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나 현재나 헐값…여기 보이지 않는 ‘유령 노동’이 있다[인스피아]
17세기 이후 영국 가난한 자유민
도시로 몰려들어 가사 도맡아
한국도 1970년대까지 식모 존재
월급 높아지며 자연스레 소멸
집안‘일’은 늘 누군가의 족쇄
정부, 외국인에게 떠넘길 계획
폭탄 돌리기로 해결 못할 문제
서로 도울 수 있는 ‘여유’ 필요해
근래 ‘외국인 가사노동자’ 이슈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건데요.
핵심은 ‘가격’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임금이 월 100만원 정도 되면 정책 효과가 있다”며 외국인 가사노동자 최저임금 미적용을 주장해왔고, 지난 3월 한국은행 보고서 발간 직후 “(높은 가격으로 인해 가사도우미 고용이) ‘그림의 떡’이 되어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떡’이 돼야 한다는 거죠. 윤석열 대통령 역시 지난 4일 외국인 가사노동자와 관련해 “가정 내 고용으로 최저임금 제한도 받지 않고 수요·공급에 따라 유연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고요.
“그림의 떡”이라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비유를 들으며 생각합니다. 가사노동의 가격을 낮추면 해결되는 일일까요? 왜 가사노동이 몹시 중요한 일인 걸 모두가 알면서도 그건 한사코 ‘싼값’이어야만 하는 걸까요? 가사노동은 지금까지처럼 그저 ‘누군가’에게 헐값에 떠맡겨버리면 되는 일일까요?
매력적인 건 당연하다, 하인의 시대
우선 ‘싼값 가사노동자’를 구하는 것은 당연히 고용주의 입장에선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당연한 ‘올드노멀’이었거든요. 실제로 1851년 런던의 젊은 여성 인구 중 3분의 1은 하인이었다고 하고요. 아무리 가난한 사람들도 하인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At home>는 미국 논픽션 작가 빌 브라이슨이 쓴 책입니다. 주로 18~19세기 영국과 미국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요. 다만 이 책의 가장 독특한 점은, 흔한 산업혁명 등 근대사 이야기를 철저히 ‘집 안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죠. 빌 브라이슨이 이 책에서 강조하는 핵심 메시지는 “우리가 친숙하게 누리고 있는 엄격한 위생기준, 집 구조 등 대부분의 사생활은 거의 모두 근대의 발명품”이라는 것이고요. 이 책에서 가장 존재감이 큰 근대의 발명품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집안일’과 ‘하인’이죠.
우선 ‘집안일’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위생 및 영양, 양육 등의 기준은 불과 1~2세기 전에는 당연한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독자님들 가운데 1년에 한 번 목욕을 하거나, 청소를 1년에 두 번만 하는 경우는 없으실 테니까요. 예방의학, 공중위생 등의 덕도 보았지만 무엇보다도 가정에서 부지런히 영양을 신경 쓰고 청결을 유지한 덕분이죠.
이에 대해 루스 코완은 가사노동자들이 “깨끗한 욕조, 화장실, 세면대”를 소비한 것이 아니라 “생산해왔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런 높은 위생 기준 등을 유지하기 위한 ‘촘촘한 가사일’이 탄생한 것, 그것도 상류층뿐 아니라 중류층 이하에게까지 보편화된 것은 분명 ‘대단한 근대의 발명’이라고 할 만한 것입니다. 1930년 미국의 한 잡지에선 “현재 주부들은 (…) 할머니 시절에는 봄에 한 차례 대청소 때까지 남겨놓았을 먼지들을 매일 닦아내고 있다”고 하기도 했죠.
근대에 탄생한 까다롭고 복잡한 ‘집안일’을 가능하게 했던 핵심은, ‘하인’의 존재였습니다. 빌 브라이슨은 이 책에서 심지어 근대를 “하인의 시대!”라고 정의할 정돈데요. ‘대체 왜 하인이 ‘근대의 발명품’이야?’라며 갸우뚱하실 수도 있습니다. 요는, 근대 이후 ‘일반 자유민’이 이렇게 많이 다른 사람의 지붕 아래서 일한 적이 없다는 건데요. 원래 역사적으로 종, 하인을 두는 건 소수 상류층의 특권이었지만, 18~20세기 초엔 아무리 여유가 많지 않은 중류층이라고 하더라도 하인을 3~4명 두는 것이 기본이라고 할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마치 오늘날 우리가 가정에 냉장고, 세탁기, 식탁 등을 으레 갖추어 두듯요.
