맥을 확장했으며, 검찰 고위직들의 주변인을 자신이 실소유한 기업의 사외이사로 채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법조계 인맥도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특히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줄을 대기도 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총장이던 윤 대통령의 '절친'으로 알려진 문아무개 변호사를 한국테크놀로지 사외이사에 선임했다. 또 지난 대선에서는 당시 예비후보이던 윤 대통령에게 1000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자신의 최측근인 김아무개씨를 통해 이재명 대표와도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한국코퍼레이션 대표이사와 대한카누연맹 부회장을 역임한 김씨는 지난 대선 직전에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대책본부 회장을 맡아 이 대표 선거에 힘을 보탠 바 있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김 회장이 평소 주변에 입버릇처럼 정치권과 법조계 인맥을 과시하고 다녔다"며 "김 회장에 대한 수사가 계속 지연되자 그의 인맥 자랑이 마냥 허풍은 아니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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