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식의세계속으로] 봉이 김선달과 유럽의 미네랄 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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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허영심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다.
조선 시대 대동강의 물을 판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가 있듯 21세기 유럽은 땅에서 퍼 올린 샘물을 매우 비싼 값에 전 세계에 팔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 광천수의 맏형 격인 '페리에'는 19세기 말 프랑스 남부에서 개발되었는데 영국 사업가가 샘물을 사들여 영국과 미국 시장에 프랑스 자연 광천수라고 팔면서 인기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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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비판 목소리’ 언론·시민단체 존재 이유
‘미네랄’이란 칼슘, 마그네슘, 칼륨 등의 광물질을 함유한다는 뜻으로 건강을 챙기는 세련된 소비자를 유혹한다. 게다가 모든 먹거리에 적용되는 자연산의 프리미엄까지 더해 ‘내추럴’이 붙으면 금상첨화다. 보글보글 가스가 담겨있으면 물의 경지를 넘어 고급 음료로 격상한다.
예를 들어 유럽 광천수의 맏형 격인 ‘페리에’는 19세기 말 프랑스 남부에서 개발되었는데 영국 사업가가 샘물을 사들여 영국과 미국 시장에 프랑스 자연 광천수라고 팔면서 인기를 누렸다. 프랑스 샘물은 현지 프랑스보단 외국에서 더 인기를 끌었기에 20세기 초 페리에는 판매량의 95%가 영미 시장이었다. 다양한 포도주 가운데 샴페인이 독보적 왕좌를 차지하듯 페리에는 광천수의 샴페인으로 통했다.
올해 초 르몽드지와 라디오 프랑스가 광천수 생산 비밀을 폭로하면서 비싼 돈 들여 신선한 물을 마신다고 생각해 왔던 수많은 소비자가 머쓱해졌다. 프랑스에서 생산하는 광천수의 30% 이상이 소독의 과정을 거쳐 자연 광천수라고 부르기 어렵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자연의 광물질을 섭취하려고 수돗물보다 100배 이상 비싸게 사 마시는 물인데 소독하면 일반 수돗물과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소독을 거치면서 ‘자연’ 광천수라고 포장하면 불법이다.
심각한 현실은 영세 광천수 생산업자가 아니라 세계 최대 식품기업인 네슬레조차 불법적 물 소독을 하면서 소비자에게는 자연 광천수라고 속였다는 점이다. 네슬레는 페리에뿐 아니라 콘트렉스, 비텔 등 다수의 광천수 브랜드를 보유한다. 더더욱 걱정스러운 현상은 프랑스 정부가 2021년 이런 사실을 발견하고는 이듬해 규제를 완화하여 마이크로 필터를 통한 광천수 소독을 합법적인 과정으로 인정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광천수 스캔들이 발생할 경우, 경제와 고용에 미칠 악영향을 피하려 했던 셈이다.
광천수만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18일 스위스에서 열린 네슬레 주주총회에서는 아동 건강을 무시하는 대기업의 다수 상품도 비판받았다. 어릴 적 단맛에 길들이면 평생 비만이나 관련 질병에 시달릴 가능성이 커지는데도 네슬레가 생산하는 아동 분유의 상당수가 첨가당(添加糖)을 내포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이 아닌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에서 판매하는 분유는 첨가당을 포함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스위스 시민단체 퍼블릭 아이(Public Eye)는 폭로했다.
선진국에서 출범해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식품 기업 네슬레도 믿을 수 없고, 200년 넘게 과학적 근대 국가의 모델을 제공한 프랑스 정부와 정책도 신뢰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나마 독립성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언론과 스위스의 시민단체가 자국 기업과 정부, 국가 이미지나 단기적 이익을 뛰어넘어 감시와 비판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데 감사할 따름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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