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의 반걸음 육아 16] 내가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교사 김혜인 2024. 4. 2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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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김혜인] 졸업한 제자에게 연락이 오면 반사적으로 뜨끔한 마음부터 든다.

돌아보면 제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해서다. 선생이라 칭함을 받기에 부족하고 못난 모습이 많다. 큰 잘못도 아니었는데 너무 질책했던 일, 내 부정적 마음 상태가 드러났던 일, 마음을 먼저 헤아려 주지 못했던 일, 말실수를 했던 일 들을 다시 바로잡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반가움은 그 다음이다. 졸업한 뒤 일부러 연락한다는 건, 분명 여러 번 생각하다 용기를 낸 행동이겠다. 나를 꽤 많이 떠올렸다는 의미겠다. 교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이다.

감히 말하건대 돈이나 안정성으로 교사가 되지는 않았다. 나에겐 최애 제자란 없다. 누구를 편애한 적은 맹세코 없다.

교사가 되며 가장 두려웠던 것은 시행착오가 허용되지 않는 점이다. 성장하는 아이를 대하는 일에 연습은 없다. 모든 게 실전이고, 벌어진 일은 다시 ‘리셋’ 할 수가 없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첫 아이는 누구나 힘들다고 한다. 우왕좌왕하며 키운다. 나도 엄마가 처음인데, 연습은 없다.

교실 현장이 이론대로 흘러가지 않듯, 육아 현실도 책과는 영 다르다. 내 계획과 예상을 빗나가는 아이 앞에서 늘 당황하고 악수를 두고 만다. 이 조그마한 아이에게 뭐가 그리 화가 나는지 내 인내심의 한계와 인성의 밑바닥을 보고야 만다.

밥을 안 먹는 게 짜증이 나서 식기를 설거지통에 내동댕이쳤다. 아이를 달래지 않고 울다가 지쳐 잠들게 했다. 내게 치대는 게 너무 귀찮아서 손을 뿌리쳤다. 나의 피로를 못 이기고 아이에게 화를 냈다.

젊은 엄마의 활력은 없더라도 40대 엄마의 여유와 노련함을 갖추고 싶었는데, 초보 엄마는 나잇값을 못 한다.

육아휴직으로 학교에 없는 내게 오래전 졸업한 제자가 연락했다. 솔직히 나에 대한 기억이 좋으리라 기대하지 않은 제자였다.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만큼 학생에게 엄격하던 시기에 만난 아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랜만에 얼굴을 보기로 했다. 제자 몇 명이 함께 나왔다. 그들은 내 생각보다 마음이 넓었다. 내가 말한 부정적 평가를 자기 발전의 기회로 삼았고, 나의 질책을 자기 삶에 대한 진정한 걱정과 조언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내가 선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어린 날을 반성하고 내게 고마워했다. 내가 선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용서하고 좋아해 주었다. 그 성숙함과 포용력에, 오늘도 아이와 유치한 모습으로 실랑이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제자와 헤어지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때로 학생이 철이 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들의 미래가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말한 그 미래를 정말로 키워나가고 있었다. 성인이 됐고, 내가 20대였을 때보다 훨씬 멋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 자신을 가꿀 줄 알고 낯선 일에 도전하고 솔직하게 사랑한다.

지금은 너무 어리고 느리고 까다로운 나의 아이도 이렇게 훌쩍 자라게 될까. 아이가 성인이 되어 언젠가 “엄마, 내가 어렸을 적에 엄마가…….”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혼자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엄마에게 그러하듯이, 내 아이도 나에 대해 따뜻한 기억만 지닐 수는 없다. 어쩌면 어른이 되어 “엄마인데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었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이는 나를 용서하고 사랑하리라 믿는다. 내가 엄마에게 그러하듯이, 엄마니까.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엄마를 용서하고 사랑하니까.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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