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수익내는 기업이 없는데...” 기업활성화 정책 잇단 제동 우려 [이슈&뷰]

2024. 4. 22. 11:3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총선 끝나자 거대야당 ‘입법 독주’
‘반도체 지원법’ 연장·확대 제동
횡재세 등 반기업법 추진 가능성
재계 “경제위기에 반기업 입법우려”

경제계가 국회의 반기업 정책 회귀에 긴장하고 있다. 여소야대의 구도 속에 정부가 추진해온 각종 기업활성화 정책에 제동이 걸리거나, 규제 입법이 가속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4·5면

4·10 총선이 끝나자마자 야당이 ‘입법 독주’에 시동을 걸면서 경제계의 불안감은 높아지고 있다. 최근 ‘고금리·고환율·고유가’등 이른바 ‘3고(高) 현상’에 따른 경제위기 속에 국내 정치적 변수까지 겹치면서 재계의 우려감은 커지고 있다. 정치 이념을 떠나 경제활력과 민생안정을 위한 정책실현에 여야가 합심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노란봉투법·횡제세 등 반(反)기업법 22대 핵심추진 입법되나=더불어민주당이 재추진 의지를 밝혀온 ‘노란봉투법’이나 횡재세(초과이득세) 같은 반(反)기업법이 22대 국회 개원과 함께 핵심 안건으로 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반면 정부가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해 추진해 온 상속세 완화, 법인세 감면 등 감세정책은 추진 동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특히 국가간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육성을 위한 이른바 ‘K칩스법’ 확대에는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온다.

22일 정치권과 경제계에 따르면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노동 분야 주요 공약으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개정을 통한 노동조합 보호 강화를 제시했다. 사용자의 개념을 확대하고 파업 근로자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노란봉투법의 재추진에서 나아가 초기업단위 교섭을 활성화하고 단체협약 효력도 확장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들 방안은 노사관계 등 경영환경에 직접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노란봉투법은 앞서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대통령의 거부권에 막혀 폐기됐다.

산업계는 이들 법안을 무기로 노조의 파업 수위가 거세질 경우 기업의 경영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노사 간 분쟁이 늘어나고 기업의 투자·고용을 위축시키면서 국내 기업의 해외 이전 가속화, 일자리 감소 등의 부작용이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정유사에 대한 횡재세의 경우 공약으로 명시하진 않았지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던 사안이라는 점에서 재추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민주당은 은행과 정유사가 일정 기준을 초과한 이익을 거둘 경우 초과분에 대해 세금을 물려야 한다며 지난해 당론으로 도입을 추진했다.

여당과 일부 당내 반대에 이중과세 위헌 논란까지 제기되며 입법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이 대표를 포함한 민주당 상당수 의원은 여전히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기업 한 관계자는 “반도체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제대로된 수익을 내는 기업이 없는 상황에서 기업을 더욱 옥죄는 정책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이처럼 입법 주도권을 쥔 거야가 반기업 법안을 쏟아낼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의원입법의 경우 정부입법과 달리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거치지 않아 과도한 규제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산업연합포럼에 따르면 규제 관련 의원 발의 건수는 17대 국회 5728건에서 21대 국회 2만3352건으로 4배 이상 급증했다. 규제 남발로 투자·고용 등이 위축되고 있다는 게 포럼 측 설명이다.

포럼 관계자는 “의원의 과잉규제 입법 의욕이 문제가 되고 있다”며 “과잉입법은 우리나라 최고경영자(CEO)의 높은 형사책임을 초래하며 각종 대기업 역차별 규제는 양질의 일자리를 축소하는 부작용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규제는 언제나 최소로 해야 경제가 산다”며 “(야당이 추진하고 있는) 분배 중심의 규제는 투자를 위축시키고 원가 상승요인으로 작용해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역시 “여야가 합의해서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것은 경제학자들의 입이 아프도록 한 얘기”라며 “야당은 계속해서 (반기업) 법을 만들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식의 핑퐁게임이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상속세 완화·법인세 감면도 불투명=정부가 입법을 준비해 온 경제정책 추진에도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상속세 완화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그동안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등 상속세 개편을 적극 검토해 왔으나 민주당은 이를 ‘부자감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내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위이며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 적용하는 최대주주할증 과세를 적용하면 60%로 가장 높다.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최고세율을 인하하는 주요 7개국(G7) 추세에 역행한다는 것이 산업계의 지적이다.

상속세 과세방식에 대해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OECD 38개 회원국 중 상속세가 있는 나라는 24개국인데, 약 83%인 20개국이 상속인 각자가 취득하는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 전체를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세 방식을 적용해 상속부담이 더 크다.

상의 관계자는 “지난 30년간 G7은 상속세를 점진적으로 낮춘 반면 우리나라는 상속세를 높임에 따라 부의 해외이전, 편법적 탈세 등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과도한 상속세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하나로 검토해 온 법인세 감면 방안도 불투명해졌다. 이는 기업이 배당 확대·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을 늘릴 경우 법인세를 감면해 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 야권은 크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법인세 최고세율은 27.5%(지방세 포함)로 OECD 38개국 중 10위 수준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수 비율도 2020년 기준 3.4%로 OECD 평균(2.7%) 대비 높다. 게다가 과세체계까지 복잡해 법인세제 경쟁력을 순위로 매기면 OECD 38개국 중 34위로 최하위권이다.

▶국가적 아젠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육성도 험로=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기업 지원 확대에도 험로가 예상된다. 정부는 반도체, 배터리 등 7개 국가전략산업 투자에 세액공제를 해주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연장과 함께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협의해 왔다. 미국, 일본 등 주요국과의 첨단산업 육성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차원에서다.

올해 말 일몰 예정인 K칩스법 연장에 대해서는 민주당도 동의하고 있다. 다만 투자 증대 효과와 세수 확보 여력을 먼저 검증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내에서 나오고 있어 K칩스법 연장이 불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삼성, SK 등 기업들은 저마다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가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경기가 좋지 않고 불안정한 상황이 오래되면서 산업계 전반적으로 위기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계는 국회가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초당적으로 협력해 주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경제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 상황이 불안한데 국회가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소가 아닌 경제 역동성을 높이는 요소가 되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 역시 “경제를 살리는 데 여야가 따로 없고, 민생 활성화야말로 기업을 빼고 얘기할 수 없다”며 “여야가 정말 민생에 진심이라면 기업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이를 위한 규제 완화 등에서부터 협력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저성장 기조가 이어가고 있는 만큼 야당은 여당과 협업해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법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은희·한영대·정윤희 기자

ehkim@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