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죽음 보고도 변하질 않아”…이국종이 외상센터를 떠난 까닭 [매경데스크]

김기철 기자(kimin@mk.co.kr) 2024. 4. 2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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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인 이국종 교수는 지금 국군대전병원장이다. 깊은 애정을 쏟았던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를 2020년 떠났다. 응급의사로서 자부심의 원천이자 명성을 안겨준 외상센터를 그는 왜 떠났을까.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월 15일 대전시 유성구 국군대전병원 방문을 마치고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20년 이국종 병원장은 외상센터장 사임 기자회견에서 “아주대병원으로부터 돈(예산)을 따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고 이젠 지쳤다”고 밝혔다. 당시 그의 기자회견으로 아주대병원은 ‘국민 의사’를 내몰았다고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하지만 병원으로서는 억울할 수 밖에 없다. 환자를 받을 수록 적자가 나는 외상센터에 무작정 지원을 확대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국종 교수의 책 ‘골든아워’에서 “막을 수 있었던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도 변하지 않는” 한국 응급의료 체계에 대한 절망이 담겨있다. 책을 보면 대통령도 직접 중증외상센터에 대한 지원을 지시했고, 정무수석과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힘있는 사람들의 지원 약속에도 불구하고 응급의료 시스템은 나아지지 않았고 병원에 적자만 안기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이국종 병원장이 생각하는 응급의료 시스템의 이상적인 모델은 미국 UC샌디에이고의 중증외상센터다. 그는 책에서 외국의 모범사례를 국내에 도입하려면 완벽하게 복제해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일본 전문가의 이야기를 인용했다.

“처음에 시스템을 배우려면 나사못 하나까지 그대로 복사해와야 한다. 그래야만 원래 취지가 왜곡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 자국의 특성을 감안한다는 명분으로 방향을 달리해 도입하면 완전히 뒤틀려 엉뚱하게 바뀔 수 있다. 따라하려면 완벽한 모방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UC샌디에이고 중증외상센터의 시설과 인력을 그대로 우리나라에 들여오면 제대로 작동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지난 2019년 한국인 대학생이 미국 그랜드 캐년을 여행하던 중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이 학생은 구조돼 응급헬기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회복될 수 있었다. 미국 응급의료 시스템이 이 학생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응급의료 시스템이 작동하는 비결은 과결 무엇일까? 그 해답은 이 학생이 받은 진료비 청구서에 담겨있다. 당시 이 학생에게는 10억여원의 진료비와 2억여원의 국내 이송비가 청구됐다.

UC샌디에이고 외상센터를 나사못 하나까지 그대로 우리나라로 옮겨와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응급의료에 투입된 비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누구도 제대로 꺼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랜드 캐년에서 추락 사고를 당했던 대학생의 경우처럼 미국은 그 비용을 ‘개인’에게 청구했지만 우리는 이를 ‘사회화’ 했다. 건강보험 시스템 안에 포함시켰다는 얘기다. 문제는 응급의료에 소요되는 비용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응급센터가 환자를 받으면 받을 수록 적자가 쌓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나마 이 구조를 지탱하는 것이 전공의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었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자 응급의료 시스템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다.

제대로 작동하는 응급의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을 제대로 지불해야 한다. 단순히 ‘수가 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비용을 전공의들의 노동을 착취해서 보존해서도 안되고 미래세대의 빚으로 전가해서도 안된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국종 병원장에게 여러 차례 지원을 약속했지만 우리의 응급의료 시스템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속가능한 의료 복지를 위해서는 그 비용을 국민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꺼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대 정원’ 논의와 함께 필수 의료 분야의 비용 부담 문제도 반드시 사회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인기없는 해법’을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김기철 과학기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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