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투자하면 수수료 9900원... “ETF 고객 잡아라” 수수료 할인 경쟁

김승현 기자 2024. 4. 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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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운용, 0.0099%로 낮춰

최근 국내 ETF(상장지수펀드) 시장 1위를 두고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운용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삼성운용이 ETF 운용 보수를 국내 최저 수준인 연 0.0099%로 낮췄다. 투자자들은 수수료 인하에 환호한다. 하지만 수수료 인하 경쟁이 장기화되면 중소 자산운용사가 시장에서 밀려나면서 ETF의 전반적인 품질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래픽=박상훈

◇ETF, 0.0099% 수수료 등장

삼성운용은 지난 19일부터 S&P500 등 미국 대표 지수를 추종하는 ETF 4종의 운용 보수를 연 0.05%에서 국내 최저 수준인 0.0099%로 인하했다. 1억원을 투자하면 투자자가 부담하는 수수료가 9900원에 불과하다. 사실상 ‘무보수’라는 이야기가 업계에서 나온다. 운용 수수료가 인하되는 상품은 환노출형이자 배당을 자동으로 재투자하는 토탈리턴(TR)형 2종, 배당을 지급하는 환헤지(환율 위험 분산)형 2종 등 총 4개 ETF다.

삼성자산운용은 “해외 투자 ETF 분야에서 경쟁사의 점유율이 높아 고객 확보를 위해 수수료를 낮춘 측면이 있다”면서도 “장기 투자에서 수수료 인하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는 만큼 투자자들이 연금 계좌 내 장기 적립식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는 부분도 있다”고 했다. 지난 18일 기준 삼성운용은 총 54조원의 ETF를 운용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2020년 초만 해도 ETF 시장 1위 삼성운용과 2위 미래에셋운용의 점유율 차이는 27%포인트에 달했지만, 최근 그 차이는 3%포인트 정도로 좁혀졌다.

2위인 미래에셋운용은 당장은 “ETF 수수료 인하 계획을 갖고 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내부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지난달 삼성운용이 ‘KODEX 한국 부동산리츠인프라 ETF’의 총 수수료를 0.09%로 내놓자, 미래에셋운용이 곧바로 ‘TIGER 리츠부동산인프라 ETF’의 수수료를 0.29%에서 0.08%로 내린 바 있다.

미국 월가에서도 지난해부터 일부 자산운용사들이 점유율 확대를 위해 ETF 운용 수수료를 크게 낮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자산운용사 스테이트 스트리트(SSGA)는 S&P 500 지수를 추종하는 ETF 상품인 SPLG의 수수료를 0.02%로 낮췄다. 자산운용사 인베스코도 기존의 나스닥100지수를 추종하는 ETF ‘QQQ’(0.2%)보다 수수료를 0.05% 떨어뜨린 ETF ‘QQQM’을 내놓기도 했다.

◇중소 운용사들 “출혈 경쟁 심해질 것”

그런데 국내의 수수료 경쟁 배경엔 유사한 ETF 상품이 우후죽순 출시되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각 운용사들이 특화된 ETF를 내놓으면 수익률 경쟁이 더 우선할 텐데, 비슷한 상품이 많다 보니 투자자들이 결국 수수료가 저렴한 ETF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지수를 추종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특화 ETF는 수수료 경쟁에서 벗어나 높은 수수료를 받기도 한다. 예컨대 캐시 우드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아크 인베스트먼트가 내놓는 혁신 기업에 특화된 아크 ETF는 운용 수수료가 0.75%에 달해 꽤 높은 편이다.

더구나 삼성운용, 미래에셋운용 등 시장 1, 2위를 차지한 대형사들이 수수료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는 데 대해 업계에선 부담된다는 말이 나온다. 중소 운용사들은 “출혈 경쟁이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한 번 내려간 ETF 운용 수수료를 다시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다. 예상되는 투자자들의 반발과 함께 인상을 위해서는 수익자 총회 등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운용사들이 수수료 인하 경쟁에만 매달릴 경우 ETF 상품 개발에 대한 투자가 축소될 수 있어 ETF 시장 전반의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중소형사가 비즈니스 진입을 목적으로 보수를 인하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업계 1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며 “시장점유율 1위 선점을 위한 대응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원가 절감만으로 제품 퀄리티를 올릴 수 없듯 장기적으로는 건전한 ETF 시장 발전과 배치되는 정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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