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낳으면 1억 주는 부영처럼... 정부, 거액 일시 지원 검토
정부가 아이를 낳은 국민에게 자산·소득과 무관하게 자녀 1인당 현금 1억원을 지급하는 방안에 대한 대국민 설문 조사에 착수했다. 현재 정부의 저출생 대응은 출산·양육과 관련해 발생하는 비용의 일부를 보조해주거나 양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간접 지원’ 방식을 주로 하고 있는데, 이와 다른 ‘거액 현금 직접 지원’ 방식을 검토하는 것이다. 출산율 급락을 막는 데 300조원 넘게 쓰고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저출생 대응 정책의 방향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여론 수렴 웹사이트인 ‘국민생각함’(https://www.epeople.go.kr/idea)을 통해 지난 17일부터 출산·양육 지원금으로 1억원을 지급하는 방안에 대한 설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22일 밝혔다. 권익위는 설문에서 국민들에게 ‘정부가 1억원의 파격적인 현금을 직접 지원해준다면 아이를 낳는 동기 부여가 되겠는지’ ‘국가는 연간 약 23조원을 부담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정도 재정을 투입해도 좋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지역 소멸 대응 등 다른 유사 목적 예산을 활용해도 되겠는지’도 설문에 포함됐다. 조사는 오는 26일까지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중복 응답을 방지하기 위해 휴대전화 번호 인증 등을 거쳐야 한다.
권익위는 이 조사가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서 유철환 권익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계획을 보고한 뒤 시행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권익위는 이달 초 전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출산·양육 지원과 관련해 현재 무슨 사업을 하고 있는지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정부가 저출생 대응 정책 전면 재검토에 나선 것은 기존 정책이 ‘백약이 무효’였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정부는 저출생 대응에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8년간 380조원을 썼다. 지자체들이 자체적으로 벌인 사업은 제외하고 중앙정부 예산만 계산한 금액이다. 그러나 출산율 하락 추세를 되돌리는 데는 실패했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은 2006년 1.13명에서 지난해 0.72명으로, 18년 새 40% 가까이 감소했다.
정부는 ‘부영그룹 방식’을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 2월 부영그룹은 아이를 낳은 직원에게 자녀 1인당 1억원을 지급하고, 셋째를 낳은 임직원에게는 1억원과 국민주택 규모의 영구 임대주택에서 무상 거주할 권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의 복지 제도를 내놨다. 이 출산 장려금에 대해 증여세·근로소득세·법인세 등으로 최대 4000여 만원이 부과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지난달 5일 기업이 근로자에게 출산 장려금을 주면 관련 세금을 전액 면제해주기로 했다. 정부는 이 제도를 정부가 주체가 돼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를 들여다보겠다는 계획이다.
출산·양육과 관련해 억대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발상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허황된 정책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출산율이 급락하고 인구 구조와 경제의 붕괴 가능성이 제기되자, 정치권이 자녀를 갖는 부모에게 거액의 현금을 주는 방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세 자녀 이상 가구에 모든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전액 면제해주고, 결혼·출산·양육 관련 지원 제도의 소득 기준은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세 자녀 이상 가구에 1억원을 주겠다고 했다. 신혼부부에게 1억원을 대출해주고, 첫째를 낳으면 대출을 무이자로 전환하며, 둘째를 낳으면 원금 절반을 감면해주고, 셋째를 낳으면 원금 전액을 탕감해주는 방식이다.
다만 이번 설문 조사가 정부가 저출생 대응 정책 방향을 반드시 현금 직접 지원으로 전환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정부 관계자는 “현금 직접 지원을 선택지에서 배제하지 않고 검토 대상에 넣겠다는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했다. 권익위는 이번 조사를 바탕으로 출산·양육 정책 개편안을 만들어낸다는 계획이다. 개편안은 올해 안으로 권익위가 각 부처와 지자체에 ‘제도 개선 권고’ 형식으로 제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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