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불안과 美·中 강한 경제에 치솟는 국제 유가] 이란, 이스라엘에 보복 예고…‘국제 유가 100달러 시대’ 다시 올까
중동에 확전 공포가 커지면서 국제 유가가 치솟고 있다.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으로 시작된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이 6개월째로 접어든 가운데 이란이 이스라엘에 보복 공격을 시사하면서 또 다른 중동전쟁으로도 번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란은 4월 1일(이하 현지시각)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자국 영사관 폭격 이후 “최대한의 피해를 주겠다”며 보복을 예고했다. 이란은 같은 달 13일 시리아 내 자국 영사관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을 겨냥해 미사일과 드론(무인기)을 200여발 넘게 발사했다.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한 것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사실상 처음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세 번째로 큰 산유국인 이란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보복에 나설 경우, 공급 불안 우려가 커지면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다시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정학 리스크 고조·감산 탓 유가 상승세
4월 10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유(WTI)는 배럴당 86.3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2023년 10월 20일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이다. 같은 날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북해 브렌트유 6월 인도분 역시 배럴당 90.60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브렌트유가 90달러 선을 넘어선 건 2023년 10월 말 이후 약 5개월 만이었다.
급변하는 중동 정세가 유가 상승에 불을 붙였다. 중동의 긴장감은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 전쟁 발발 이후 최고조로 치닫고 있으며, 또 다른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4월 1일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벌어진 이스라엘의 이란 영사관 공습 이후 이란이 보복을 공언했기 때문이다. 이번 공격과 관련해 이란은 미국에도 책임을 묻고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이란 영사관 공격을 사실상 승인한 것으로 보고 있기 보고 있어서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스라엘이 이란의 ‘그림자 네트워크’를 겨냥한 더 공격적인 행동에 나섰다”며 “이스라엘과 이란이 그동안 중동 전역에서 암암리에 벌여온 선전포고 없는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고 걱정했다.
원유 공급이 감소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진 것도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는 또 다른 원인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OPEC과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오펙 플러스)는 최근 비디오 콘퍼런스에서 원유 감산 정책을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OPEC+는 오는 2분기까지 자발적으로 하루 220만 배럴을 감산할 예정이다. 아울러 OPEC은 지난 1월과 2월에 생산량이 많았던 회원국을 상대로 추가 감산을 독려할 계획이다.
이 같은 상황 변화로 인해 전문가 사이에선 국제 유가 100달러 시대가 다시 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올여름 지정학적 긴장(전쟁)과 OPEC 감산 등을 근거로 유가가 배럴당 95달러대까지 오를 수 있다고 봤고, 시티그룹 역시 연내 배럴당 100달러까지도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JP모건은 브렌트유 가격이 8~9월 배럴당 100달러를 찍을 수 있다고 봤다. 국제 유가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2022년 3월(139달러) 이후 2년여 만에 다시 열리는 것이다.개인 투자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장희종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 호조세를 반영해 원유 ETF를 일정 부분 투자 포트폴리오에 가져갈 필요가 있고, 원화 환산 ETF를 잘 반영하는 국내 증시 상장 원유 선물 ETF와 WTI 유가 선물을 100% 보유한 미국 USO ETF에 관심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주요 원자재 가격도 동반 상승…인플레 우려
유가뿐 아니라 각종 산업에 필수적인 비철금속 가격 상승도 심상치 않다. 제조·건설업 수요 등이 많아 ‘닥터 코퍼(Dr. Copper)’로 불리며 경기 선행 지표로 꼽히는 구리의 4월 9일 기준 런던금속거래소(LME) 현물 가격은t당 9289달러로 지난해 1월 이후 1년 2개월여 만에 가장 높았다. 같은 날 주석 가격도 t당 3만1185달러 선을 넘나들며 2023년 7월 이후 최고가를 기록했다. 여기에 더해 니켈과 아연 등의 시세도 연초부터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세계 양대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에서 제조업이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원자재 가격 상승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가 집계한 3월 제조업 PMI는 50.3으로, 2022년 11월 이후 줄곧 50 선 밑을 맴돌다 처음으로 50을 넘어섰다.
중국의 지난 3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전월 대비 1.7 상승한 50.8을 기록했다. 중국은 2023년 9월 이후 처음으로 50을 넘었다. PMI 수치가 50보다 높으면 경기 확장, 낮으면 경기 수축 국면을 의미한다.
PLUS POINT
다시 커진 인플레 리스크, 멀어진 美 금리 인하국제 유가와 주요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미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로 대표되는 피벗(pivot·통화정책 기조 전환) 개시 시점이 늦춰지고 인하 폭도 예상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의 고용 시장이 견조한 흐름을 보이는 데다, 인플레이션도 안심할 상황이 아닌 만큼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6월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는 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4월 10일(현지시각) 미 노동부는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3.5%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9월(3.7%)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로 시장 예상치(3.4%)를 웃도는 수치다.
미국의 금리 인하 예상 시점도 후퇴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CPI 발표 직후 연준의 연내 금리 인하 횟수를 기존 3회에서 2회로 줄였고, 첫 금리 인하 시점을 7월로 예상했다. JP모건은 6월 금리 인하에 대해 “문이 닫혔다”면서 “이제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미 연준의 금리 인하 확률은 오는 6월 20.6%, 7월 50.5%다.
한편 같은 날 공개된 3월 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따르면 연준 위원들은 인플레이션이 2%로 낮아진다는 확신을 얻기 전까지는 금리 인하가 부적절하다고 입을 모았다. 의사록에는 “회의 참석자들은 강한 경제 모멘텀을 가리키는 지표와 실망스러운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지표에 주목했다” 면서 “위원들은 인플레이션이 2%를 향해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더 강한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라고 적혀 있다. 최근 미국의 주요 경기 지표는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3월 실업률은 전월 대비 0.1%포인트 감소한 3.8%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비농업 일자리는 30만3000개 늘어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20만 명)를 크게 웃돌면서 반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경제가 건강한 균형에 도달했다는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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