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이 사람] 존재감 없다가… ‘어쩌다 처칠’ 된 존슨 美 하원 의장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024. 4. 23.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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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표류하던 130조 안보 예산안
당내 강경파 반발 무릅쓰고 결단
역대 최약 평가 뒤집고 찬사받아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16일 미 의회 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연방 하원이 20일 우크라이나 지원 내용이 담긴 950억달러(약 130조원) 안보 예산안을 통과시킨 가운데, 반년간 표류하던 법안을 매듭지은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52) 하원 의장의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추종하며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 불리는 당내 강경파 반발을 무릅쓰고 정치적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모처럼 양당 협치를 되살렸다는 평가와 함께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 윈스턴 처칠(1874~1965) 전 영국 총리에 빗대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연방 하원 의장은 대통령·부통령(상원 의장 겸임)에 이은 미국 권력 서열 3위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존슨이 이 자리에 오를 때만 해도 ‘역대 최약체 하원 의장’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전임 케빈 매카시 의장이 당내 강경파 주도로 축출된 뒤 20여 일간 당내 갈등으로 후보 세 명이 잇따라 낙마하는 혼란 끝에 가까스로 선출됐기 때문이다. 1972년 루이지애나에서 태어난 존슨은 4선 경력에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고 친트럼프 성향 덕에 어부지리로 하원 의장이 됐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존슨 본인도 의장이 되기 전에는 트럼프식 고립주의를 지지하는 의원 중 한 명이었다. 미국의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에도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하원 의장이 된 이후 만난 사람들, 이 과정에서 접한 일급 기밀들이 그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존슨과 두 차례 만남에서 우크라이나 전황(戰況)에 대해 상술하며 지원을 호소했고,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여러 차례 브리핑을 통해 그 당위를 뒷받침했다. 이 밖에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에스토니아의 카야 칼라스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 등이 존슨을 붙잡고 왜 지금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하는지 설득했다고 한다.

이후 존슨은 주변에 “나는 이제 지역구 출신이 아니라 이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됐다”며 기조 변화를 시사했다. 공화당 하원 동료 의원들의 절절한 연설도 그를 변화시켰다. 맥스 밀러 의원은 가족의 3분의 2가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때 독일 나치에 의해 목숨을 잃은 비극을 말한 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하원 외교위원장인 마이클 매콜 의원은 20일 법안 표결을 앞둔 토론에서 “우리 각자가 스스로에게 ‘나는 체임벌린인가? 아니면 처칠인가’라고 질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나치 정권이 2차 대전을 일으키는 빌미를 제공한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과 연합군의 2차 대전 승전을 이끈 후임 처칠을 언급하며 우크라이나 지원의 당위성을 주장한 것이다.

존슨은 법안 처리 과정에서 강경파의 주장을 반영해 우크라이나 지원 일부는 상환 의무가 있는 차관 형태로 정하는 등 융통성도 발휘했다. 법안은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을 강하게 촉구해온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을 무난하게 통과해 바이든이 서명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텔레그램 메시지에서 존슨을 콕 집어 “역사가 올바른 궤도 위에 계속 있게 해줘서 특별히 고맙다”고 했다. 민주당의 로 카나 의원은 “나는 많은 이슈에서 존슨에게 동의하지 않고 그에게 비판적이지만, 존슨은 올바른 일을 했고 하원 의장직을 계속 유지할 자격이 있다”고 했다. CNN은 “어쩌다 하원 의장이 된 존슨이 예상 밖의 처칠이 돼버렸다”고 평가했다.

다만 앞으로 존슨의 정치 행보가 가시밭길일 가능성이 큰 것도 사실이다. 공화당 하원 의원 112명이 법안에 반대표를 던지는 등 그의 불안한 당내 입지가 확인됐다. 공화당 대선 후보 자리를 예약한 트럼프가 이번 법안 통과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낼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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