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시혁 믿을맨'에서 적으로…민희진, 지분 20% 들고 독립 꿈꿨다
작년 9월 이사회 '민희진 사단'으로 물갈이
'3자배정 유상증자' 노렸나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조용할 날이 없다. 이번에는 국내 1위 엔터테인먼트 회사 하이브와 K팝 스타 제작자 민희진, 4세대 대표 걸그룹 뉴진스가 걸린 일이다. 하이브가 22일 어도어 민희진 대표와 신동훈 부대표에 대한 감사에 전격 착수했다. 어도어는 걸그룹 뉴진스의 소속사로, 하이브 산하 계열사다. 하이브는 민 대표가 본사로부터 독립하려 한다고 보고 관련 증거 수집에 나섰다.
이날 하이브는 오전 어도어 경영진 업무구역을 찾아 회사 전산 자산을 회수했고, 대면 진술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민 대표의 독립이 어느정도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뉴진스를 키우고 'K팝 업계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던 민 대표는 왜, 어떻게 독립을 꿈꿨을까.
1. "하이브 아니어도 투자자 많다"던 민희진
민 대표는 하이브 영입 초기부터 “하이브가 아니어도 비슷한 규모의 투자 제안은 많았다”고 말해왔다. 민 대표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과거 SM엔터테인먼트에서 소녀시대, 샤이니, 엑소 등 아이돌 그룹의 콘셉트와 브랜드를 맡아 명성을 얻은 스타 제작자다. 민 대표가 하이브로 옮겨가며 내건 조항은 ‘무간섭’과 ‘창작의 독립’이었다.
그는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받으며 하이브로 향했다. 하이브는 민 대표를 영입하며 민 대표에게 막대한 권한을 넘겨줬다. 민 대표를 최고 브랜드 책임자(CBO)로 임명하며 용산 신사옥 공간 브랜딩과 디자인까지 맡겼다.
2021년에는 하이브 레이블로 설립된 어도어 대표로 임명했다. 2023년에는 하이브가 지분까지 넘겼다. 전자금융공시에 따르면 민 대표는 하이브로부터 어도어 지분 18%를 매수했다. 하이브는 나머지 2%를 어도어 경영진에게 매각했다. 하이브가 지분까지 넘겨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2023년 어도어의 매출이 급격하게 늘었기 때문이다. 어도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186억이었던 매출액은 2023년 1102억까지 늘었다. 걸그룹 뉴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덕이었다. 뉴진스의 존재감은 커졌고 민 대표의 지배력도 견고해졌다. 이 와중에 지분 20%를 보유하고 있는 민 대표와 임원들에 대한 배당은 없었다.
2. 작년 9월 이사회 '민희진 사단'으로 전부 갈아치워
하지만 어도어에서 2023년 9월 지배 구조를 뒤흔들 수 있는 결정적인 일이 벌어졌다. 회사가 급격한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이사회 구성을 ‘민희진 사단’으로 모두 바뀐 것이다.
어도어 설립 초기 이사회 구성원은 3명이었다. 우선 대표이사 겸 사내이사는 뉴진스를 키워낸 민희진 대표가 맡았다. 하이브가 최대주주인만큼 어도어의 초기 이사회에는 방 의장과 가까운 경영진이 참여했다.
이경준 하이브 CFO와 이창우 하이브 기업전략실장이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CFO는 회계사 출신으로 삼일회계법인, 김·장법률사무소(김앤장), MCM 등을 거친 전문가다. 이 실장은 컨설팅펌과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베인앤컴퍼니, H&Q코리아 등을 거쳤다. 하지만 2023년 4월 말 이 CFP와 이 실장이 사임했다. 그들을 대신해 민 대표와 함께 어도어를 일구고 뉴진스를 키워낸 핵심 전문가들이 이사회 구성원에 올랐다.
그 중에는 민 대표가 ‘인간 도덕 교과서’라 부르며 강한 신뢰를 드러냈던 신동훈 부대표도 있었다. 신 부대표는 민 대표와 SM엔터테인먼트 시절부터 함께했다.
신 부대표와 함께 신임 사내이사가 된 김예민 수석크리에이티브 디렉터도 민 대표와 함께 SM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했다. 그는 2013년 SM엔터테인먼트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뒤 민 대표와 다수의 작업을 함께 했다.
즉 2023년 9월 지분 80%를 보유했던 하이브 측 경영진들이 물러나고 이사회가 민 대표 사단으로 꽉 채워진 것이다.
3. 새로운 투자자 유치 노렸나
주식회사는 지분 구조보다 이사회 구성이 더 중요하다. 이사회 결정에 따라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어도어 경영진들은 올해 초부터 하이브로부터 경영권을 탈취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이브가 어도어에 부당한 요구를 한다는 점을 빌미로 여론을 악화시켜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 80%를 현 어도어 경영진에 우호적인 투자자에게 매각토록 한다는 것이 경영권 확보 계획의 골자였다.
어도어 경영진들은 그 과정에서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해외 투자자문사, 사모펀드(PEF), 벤처캐피털(VC) 관계자 등에게 매각 구조를 검토받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이브에 따르면 민 대표와 어도어 일부 경영진은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대외비인 계약서 등을 유출하는가 하면, 하이브가 보유 중인 어도어의 주식을 팔도록 유도하기 위한 방안 등을 논의해오다 하이브 사내 감사에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키맨'은 올 초 하이브에서 어도어로 적을 옮긴 어도어 부대표다. 그는 하이브 재직 당시 재무부서에서 IR을 담당하며 상장 업무 등을 수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브는 그가 어도어 독립에 필요한 비공개 문서, 영업비밀 등을 어도어 측에 넘겨줬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하이브에게 꼬리를 밟히면서 이 같은 시나리오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주주인 하이브가 어도어 주주총회를 소집했기 때문이다. ‘민희진 사단’으로 꾸려진 어도어 이사회의 결의나 소집절차가 없더라도 법원 판결에 따라 임시주총이 가능하다. 하이브는 이날 확보한 전산 자산 등을 분석한 뒤 필요시 법적 조치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또 민희진 대표의 사임을 요구하는 서한도 발송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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