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수에는 美 골드워터 없는가[이철호의 시론]

2024. 4. 2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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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고문
미 공화당 1964년 대선 참패 속
보수 재정립과 ‘남부 전략’ 추진
젊은 보수와 차기 인재들도 키워
국민의힘,고령화에 지역도 고립
세대 포위론·선거 연합 복원해
보수 정립하고 북진 전략 펴야

4·10 총선 참패로 한국 보수가 갈 길을 잃었다. 집안싸움으로 날을 지새우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의 가장 큰 위기라고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 이후 미국 보수의 적통인 공화당도 그런 적이 있다. 링컨은 1860년 당선된 첫 공화당 출신 대통령으로, 동북부를 근거지로 노예 해방과 도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반면 민주당은 노예제를 찬성하고, 남부 농경지대가 텃밭이었다. 그러나 1932년 대공황 시절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당선된 게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민주당은 뉴딜 정책으로 도시 노동자·유색 인종의 민심을 사로잡고 동북부로 진격했다. 이후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까지 민주당 황금시대였다.

미 보수 최악의 흑역사는 1964년 대선이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1년 뒤 대선에서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는 민주당의 린든 존슨에게 참패했다. 선거인단 486 대 52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레스턴은 “골드워터는 대선 패배를 넘어 공화당 자체를 완전히 망가뜨렸다”고 썼다. 그러나 골드워터는 그 참담한 폐허 속에서 보수 혁명의 씨앗을 뿌렸다.

당시 대선 캠프 재정 책임자였던 윌리엄 미덴도프의 회고다. “골드워터는 패배가 뚜렷해지자 직접 정치광고를 중단시켰다. 대선 캠프가 집단 반발했다. 하지만 그는 ‘차라리 그 자원을 아껴뒀다가 보수 정치의 재건에 요긴하게 쓰자’고 버텼다.” 골드워터는 대선 공약으로 작은 정부와 감세, 반공주의 등 선명한 보수 노선을 내걸었다. 미래를 이끌 재목들도 키워냈다. 캘리포니아주의 B급 배우였던 로널드 레이건은 감동적인 TV 찬조 연설로 단박에 전국구 스타가 됐다. 2년 뒤 제2차 세계대전 영웅인 조지 H W 부시도 텍사스 하원의원에 당선시켰다.

무엇보다 미국의 보수가 젊어졌다. 골드워터 대선 캠페인에 젊은 지지자 50만 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150만 명이나 소액을 헌금했다. 1965년 뉴욕의 20대 지식인들이 계간 잡지를 창간해 시장경제와 가족을 옹호했고, 대학생들도 자발적으로 ‘자유를 위한 젊은 미국인들’을 조직했다. 이들이 세운 젊은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은 개인의 자유, 작은 정부, 감세, 시장경제 등 새로운 의제들을 장악해 들어갔다. 과감한 ‘남부 전략’을 가동해 보수의 근거지를 북동부에서 텍사스·애리조나 등 남부로 옮겼다. 이른바 ‘정당 재편성(Party Realignment)’이다. 미덴도프는 40년 뒤 ‘영광의 참패’를 출간하면서 당시의 패배를 ‘영광스러운 재앙(Glorious Disaster)’이라 복기했다. 새롭게 거듭난 미 공화당은 그 이후 14차례 대선에서 8차례나 이겼다.

국민의힘에 총선 참패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과연 미래와 희망이 있느냐는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의 보수는 반공과 산업화 신화에 안주해 지지계층이 60∼90대로 노령화됐다. 지역적으로 양남(영남·서울 강남)에 고립됐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에 따르면 그동안 ‘민주 동맹’은 선거에 이길 때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노총·시민단체·전교조 등이 전리품을 나누며 동맹 결속을 강화했다. 반면, 보수 정당은 전리품을 독차지하기 위해 선거연합을 해체하며 위기를 자초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진박 공천’, 윤석열 대통령의 이준석 축출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보수 정당의 자생력이 바닥나고 인재가 고갈되면 선거 때마다 이회창·황교안·윤석열·한동훈 등 외부 인사를 불러들이는 ‘기생 정당’이 체질화됐다.

국민의힘에 제대로 된 가치관이나 노선 투쟁이 안 보인다. 양남권 당선인 중심으로 눈치만 살필 뿐 무기력한 모습이다. 이제 진보 진영은 1996년 이후 처음으로 항상 2∼5% 표를 잠식하던 정의당이 사라져 민주당 중심의 단일 대오가 됐다. 반면,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간신히 이긴 보수 진영은 비례대표 3.61%를 득표한 개혁신당과 분열해 버렸다. 미 공화당의 남부 전략처럼 ‘양남’에서 수도권을 향한 북진 전략도 안 보인다. 지난 대선 때 위력을 발휘한 2030과의 ‘세대 포위론’도 실종됐다. 국민의힘이 다시 일어서려면 재창당 수준의 근본적 수술이 절실하다. 선거연합 복원과 미 공화당 식의 ‘정당 재편성’도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국민의힘에는 눈을 씻고 봐도 한국판 골드워터가 보이지 않는다.

이철호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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