빌 브라이슨은 이에 대해 “(근대는) 그야말로 하인의 시대라고 할 만했다”며 “당시의 각 가정에서 하인을 두었던 것은, 오늘날 각 가정에서 이런저런 생활용품을 구비하고 있는 것과 유사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19세기 중반의 영국에선 연 수입이 150파운드(현재 가치 약 3000만원) 정도인 사람도 ‘다용도 하녀’를 고용할 정도는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은 비교적 최근인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식모’가 꽤 흔했죠. 조사에 따르면 1970년대 초 서울의 가정 10가구 중 약 3가구(31.4%)가 ‘식모’를 두었다고 하네요. 그다지 머지않은 ‘올드노멀’이라 할 만합니다. 정찬일이 쓴 <삼순이>는 우리나라의 ‘식모’ 등 근현대 시기 여성들이 주로 종사했던 직업의 역사를 다룬 흥미로운 책인데요. 19세기 노비 세습제 폐지 이후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을 거쳐 ‘식모’라는 직업이 우리나라에서도 ‘발명’되고 또 보편화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1960년대에는 “밥만 굶지 않고 사는 서울의 가정이면 모두 식모를 두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서울 성북구의 한 표본조사에 의하면 셋방 사는 가구의 7할5푼(75%)이 식모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이쯤에서 두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그리고 ‘하인의 시대는 왜 끝났을까?’
‘가난한 일꾼’의 무한 공급: 사람 아래 사람
핵심부터 말하자면, ‘사람 아래 사람(下人)’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 브라이슨에 따르면, 근대 영국에선 17세기 이후 토지 수탈, 농업 등 모든 분야의 기업화, 산업화로 인해 대부분의 서민들이 적당히 자급자족하며 도란도란 사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고향을 떠나 ‘자발적으로 쥐꼬리 임금을 받고서라도 일하고자 하는 가난한 뜨내기들’이 도시로 물밀듯 쏟아져 나왔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유례없이 풍부한 ‘빈민 공급(!)’으로 인해 이전에는 극소수 귀족들만의 특권이었던 종, 하인을 두는 것이 중하류층에게까지 보편화될 수 있었다는 거죠.
이런 설명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놀라울 정도로 똑같습니다. <삼순이>에서 정찬일은 말합니다. “전 가구의 30퍼센트 이상이 식모를 두는 현상 (…) 이에 대한 답은 수학 문제의 답처럼 명확하다. 식모들의 인건비가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식구 중 한 입이라도 덜고,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하는 구직자들이 너무나 많았다. (…) 어린이들까지 이 대열에 합류했다.” 당시 가난한 여성들에게, 밥 굶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그리고 최후의 방책이 식모살이뿐이었던 거죠.
이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일제강점기 토지 수탈, 기록적 가뭄, 전쟁 등으로 인해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식모의 공급은 ‘풍요로워’졌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많은 가정은 싼값에 마구 식모들을 여럿 부릴 수 있게 됐죠. 1957년 한 잡지는 “식모 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니 식모를 구하기 쉬운 것은 당연했다”며 “동난(動亂·6·25전쟁)이 가져온 선물 중의 하나로 어느 가정이나 식모를 두었다는 것을 들어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는 물론 단칸 셋방살이, 판잣집 살림에도 환경과 가정 형편은 염두에도 없다는 듯이 서로 다투어 너도 나도 식모를 두고 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이어, ‘하인의 시대는 왜 끝났을까?’라는 질문입니다. 그간 과연 오갈 데 없는 빈민을 “거두어 먹여주었으니” 윈윈이었을까요? 푼돈이라도 받을 수 있었으니, 식모들은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살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식모들은 ‘값싼 허드렛일’을 하는 자로서 많은 경우 모진 수모와 모욕을 당했고, 하루에도 15시간을 일하고 언제든 주인이 부르면 가는 ‘대기 중’이어야 했습니다. 이때 노동의 ‘싼값’과 ‘인간적 모욕’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긴밀하게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애초에 보잘것없는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하대가 있었기에 저임금으로 부릴 수 있었고, 언제든 해고가 가능했으며, 이는 인격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현재진행형인 홍콩,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인권침해 사례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하녀들은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일을 했고요. 일상화된 차별이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적 효과를 미쳤을 리 없습니다. 심지어 1956년의 한 언론사 설문조사에서 ‘식모나 사동보다 강아지를 더 우대하는 것은 정당하다’라는 질문에 무려 45%나 되는 대학생이 ‘그렇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1970년대 이후 여성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식모’라는 단어 대신 가정부(家政婦), 파출부 등의 명칭으로 대체되고 월급이 높아지자, 자연스레 ‘하인의 시대’, 인간 아래 인간으로 운영·유지되어온 시대가 문을 닫게 됩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대하자는 데에 대한,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하인은 정말로 사라졌는가?
