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2조 적자에 애물단지된 실손보험 … 절실한 70代엔 "가입 불가"

유준호 기자(yjunho@mk.co.kr) 2024. 4. 2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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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실손보험 사각지대
실손 누수에 멍든 보험사
10년간 절반이 판매 중단
일반 실손가입 70세가 상한
노후 실손 80세까지 받지만
가입 문턱 높여 사실상 거부
의료수요 높은 고령층 직격

72세 A씨는 최근 실손보험에 가입하려다가 보험사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지병은 없었지만 중성지방 수치 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노후 실손' 보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80대 아버지의 실손보험 가입을 알아보던 B씨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보험사에 문의했지만 75세가 넘으면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답이 왔기 때문이다.

가입자가 4000만명에 달해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은 사실상 70대 이상 고령자에게는 무용지물이다. 보험사들이 연령 상한을 두고 있어 가입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고령자들이 실손보험의 틀에서 제외되는 데는 보험사의 정책 탓도 크지만 이른바 과잉진료·의료쇼핑 등의 '실손 빼먹기'에서 비롯된 막대한 적자 영향도 있다. 업계 전체로 연간 2조원 이상 발생하는 적자 때문에 손해율(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의 비율) 관리가 절실한 보험사들이 실손보험 가입 문턱을 높이고, 보험금 지급을 깐깐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손보험 빼먹기가 의료시장의 쏠림을 유발해 왔다는 평가에 더해 막대한 적자 유발로 고령자 등의 실손보험 접근성을 낮추고 실손보험 사각지대를 키우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5대 손해보험사(삼성화재·메리츠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KB손해보험)는 일반 실손보험에 신규 가입할 경우 65~70세로 가입 연령 상한을 두고 있다. 70세가 넘으면 일반 실손보험 신규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보험사들은 2014년 고령자 의료보장 강화에 나선 금융당국과 협의한 끝에 노후 실손보험 상품을 출시했지만 이마저도 75~80세로 가입 연령 상한을 뒀다.

암보험 등 일반 건강보험은 최근 가입 연령을 90세까지 높이는 경우도 있지만 실손보험만큼은 예외다. 일반 건강보험은 암과 뇌혈관, 심장질환 등 일부 질환에 대해 정해진 금액만큼 보장하는 상품이다. 광범위한 보장 범위를 두고 실제 손실액만큼을 배상해주는 실손보험과는 차이가 난다.

보험연구원 분석(2022년 기준)에 따르면 70대의 실손보험 가입률(인구 대비 가입자)은 26.5%에 머문다. 80세 이상의 경우 가입률이 1.1%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실손보험 평균 가입률이 72.8%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령층이 실손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실손보험이 의사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보험금의 누수도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실손보험금을 타내기 쉬운 과로 쏟아져 나온 의사들이 이 시장을 더욱 키우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실손보험 적자는 △2019년 2조8000억원 △2021년 3조1000억원 △지난해 2조3000억원으로 매년 2조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5년 새 누적 적자는 12조9000억원이다.

만년 적자 상품을 견디다 못한 보험사들은 잇따라 시장 철수에 나섰다. 2012년 4월 악사손해보험을 시작으로 2017년에는 AIG손해보험과 푸본현대생명, 2021년에는 미래에셋생명과 ABL생명이 실손보험 판매 중지를 선언했다. 2012년 이후 실손보험의 판매를 중단한 곳이 14개사이고 현재 판매 중인 업체는 16개사다. 이 사업권에 있던 업체 중 절반가량이 손을 뗀 셈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실손 적자 규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고령자와 유병력자를 반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급여 항목 관리 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을 통해 실손보험의 수익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병·의원의 무분별한 비급여 보험금 청구와 일부 가입자의 의료쇼핑 행태가 보험 가입자 전체의 피해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보험 혜택이 절실히 필요한 고령층 등 취약 계층의 의료 보장 사각지대를 더욱 커지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김대환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실손보험은 '의사 마음대로 처치를 하고, 마음대로 가격을 불러, 이를 보험금으로 메워 주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비급여 항목에 대한 관리 강화가 마치 보험사를 위한 일이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데, 이는 구조적으로 국민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실손 빼먹기 등으로 인한 실손보험 적자는 결국 보험료를 끌어올려 전체 가입자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보험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실손보험의 위험손해율(지급보험금을 보험금 지급 재원으로 나눈 값)이 100% 이내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매년 15%의 실손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제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5년 뒤에는 실손보험료가 지금의 2배 이상으로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손 보험료율의 인상폭은 2019년 10.1%, 2020년 9.9%, 2021년 10~12%, 2022년 14.2%, 2023년 8.9% 등 5년 연속 10% 안팎이다. 올해는 보험사들이 인상을 자제하며 평균 1.5% 올리는 데 그쳤지만 적자 규모를 감안하면 향후 큰 폭의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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