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인드 마이너’ 송길영 “핵개인 시대, 소비는 깊어지고 넓어진다”
메가 트렌드는 없다… 모두에게 탕후루 팔려니 어려워져
콘텐츠가 플랫폼 선택의 기준… 유일한 걸 해야
세계화는 필연적... 알리·테무 활용해 글로벌로 가라
“메가 트렌드는 이미 없었어요.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모든 걸 팔려고 하니 어려워진 겁니다.”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 작가(前 바이브컴퍼니 부사장)가 유통업계에 메시지를 전했다. 소비자들의 근원적 욕망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과거의 방식대로 기술의 변화나 유행만 좇다 보면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에 탕후루 가게들이 어려워졌다는 기사를 봤는데, 작년 1분기만 해도 많은 예비 창업자의 가맹 창업 1순위가 탕후루였다”면서 “탕후루가 잘 팔리니 이걸 매스 마켓(대중 소비 시장)으로 보고 ‘국민 아이템’으로 띄우려다 실패했다. 개인 취향으로 소비가 넘어간 걸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 작가는 지난해 출간한 저서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에서 인공지능(AI)으로 대변되는 지능화와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핵개인이라는 새로운 개인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짚어 반향을 일으켰다. 핵개인이란 자기 삶의 의사 결정권을 갖고 싶은 사람들로,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인류와 교류하며 ‘내 것을 사는 사람’이다.
그는 “핵개인이 이끄는 소비는 더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개인의 취향이 깊어지고, 글로벌까지 소비 영역이 확산한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유통업체는 특정 연령대를 타깃으로 삼을 게 아니라, 결이 맞는 소비자에게 팔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근 중국 커머스 플랫폼의 공습에 대해선 알리, 테무를 통해 우리 상품을 세계에 갖다 팔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선비즈는 지난 8일 서울 중구 반얀트리 호텔에서 송 작가를 만나 핵개인 시대의 소비와 유통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빅데이터 전문가인 그는 바이브컴퍼니 부사장을 지냈고, 최근 독립해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라는 명칭으로 활동 중이다. 마인드 마이너란 빅데이터를 통해 시대의 마음을 캐내는 사람을 의미한다.
송 작가는 오는 5월 30일 조선비즈가 주최하는 ‘2024 유통산업포럼’에서 ‘핵개인 시대의 AI(인공지능)와 소비 트렌드’를 강연할 예정이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핵개인이란 무엇인가.
“본인 삶의 의사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다. 핵개인이 등장한 배경은 AI와 고령화 등을 들 수 있다. 디지털 도구와 AI의 도움으로 이전엔 혼자 할 수 없던 일들을 해내게 되면서 개인이 발휘할 힘이 강해졌다. 반면,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집단과 기성의 문법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은 약해졌다. 100세 이상의 생애주기에서 사람들은 조직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개인주의적 삶을 고민하고 있다. 수직적인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 개인이 상호 네트워크의 힘으로 자립하는 새로운 개인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핵개인 시대의 소비는 어떤 양상을 보이나.
“핵개인의 소비는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다. 집을 꾸민다고 가정해 보자. 예전엔 주방은 한샘, 욕심은 대림 같은 전문 업체에 맡겨서 인테리어를 했다. 그런데 요즘엔 스스로 인테리어를 한다. 9평짜리 원룸에 살면서 수전 디자인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 나온다. 전 세계를 뒤져서라도 마음에 드는 수전을 찾아낸다. 부유한 사람의 소비가 아니다. 핵개인에게 중요한 건 가격보다 자기 취향과 조예다.”
―소비가 파편화되면 트렌드 관측도 어려워지겠다.
“메가 트렌드는 매스 미디어의 영향력이 약해진 때부터 이미 없었다. 단지 우리가 그걸 희망했던 거다. 최근에 탕후루 가게가 망했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탕후루는 작년 초만 해도 유망 산업이었다. 뜬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진다고 한다. 더 이상 매스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데, 가맹 사업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이들이 국민 아이템만 찾다 보니 탕후루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예전엔 유행하는 단일 품목을 가져다 대량으로 떼어 온 후 많이 팔면 됐다. 그러면 상품 가짓수(SKU)도 줄고, 재고 부담도 줄고, 배송도 쉬워지니까. 하지만 개인 취향의 시대엔 밀리언셀러가 나오기 어렵다. TV 시청만 해도 예전엔 거실에서 지상파 TV를 온 가족이 함께 봤지만, 이젠 각자 스마트폰으로 보고 싶은 걸 본다. 남들이 사면 안 산다. 김 부장님이 쓰는 물건이라면 새로운 세대는 기피하기도 한다. (웃음)”
―최근 유통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통업체들도 나름 물류 투자, 자동화, 데이터 등 표피의 준비를 열심히 해왔을 거다. 그러나 그를 넘어선 부가가치를 만들려면 소비자들의 근원적 욕망을 이해해야 한다.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에 대한 문제다.
핵개인이란 자기 삶에 의사 결정권을 갖고 싶은 사람이다. 이들은 내 삶을 내가 결정한다. 예전엔 결혼할 때 어머니가 “가전제품은 OO회사 거 사라”고 하면 샀다. 잘 안 망가진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다른 건 몰라도 수비드(Sous vide·진공 밀봉된 음식을 봉지에 담아 물속에서 정밀한 온도로 조리하는 것) 요리가 하고 싶어 그에 맞는 가전제품을 산다.
예전엔 행위자가 누군가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면, 이제는 내 삶에 대해 내가 고민하고 탐색하고 그 과정에서 바로 옆 사람이 아닌 전 세계 인류와 교류한다. 유튜브와 챗GPT 등을 통해 관심사를 깊게 공부하는 게 쉬워졌다. 관심 있는 것을 깊게 소비하는 시대가 됐는데, 기존 유통업체들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걸 팔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거다.”
