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한 ‘메이드 인 차이나’…韓 주력 수출품 모조리 대체할 판
(시사저널=오종탁 기자)
중국산(産)의 대공습은 온라인 유통뿐 아니라 스마트폰, 반도체, 전기차, 화장품 등 세계 소비시장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큰 위기에 직면했다.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를 가진 국가 입장에서 '밥줄'이나 다름없는 주요 수출 품목이 중국산에 완전히 밀리게 생겼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1위에 올랐다. 2분기 만에 애플을 무찌르고 선두를 탈환했지만, 전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태다. 애플의 반격보다 위협적인 것은 중국 기업들의 무서운 상승세다.
스마트폰·자동차 시장에 샤오미 돌풍
시장조사 업체 IDC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각각 16.3%, 24.7%였던 삼성전자와 애플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8%, 17.3%로 역전됐다. 시장 점유율에서 삼성전자와 애플의 뒤를 이은 기업은 3위 샤오미(14.1%), 4위 트랜션(9.9%), 5위 오포(8.7%)로 모두 중국 제조사다. 나빌라 포팔 IDC 리서치국장은 "삼성전자가 지난 몇 분기보다 견고한 위치에 올라섰다"면서도 양강(삼성전자와 애플)의 정체와 중국 기업들의 성장으로 스마트폰 제조업계 판도가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 1분기 전체 스마트폰 출하량은 2억8940만 대로 전년 동기 대비 7.8% 많아졌으나, 삼성전자(-0.7%)와 애플(-9.6%)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결국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세는 가성비로 무장한 중국 제조사들이 견인하고 있는 셈이다.
스마트폰과 더불어 한국의 양대 IT 수출품인 반도체 분야에서도 중국의 공습이 임박했다.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해짐에 따라 중국은 특유의 속도전으로 반도체 굴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는 중국의 기술 자립을 촉진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2~5년 정도 앞선 것으로 추정되는 반도체 기술(메모리 반도체 기준) 격차가 좁혀져 가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위기감도 점증하고 있다.
더구나 현 정부는 중국과 껄끄러운 관계를 감수하며 미국의 대중국 견제 구도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왔다. 국내 기업들은 정부 기조에 협조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미국의 기술·수출 통제 속에 우리 기업들은 중국에 대규모 공장을 두고서도 거대한 현지 시장을 잃어가는 딜레마에 빠졌다. 어느새 중국은 반도체 자립을 넘어 한국 시장 진출도 적극적으로 노리는 중이다.
자신감이 붙은 중국의 욕심이 스마트폰과 반도체에서 그칠 리 없다. 중국 정부가 요즘 가장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산업은 전기차 제조업이다. 진출 시기가 빠르고 늦고, 기술 격차가 크고 작고는 이제 중국에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모습이다. 샤오미가 3월28일 중국에서 처음 선보인 전기차 'SU7'은 닷새 만에 10만 대나 주문이 몰리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샤오미는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한 2021년 이후 단 3년 만에 대량생산 목표의 실차를 공개하며 세계 전기차 업계를 아연케 했다.
SU7은 포르쉐 전기차 '타이칸'과 흡사한 매혹적인 디자인과 준수한 성능으로 무장했다. 기본 모델 기준 1회 배터리 충전으로 최대 700km를 달릴 수 있는데, 테슬라 '모델 3'(600km)를 훌쩍 앞서는 수치다. 그럼에도 가격은 테슬라 라인업에서 가장 저렴한 모델 3보다 3만 위안(약 573만원) 저렴한 21만5900위안(약 4126만원)으로 책정됐다. 비슷한 사양인 테슬라 '모델 S'와 비교하면 48만3000위안(약 9231만원)가량 싸서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자랑한다.
전기차 시장 후발주자인 샤오미가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일단 손해를 감수하고 초저가 공세를 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실제로 레이쥔 샤오미 창업자 겸 회장은 "앞으로 5년간 (전기차 시장) 경쟁에 대처할 현금이 1300억 위안(약 23조8365억원) 넘게 준비돼 있다"며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계속 공격적인 기술 투자와 마케팅 행보를 펼칠 것임을 시사했다.
레이쥔 회장의 이러한 복안을 놓고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대표되는 국내 자동차 업계가 느끼는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뜩이나 중국 기업 비야디(BYD)가 국내 기업들의 내수·수출 전망을 어둡게 하는 와중에 더 거대한 위협이 생겨난 꼴이라서다. BYD는 초저가 전기차를 주력으로 시장 패러다임을 바꿔버렸다. 급기야 지난해 4분기 테슬라를 꺾고 세계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에서 버스, 트럭 같은 상용 전기차를 판매해온 BYD는 올 상반기 안에 승용 전기차 판매를 개시할 계획이다. 국내에 신공장 설립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도 새어 나온다.
"특단 대책 없으면 '넛 크래커'로 전락"
글로벌 'K뷰티' 열풍을 이끄는 한국 화장품 업계마저 중국산의 약진에 흔들리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화장품 수출국이다. 올 1분기 전체 화장품 수출액 23억 달러 중 중국으로의 수출액이 6억1000만 달러로 26.5%를 차지했다.
대중 화장품 수출액은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4.6% 감소했는데, 이는 중국에서 한국산의 입지가 쪼그라든 상황과 무관치 않다. 한국산 화장품의 중국 유통이 막혔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중국 화장품 제조사들은 상품 개발과 마케팅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 내수시장 점유율을 크게 높였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화장품부터 자동차, IT 제품까지 중국산이 '싸구려' '짝퉁' 이미지를 벗고 자국을 비롯한 전 세계 중저가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며 "특단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는 한 한국은 필연적으로 고가 제품군에서는 북미·유럽에 밀리고 중저가 제품군에선 중국에 밀리는 '넛 크래커(nut-cracker)'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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