하지만 진짜 문제는, 오늘날 ‘하인’이 사라진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인이 사라진 시대에, 사람들은 기존에 하인이 하던 모든 일을 기계나 시스템이 자동으로 한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가사(세탁, 청소 등)를 기계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거나 기준이 높아지면서 일 자체가 더 복잡해진 문제도 있긴 합니다만, 가장 중요한 건 과거에 비해 비중이 커진 ‘가정 내 양육 및 돌봄’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보이지 않는 노동’ 취급을 당하며, 그간 가정 내 누군가가 무임금으로 혹은 저임금 허드렛일로 떠맡아온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짧게 살펴볼 매들린 번팅의 책 <사랑의 노동>의 부제는 ‘가정, 병원, 시설, 임종의 침상 곁에서 돌봄과 관계와 몸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가정 등 사회에 ‘돌봄’이 존재하는 곳들을 찾아다니며 돌봄을 주고받는 이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듣는데요.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주목한 대목은 20세기 중후반, 하인이 사라졌지만 이들이 하던 일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고 대신, 비가시화되었다는 점입니다.
번팅은 하인이 사라지면서 20세기 중반 이후 중산층 여성은 “가내에서 수행해야 하는 돌봄 임무를 온전히 맡아 하게 되었”다며, 가사노동은 통상 청소기, 세탁기 등이 대신 해준다고 ‘오해’하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애초에 여성이 집에서 정확히 어떤 일을 해왔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더 이상 돌봄노동이 ‘없는 것’ 취급을 당하고 저평가되는 추세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저평가된 돌봄을 제자리에 올려두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하죠. 이는 당연히 정당한 임금 등의 경제적 문제를 포함하고, 또 우리 모두가 돌봄의 업무를 나누었어야 한다는, 수백년 넘은 과오를 바로잡는 일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허리 위에 올라가 편하게 누렸던 과거는 모두가 행복한 풍경이 아니었으니까요.
맺음말
오늘날, 사람들이 너무 많은 가사노동에 지쳤습니다. 버거운 게 당연합니다.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하인까지 두어가며 달성했어야 하는 ‘기준’인데 이제는 출퇴근까지 하면서 일과 가정, 육아를 도맡아야 하는 ‘슈퍼우먼’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저출생 문제는 둘째 치고라도, 제대로 된 삶을 살 수조차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대체로 ‘윗분’들이 ‘사람 아래 사람’을 다시 동원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방법(올드노멀)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오늘 레터를 쓰면서 ‘올드노멀’이라고 생각했던 ‘하인의 시대’는 어쩌면 옛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돌봄, 가사노동의 특성상 갑자기 ‘없던 것이 뿅’ 생겨나지 않을 텐데,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간(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그 일을 간신히, 보이지 않게 떠맡아 온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니까요. ‘싼값’에 처리해도 될 일 취급을 받는 일을 버티며 해온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저평가받아온 일들, 그런 일을 가까스로 떠맡아온 사람들이 있다면 과연 오늘날에 ‘하인’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가사노동이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독박 노동’이 되지 않는 세상, 먹고살기 위해 삶을 축내는 대신 서로 돌볼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세상을 떠올려 봅니다. 또한 그런 방향이야말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진정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글은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에 실린 내용을 수정한 것입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 싶으시다면 오른쪽 QR코드를 촬영하거나, 포털에 ‘인스피아’를 검색해서 구독해주세요.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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