―그렇다면 소비자 타깃은 어떻게 설정하나.
“타깃은 ‘특정 연령 밴드에 있는 분들의 경험이 같기 때문에 의사결정을 같이 할 거라는 희망’이다. 그런데 당장 나와 친구들만 봐도 삶이 다르지 않나. 이제 소비층은 나이, 성별, 소득 수준 등으로 쉽게 그룹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원수만큼 타깃이 생기는 거다. 그렇기에 유통업체는 다 팔면 안되고, 나와 결이 같은 사람에게 팔아야 한다. 우리는 보통 그걸 ‘브랜드의 정체성’이라고 표현한다.
현대백화점의 경우 서울이라는 도시를 콘셉트로 여의도점을 구상하고, ‘더현대서울’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전엔 상권이 없던 곳이었지만, 소비자들은 K 문화가 주목받는 시기의 ‘서울’을 지향하는 브랜드 정체성을 보고 지갑을 열었다. 이젠 세대가 아니라 시대에 주목해야 한다.”
―트렌드도 타깃도 없다면, 연 매출이 조 단위인 대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대기업은 매일 초저가로 판매하는 ‘에브리데이 로우 프라이스’ 전략을 추진하거나, 다양한 욕망에 부응하도록 역할을 분담하면 된다. 이런 전략은 중소형 유통 채널은 실행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신세계그룹을 보면 백화점도 하고, 이마트도 하고, 스타필드도 한다. 서로 다른 소비층에 각기 다른 접점으로 접근하지만, 멤버십 포인트 연결 등을 통해 통합 브랜딩을 추구할 수도 있다.
앞으로 시장에 거대 플랫폼은 몇 개 안 남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은 플랫폼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면 행복한데, 아닌 경우에는 작은 니치(틈새) 시장을 기반으로 글로벌로 가는 작업을 하는 게 옳다고 본다.”
―미래 유통을 전망한다면.
“콘텐츠가 유통의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유튜버 ‘육식맨’을 예로 들어보자. 원래 직장인이었는데, 지금은 119만 명의 구독자를 지닌 스타 유튜버가 됐다. 그가 수비드 기법으로 요리하는 영상을 보면, 요리를 한참 만들고 나서 ‘LG 광파오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역시 LG가 최고야’라며 댓글을 단다. 광고 효과가 난 거다.
이게 끝이 아니다. 영상 아래에 영상에서 쓴 물건을 살 수 있는 쇼핑몰 링크를 걸어준다. 진간장, 물엿, 흑설탕, 고춧가루 등이 쿠팡과 같은 쇼핑몰로 연결된다. 해당 영상을 본 50만 명 중 일부가 이 링크를 통해 쇼핑을 하면 이분은 돈을 번다. 바로 ‘유통’이다. 쿠팡은 직접 광고를 할 필요가 없다. 이런 콘텐츠 프로바이더(제공자)만 연결하면 저절로 팔리고 수익이 배분된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콘텐츠가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엔 이런 걸 PPL(간접광고)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이게 유통이다. 컨텍스트(문맥)를 기반으로 하기에 브랜드가 들어오더라도 이질감이 없다. 과거 사람을 돈 주고 사서 광고를 했다면, 지금은 그의 인생을 사 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이 연결돼 있지 않다면 팔기 힘들다.”
―결국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얼마 전 세포라가 올리브영에 밀려 한국에서 사업을 철수한다고 하지 않았나? 올리브영은 상품 큐레이션을 잘해 성공했다. 예컨대 레티놀이 중요하다면서 레티놀을 잘하는 한국 브랜드를 잔뜩 보여준다. 아직 인지도가 낮은 브랜드일지라도 올리브영이 힘을 실어주면 사람들은 ‘와 올리브영 1등이래’라며 사 간다. 그냥 갖다 파는 게 아니라, 상품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거다.
이런 건 유튜버들이 잘한다. 인기 있는 요리 유튜버가 갈비찜을 하다가 ‘이 물엿을 써보세요’ 하면 그 물엿은 부가가치를 받고 매출이 오른다. 유통도 가치와 함께 가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남의 가치에 올라가면 안 된다. 가치를 내가 만들어야 한다.
고객 경험이라는 게 결국 거기에 내가 왜 가고 거기서 어떤 형태의 어떤 즐거움 또는 어려움을 해결하는지에 대한 연구다. 올리브영은 고객들이 매장에서 놀고 떠들고 도둑 화장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잘 된 거다. 유일한 걸 해야 한다. 콘텐츠가 플랫폼 선택의 기준이 됐다.”
―알리·테무 등 중국 플랫폼의 공습은 막을 수 있을까.
“세계화는 필연적인 방향이다. 과거엔 우리끼리 경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끼리 할 때는 김씨보다 싸게 팔고, 박씨보다 일찍 열면 됐지만, 지금은 더 큰 자본과 경쟁해야 하기에 더 신중히 고민하고 정교하게 가야 한다.
핵개인의 소비는 깊어진다고 했다. 깊어지면 시장은 작아진다. 작아지는 시장에서 성장하려면 해외로 가야 한다. AI 시대가 오고 전 세계가 연결되면서 로컬에서 글로벌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예전엔 밖에서 팔아야만 ‘수출’이라 불렀지만, 이젠 아니다. 여기서 해도 온라인을 통해 글로벌로 가면 그만큼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알리·테무를 막으려는 시도에 그치지 말고, 그들을 활용해 전 세계로 가서 뭘 팔지를 생각해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그들을 넘어설 수 있을 만큼의 깊은 나만의 무언가를 갈고 닦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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