궈창성 “음악은 시간의 예술…멜로디로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듣게 한다”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4. 22. 16:1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피아노가 중고로도 안 팔리는 시대다.

대만 최고위급 소설가 궈창성은 한국에 번역된 신작소설 '피아노 조율사'에서 이에 대해 반기를 든다.

200쪽 남짓한 소설 '피아노 조율사'의 주인공은 60대 남성 린쌍이다.

피아노를 처분하려던 린쌍은, 교습소 원장이 사망했는데도 피아노를 조율하러 방문한 남성을 만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피아노 조율사’ 출간 소설가 궈창성
죽은 아내의 교습소 찾은 남성
피아노 조율사 만나 동업 여정
음악으로 구원받는 예술 소설
“어긋난 음색 바로잡는 조율사
인간의 상실 바로잡는 게 음악”
신간 ‘피아노 조율사’를 출간한 대만 작가 궈창성. ⒸChing-Fu Tseng
피아노가 중고로도 안 팔리는 시대다. 치솟은 집값 탓인지 한 뼘 공간이 아쉬운 마당에, 몸집이 육중한 피아노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중산층 진입을 증명하던 필수품’이 피아노였던 시간은 갔다.

그러나 피아노가 처음 등장했던 18세기 이후, 이 악기는 300년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한 인간이 두 팔 벌린 최대치로 표현 가능한 넓은 음역대, 손가락 몇 개만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장악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건반은 쇼팽을, 베토벤을 악보에서 꺼내 부활시킨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피아노의 영광은 작곡가와 피아니스트로만 향한다. 대만 최고위급 소설가 궈창성은 한국에 번역된 신작소설 ‘피아노 조율사’에서 이에 대해 반기를 든다. “불멸의 악장은 영혼을 꿰뚫을 수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작곡가의 넘치는 재능과 연주자의 뛰어난 실력만 기억한다. 누구도 조율사의 역할을 떠올리지 않는다”고 그는 강조한다. 최근 그를 이메일로 만났다.

200쪽 남짓한 소설 ‘피아노 조율사’의 주인공은 60대 남성 린쌍이다.

아내가 췌장암으로 사망하자, 사십구재를 치른 린쌍은 아내가 운영하던 피아노 교습소에 도착한다. 뵈젠도르퍼, 스타인웨이 등 값비싼 피아노가 한가득인 장소였다.

피아노를 처분하려던 린쌍은, 교습소 원장이 사망했는데도 피아노를 조율하러 방문한 남성을 만난다. 두 사람은 동업을 약속한다. 린쌍은 피아노와 자본을 대고, 조율사는 피아노에 숨을 불어넣기로 했다. 둘은 피아노를 찾아다니며 음악이 주는 구원의 힘을 깨닫는다.

“음악은 시간의 예술입니다. 각각의 음은 정해진 시간 동안, 그것도 ‘단 한 번만’ 연주되니까요. 책장을 넘기는 것과 달리, 음악은 빨리 연주할 수도 없어요. 삶도 음악을 닮았습니다. 각각의 멜로디, 그리고 결국은 소멸하기 때문입니다.”

소설 ‘피아노 조율사’는 첫 문장부터 압권이다. ‘원래 우리는 육체가 없는 영혼에 불과했다. 신(神)은 영혼을 육체에 불어넣고 싶어 했지만, 영혼들은 형체 속으로 들어가길 원치 않았다. 신은 묘수를 생각해 냈다. 천사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라고 한 것이다.’(7쪽)

인간이 자유의 음악을 듣기 위해 속박의 육체를 선택했다는 설정은 음악과 인간의 친연관계를 간파해낸다.

“그 문장은 마치 계시처럼 다가왔습니다. 첫 문장을 결정했을 때 린쌍과 조율사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당시 저로서도 알 수 없었지만요.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는 은유가 돼주기도 합니다.”

린쌍과 조율사는 뉴욕의 한 피아노 해체장으로 향한다. 이 결말 장면의 서사적 예술성은 극도의 미(美)로 가득하다. 더는 시간을 지탱하지 못한 피아노는 분해되고, 녹슨 부품은 따로 매립되는 곳이었다.

이때, 목재로 만들어진 피아노의 본체는 뜯겨나가 거대한 화로에서 불살라진다. 죽은 피아노는 갓 생명을 얻은 새 피아노가 ‘얼지 않도록’ 온기를 나눠준다. 삼라만상의 죽음과 생명은 이처럼 순환하지 않던가.

신간 ‘피아노 조율사’ 표지. [민음사]
“조율이란 어긋났던 음색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조율사는 피아노의 결함을 파악하고 처방을 내리는 존재인데, 소설에서 조율사는 피아노만 조율하지 않고 인간을 조율해내지요. 인간이 음악과 같다면 조율의 과정도 필연적이지 않겠어요?”

‘타이완의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연상케 하는 그는 예술적 감각을 독자에게 나눠준다.

‘음악은 우리에게 시간을 들려준다. 음악은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듣게 한다’는 소설 속 문장은 거장만의 문장이다. 그런 점에서 ‘피아노 조율사’는 문자로 쓴 악보에 가깝다. 문자는 침묵하지만, 문자를 읽는 독자는 그 안에서 미세한 진동을 감지한다. 그 진동은 작품과 독자의 공명이 내는 파동이다.

궈창성은 쓰는 순간의 자신의 골방을 “낡은 극장”으로 표현했다.

“커다랗고 널찍한 나무 탁자에서 홀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다 허물어져 가는 극장의 빈 무대 위에 놓인 건 이 탁자뿐이에요. 작가로서 저는 이 낡은 극장에 갇혀 있는 것만 같습니다. 발걸음 소리, 먼 곳에서 들려오는 가끔 웃음소리를 듣곤 해요. 하지만 글을 쓰는 행위는 언어의 지하세계로 침잠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품으며 쓰고 있습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