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고향사랑기부제, 감정 호소 탈피해야

이규희 2024. 4. 23.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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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사랑기부제'는 고향에 대한 건전한 기부문화를 조성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처음 시행됐다.

이름만 놓고 보면 촌을 떠난 중장년 도시민이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응원의 마음을 담아 보내는 기부금 같지만, 지난해 전체 기부건수 52만건을 분석해 보니 실질은 명칭에 상응하지 않았다.

기부금을 통해 지방재정을 확충한다는 목표 아래 고향사랑기부금법이 만들어졌지만, 기부 주체인 시민들은 답례품과 세액공제 등 잿밥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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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사랑기부제’는 고향에 대한 건전한 기부문화를 조성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처음 시행됐다. 이름만 놓고 보면 촌을 떠난 중장년 도시민이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응원의 마음을 담아 보내는 기부금 같지만, 지난해 전체 기부건수 52만건을 분석해 보니 실질은 명칭에 상응하지 않았다. 30대가 전체 기부자의 29%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이어 40대(27%) 순이었다.

기부금으로는 대부분(84%)이 세액공제 한도인 10만원을 냈고, 모금액의 40%는 직장인들이 ‘13월의 월급’ 준비하는 12월에 모였다. 결국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30∼40대 근로소득자가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고향사랑기부제에 동참했다는 의미다. 지인 중에서도 지난해 연말까지 제도의 존재를 모르다 ‘연말정산 꿀팁’ 광고 등을 보고 부랴부랴 기부금을 냈다는 이가 적지 않았다.
이규희 사회2부 기자
기부금을 통해 지방재정을 확충한다는 목표 아래 고향사랑기부금법이 만들어졌지만, 기부 주체인 시민들은 답례품과 세액공제 등 잿밥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상황. 흥행에 성공하면서도 입법취지를 달성할 수 있을까. 이달 초 만난 일본의 지방 소도시 공무원들은 모범 답안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보다 15년 앞서 고향납세 제도를 시작한 이들은 전체 기부금의 70∼80%를 납부하는 간토(關東)·간사이(關西) 지역의 안목 높은 기부자들을 끌어들이려 치열한 답례품 경쟁을 벌이다 보니 고용 창출 등 긍정적인 효과를 부르며 지역경제에 활력이 일었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치면 읍 단위 규모인 한 지자체 고향세 담당 공무원은 “한국 손님이 찾아와 오늘은 양복을 입었지만, 대부분 편한 복장으로 답례품 생산자들을 만나러 나가 새로운 상품을 찾는다”며 웃었다. 백화점 고객을 유치하듯 성의껏 답례품을 소개할 뿐 아니라, 도시민을 지역에 유도할 만한 체험형 콘텐츠 개발에도 공을 들인다는 설명이었다. 기부자들의 이기적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이 궁극적으론 지역 활성화로 이어졌고, 일본의 고향세 시장은 연 1조엔 규모로 커졌다.

고향사랑기부제 시행 첫해 우리나라는 약 650억원을 모금했다. 행정안전부는 ‘적지 않은 금액’이라며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자평했지만 실상은 다르다. 2022년 한국지방세연구원은 기부금이 연 987억원 정도일 것으로 예측했는데, 추산액의 70%에도 미치지 못했다. 기부금 상위를 차지한 지자체들 중 여러 곳 역시 답례품의 경쟁력 덕분에 얻어낸 성과라기보다 지자체장의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한 개인기와 지자체 간 교차 기부 그리고 불법과 편법 사이 어딘가의 수단에 기댄 결과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일본의 성공사례는 ‘재정난에 시달리는 고향에 힘을 모아달라’는 감정적 호소나 출향 인사들의 선의에 의존하는 대신 답례품의 힘으로 지역의 ‘팬‘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행안부도 할 일이 많다. 민간플랫폼 도입, 법인 기부 허용, 세액공제 범위 상향 조정 등 지자체와 민간의 요구사항이 빗발치고 있다. 과도한 규제로 기부를 꺼리게 만드는 현재의 상황이 장기화된다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 되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규희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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