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인공지능 시대의 건축
용도·예산·건축주 취향 등 입력
AI, 완벽 결과물 제시 전망에도
인간의 미학 품은 건축, 의미 있어
인공지능의 시대! 뛰어난 지능으로 이 세상의 지배종이 된 인간이 또 하나의 지능을 만든다. 인공지능이다. 이제 대화창에 텍스트를 입력하면 그에 맞춰 이용자가 원하는 글, 이미지, 영상 등을 생성하는 챗GPT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인공지능 칩을 설계하는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세계 최정상권을 달리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류의 미래를 풍요롭게 할 것이란 기대부터 인류를 위협하는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바라보고 있다.
건축 생산 과정을 살펴보면 인공지능의 쓰임새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건축 생산은 크게 설계와 시공으로 나눌 수 있다. 음악에 비유하면 작곡과 연주가 이에 해당한다. 작곡가가 자신이 구상하는 소리로 구현될 음악을 음표로 표시하듯이 건축가는 삼차원으로 구현될 건축물을 이차원의 평면에 도면으로 표현한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건축가는 구상하는 건축물을 도면으로 표현하기 위해 제도판 위에 종이를 붙여 놓고 연필과 자를 이용해 수많은 도면을 그려야 했다. 대지와 건축물의 관계를 표시하는 배치도, 각 실의 위치와 면적 그리고 동선을 표현하는 평면도, 건축물의 외관을 보여주는 입면도, 특정한 부분을 잘라서 보여주는 단면도, 특정 부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세히 보여주는 상세도 등 도면의 종류도 수없이 많다. 보통 한 건축물에 수백 장의 설계 도면이 필요하다. 도면을 그리는 것은 지난한 작업이라 스탠드 불빛 아래 연필과 자를 들고 씨름하다 보면 밤을 지새우는 것이 예삿일이었다. 삼차원을 이차원으로 표현해야 하는 처절한 노력이었다.
컴퓨터의 출현으로 건축가가 도면을 그리는 작업에 변화가 생겼다. 우리가 한글과컴퓨터의 한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 등 각종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으로 글을 쓰듯 건축가는 캐드(CAD)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도면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손으로 글을 쓸 때보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이 수정과 편집에 용이하듯이 손으로 도면을 그릴 때보다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등장하기 전 컴퓨터는 인간의 지시를 받아 작업을 수행하는 도구에 머물러 있었다. 모든 창의적인 생각은 인간의 머리에서 나와야 하고 컴퓨터는 이를 실행하는 수단이다. 소설가가 글을 쓸 때 원고지 대신 컴퓨터로 글을 쓰고 건축가는 종이 대신 컴퓨터로 도면을 그릴 뿐이다. 물론 이차원의 도면을 이용해 삼차원으로 건축물의 모양을 구현할 수 있어 앞으로 세워질 건축물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생각은 건축가한테서 나와야 한다.
알파고나 챗GPT처럼 스스로 학습하고 표현할 수 있는 인공지능 건축 프로그램이 나오면 필연적으로 건축 환경도 바뀔 것이다. 이제 바둑에서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이 자명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프로 기사들의 바둑을 즐긴다. 올 초에는 한국 바둑 기사 신진서가 제25회 농심신라면배에서 일본과 중국의 강자들을 연파하고 우승해 우리나라 바둑 애호가들이 환호했다. 인공지능이 없던 시절, 프로 기사가 대국하면 바둑 팬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프로 기사가 해설했다. 당연히 해설자는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해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바둑 해설자는 매 순간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최선의 경우를 참고하면서 해설한다. 인공지능의 실력이 프로 기사보다 월등하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정도와 방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건축도 이와 같이 되지 않을까. 고대부터 현대까지 정립된 건축 이론과 역사, 전 세계의 지리 정보, 지금까지 축적된 유명 건축가의 작품, 건축 관련 법령 등 건축과 연관된 모든 것을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건축 인공지능이 나오면 어떻게 될까. 건축물이 들어설 대지의 규모와 위치, 건축물의 규모와 용도, 가용한 예산, 건축주의 취향 등을 입력하면 완벽한(?) 건축물을 인공지능이 제시할 날이 오지 않을까. 이대로 꼭 들어맞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하나 인공지능이 대세인 시대의 조류를 거스를 순 없다손 치더라도 나름의 미학을 품은 인간다움의 건축은 계속 유효하지 않을까.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니까.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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