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흔드는 지정학적 위기, 어쩌면 '과장된' 공포 [마켓톡톡]

한정연 기자 2024. 4. 2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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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 위기지수 GPR
러-우크라 전쟁보다 낮은 상태
주식 VIX, 채권 MOVE 등
변동성 지수 단기 상승세만 관측
국내 영향 빠르게 소멸할 전망

원화 가치가 하락 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기를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렇지만 같은 조건을 가진 다른 나라들보다 우리나라 원화 가치는 더 하락하고 있다. 현재 지정학적 위기를 측정해보고, 우리 경제가 여기에 유독 취약한 이유를 알아봤다.

이스라엘이 지난 17일 레바논 남부 지역을 공격했다. [사진=뉴시스]

원·달러 환율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올해 4월 셋째주까지 원·달러 환율은 7.3% 오르며 같은 기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1~4월 기준으로는 외환위기 직전이던 1997년, 금융위기였던 2008년, 2009년보다도 더 상승했다.

강달러, 국제유가 상승, 지정학적 위기 심화란 주어진 조건이 같지만, 원화가치의 하락세는 다른 나라보다 가파르다. 22일 국내 국고채 2년물과 3년물 수익률은 3.537%, 3.535%로 각각 0.04%포인트, 0.05% 상승했다. 채권은 거래 가격이 하락하면 수익률이 상승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4월 셋째주 내내 외환시장에 구두개입했다. 이 총재는 지난 19일 로이터 등과 인터뷰에서 "환율은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국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도 "중동에서 확전이 되지 않는다면 유가가 크게 더 올라가지 않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환율도 다시 안정화 쪽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는 어느 정도 수준이고, 우리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 지정학적 위기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과거 위기 수준과 비교 측정할 수 있다. 3가지 방법으로 측정해 본 결과,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는 역사적으로 최고 수준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서 가장 심각한 수준인 건 사실이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1년 이내의 단기적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첫째, 세계 지정학적 위기를 나타내는 GPR지수(Geopolitical Risk Index)에 따르면 현재 위기 수준은 3일 기준 104.60으로 높지만, 역사상 최고 수준은 아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이후인 2022년 4월 지수가 127.24였기 때문이다.

GPR 지수는 2001년 9월 9·11 테러 당시 289.94,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 4월 209.31로 기록했다. 현재 GPR 지수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이 반영되는 5월에야 110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GPR 지수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소속인 다리오 칼다라와 마테오 아이코비엘로가 만들었다. 미국 주요 신문에 실린 지정학적 긴장을 다룬 기사 비중을 계산해 지수를 만든다. 1900~1984년 뉴욕타임스, 시카고트리뷴, 워싱턴포스트 3개 매체 기사를 이용했고, 1985년 이후에는 10개 신문으로 범위를 넓혔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뉴스심리지수와 유사한 구조다.

원·달러 환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료 | 하나은행]

GPR 지수엔 모든 전쟁의 위험성이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은 1965년 8월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지만, 1964년 9월 GPR 지수는 92.85였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처럼 미국과 멀고, 전투 지역이 좁았던 한국전쟁은 다르다.

1950년 6월 GPR 지수는 242.36이었다. 여러 나라가 참전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계 1차대전 발발 당시 GPR 지수는 472.30, 2차대전 발발시에는 484.19로 역대 최고 수준으로 기록됐다.

둘째,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올해 들어서 가장 높은 상태지만, 지난해 10월 미국의 하락장보다는 낮은 상태다. 주식 변동성지수인 VIX(Volatility Index)는 22일 현재 18.71로 올해 들어서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지난해 10월 27일 21.27보다는 낮았다.

채권시장 변동성을 나타내는 뱅크오브아메리카의 MOVE 지수는 22일 현재 111.26으로 최근 1개월 동안 22.21% 상승했다. 하지만 6개월 기준으로는 -15.60%, 1년 기준으로는 -11.89% 하락했다. 단기적으로 보면, 채권시장의 변동률(이를테면 공포)이 높아졌지만 장기적으론 그렇지 않다는 거다. 이는 채권시장의 관심이 지정학적 문제보단 국채 수익률을 좌우할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셋째, 원자재 시장에서 원유와 금 가격 변동성은 1개월 기준으로는 상승 추세지만, 시장의 특수성이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원유 변동성 지수인 OVX(Crude Oil Volatility Index)는 19일 기준으로 31.86을 기록해 지난 1개월 동안 18.35% 상승했다.

하지만 OVX 변동률은 지난 6개월 동안 -23.67%, 1년 기준으로는 -7.06%였다. 원유 역시 단기적으론 변동폭(공포)이 크지만, 6개월과 1년으로 관점을 넓히면 그렇지 않다. 2007년 집계를 시작한 OVX는 원유 가격의 30일 변동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를 뜻한다. 숫자가 높으면 변동률이 크다는 뜻이고, 낮으면 그 반대다.

여기엔 지정학적 위기보다는 해당 시장의 특수성이 더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 석유의 경우는 OPEC+가 감산을 지속하는 와중에 석유 수요가 증가하면서 가격을 끌어올렸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3월 월간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석유 수요는 1일 170만 배럴로 기존 전망치보다 50만 배럴 더 늘어나지만, 석유 공급량은 오히려 1일 87만 배럴 감소했다.

금의 변동성 지수가 상승세를 띠는 것도 다른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금 변동성 지수인 GVZ(Gold ETF VIX Index)는 19일 기준 최근 1개월 동안 47.73% 상승한 18.51이다. GVZ는 1년 동안 17.67% 상승했고, 6개월 동안 7.12% 상승했다.

금 가격 상승은 기본적으로 안전자산 선호에서 시작됐지만, 중국의 수입량이 많이 증가한 것과도 연관이 있다. 블룸버그는 22일 "중국이 지난 2년 동안 해외에서 구매한 금은 2800톤(t)이 넘는다"며 "중국의 올해 1~3월 금 수입량은 지난해보다 34%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국내 금 거래가 4월 들어 급증했다. [사진=뉴시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17개월 연속으로 금 매수량을 늘렸다. 중국이 마찰을 빚고 있는 미국의 국채 보유량을 줄이고 대신 금을 사고 있어서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량은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1월 대비 227억 달러 감소한 7750억 달러를 기록했다. 2021년보단 25% 줄어들었다. 중국의 미 국채 보유량은 금액 기준으로 지난 2022년 4월 1조 달러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지정학적 위기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지정학적 위기는 미국의 통화정책이나 유가 상승과 달리 우리나라 경제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만, 비교적 빠르게 사라진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처럼 제조업 비중, 대외개방도, 비정규직 비중, 고령화 비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대외충격에 취약하다. 하지만 지정학적 리스크는 미국의 통화정책이나 국제유가 상승보다는 경제에 부담이 적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지역경제 보고서 중 '대외충격에 대한 지역별 반응의 이질성 분석'에서 집필자인 임현준 전남대 교수는 "지정학적 리스크 충격은 (한국) 지역 경제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만, 4분기가 경과하면 급격히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통화정책 충격은 5~6분기가 지나 영향을 미치고, 3년이 흐른 시점까지도 영향이 남았다. 국제유가 충격은 4분기의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치지만, 8분기 이후 효과가 점차 소멸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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