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모방·추격 전략 …'한강의 기적' 수명 다해"

안갑성 기자(ksahn@mk.co.kr) 2024. 4. 2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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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 韓 경제성장 모델 지적
제조 대기업 수출에만 의존
원천기술 개발 경쟁 뒤처져
첨단 반도체 빼면 中에 잠식
가계부채·고령화·저출생…
2030년 성장률 0.6% 전망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한강의 기적'이 끝나가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이 나왔다. 6·25전쟁 이후 70년 만에, 가난했던 한국을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만든 성장 엔진이 꺼져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22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시아판에 '한국의 경제 기적은 끝났는가'라는 제목의 기획 기사를 게재했다. FT는 국가 주도 자본주의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첨단 제조 대기업을 육성한 한강의 기적이 이제는 낡은 모델이 됐고 수명을 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한국은행 보고서를 인용해 한국에 대해 과거 성공 방식에 얽매여 낡은 경제성장 모델을 답습하는 동안 저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작년 말 한국은행이 발간한 '한국 경제 80년 및 미래 성장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970~2022년 연평균 6.4%였다. 특히 1970년대 연평균 8.7%, 1980년대 9.5%로 기적 같은 성장률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한국 경제는 인구 감소, 근로시간 축소, 자본 투입 증가율 하락 등으로 정체 국면으로 진입했다. 총요소생산성(TFP)을 기준으로 보면 최악의 경우 2020년대 2.1%, 2030년대 0.6%, 2040년대에는 -0.1% 성장률을 기록하며 초저성장 시대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2025~2029년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연간 2%대 초반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송승헌 맥킨지앤드컴퍼니 한국사무소 대표는 FT에 경공업에서 석유화학·중공업으로 전환한 1960~1980년대와 반도체 등 첨단 제조업을 육성한 1980~2000년대를 한국 경제의 두 가지 도약기로 꼽았다. 그러나 저렴한 인건비·전기료를 바탕으로 한 제조업은 이제 성장 한계에 도달했다고 FT는 전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3년 대한민국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한국 산업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9.4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평균(64.7달러)의 4분의 3 수준에 그쳤다. FT는 작년 말 기준 202조4000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한국전력에 대해 "한국 제조업에 막대한 산업 보조금을 제공하던 한국전력은 1500억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쌓았다"고 꼬집었다.

FT는 삼성전자가 300조원, SK하이닉스가 120조원을 각각 투자해 경기도 용인에 조성 중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대한 우려도 전했다. FT는 "업계 전문가들은 대부분 첨단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 우위를 유지하고, 인공지능(AI) 반도체에 대한 미래 수요 충족을 위해 용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경제학자들은 한국 정부가 과거처럼 제조 대기업 중심 경제 모델을 계속하면서 기존 성장 방식을 개혁하거나 신성장 모델을 찾으려는 데는 무능함을 드러냈다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FT는 "이젠 중국 기업들이 첨단 반도체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 경쟁사를 따라잡았고, 이젠 한국 기업의 경쟁자가 됐다"고 밝혔다.

저출생·고령화에 인구구조가 붕괴되고 있는 점도 '한강의 기적'이 끝났다는 의견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지난해 5월 한국경제연구원은 2050년께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398만4000여 명으로 2022년 대비 34.75% 줄면서 GDP는 28.38%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한국 경제의 미래를 낙관하는 목소리도 있다. AI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리벨리온의 박성현 대표는 FT와 인터뷰하면서 "한국은 AI에 필요한 4대 핵심 요소 중 논리 시스템 반도체, 메모리 반도체, 클라우드 서비스 역량을 이미 갖추고 있다"면서 "AI 밸류체인을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영역으로 확장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FT는 비관론이 다소 과장됐다고 보는 견해도 많다고 전했다. FT는 "많은 서방 국가들이 한국이 키워온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첨단 제조업 기반을 일찍 포기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본다"며 "미·중 기술 패권 전쟁으로 중국이 발목을 잡히고, 대만 안보 불안이 가중되는 동안 한국이 반사 이익을 얻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라고 설명했다.

[안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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