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 '수사반장' TV에 자막이 왜 나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전화한 사연
'수사반장 1958' 첫 회부터
지상파 드라마 역사 68년래 처음
단일민족·언어 국가에서 왜?
①TV 시청층 고령화 "잘 안 들려..."
②OTT '자막 시청' 대중화...'자막 세대'
③'빨리빨리' 배속 시청 문화도 영향
30대 직장인 오모씨는 지난 19일 밤 TV를 보다 깜짝 놀랐다. 드라마 '수사반장 1958'을 보려고 MBC로 채널을 돌렸더니 대사가 화면에 자막으로 줄줄이 뜬 것.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나 유튜브와 연결된 줄 알고 TV 리모컨으로 확인해 봤더니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전파를 타고 있는 본방송이었다. 오씨는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21일 "시어머니가 청력이 안 좋으셔서 좋아하는 드라마를 TV로 잘 못 보신다"며 "'자막 나오는 거 보고 지금 ('수사반장 1958') 보시라고 전화했고, 시어머니가 '앞으로도 (자막이 나오는) 이런 드라마가 TV에 많아지면 좋겠다'고 하시더라"라고 말했다.
OTT처럼... 지상파도 본방송에 '자막 송출'
MBC가 일반 시청자를 대상으로 드라마 본방송 한국어 자막 서비스를 19일부터 시작했다. 국내 최초의 드라마 '천국의 문'이 1956년 전파를 탄 뒤 지상파 방송사가 한글 자막이 나오는 드라마를 제작해 본방송에 내보내기는 68년 만에 처음이다.
이런 변화는 ①TV를 보는 시청층이 고령화되고 ②코로나19 팬데믹 이후 OTT 대중화로 드라마를 자막과 같이 보거나 줄거리 위주로 빠르게 돌려 보는 시청 습관이 새로운 문화 표준으로 떠오르면서 생겼다. 반세기 넘게 자막 없이 송출됐던 TV 드라마 시청 문화가 급변한 미디어 환경으로 전환기를 맞은 것이다. 그간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 3사는 청각장애인에게만 제한적으로 드라마 본방송 자막 서비스를 제공했다.
MBC가 드라마 본방송 자막 서비스를 도입한 작품은 '수사반장 1958'이다. 1970~1980년대 인기를 누린 '수사반장'의 프리퀄(Prequel·본편보다 앞선 이야기를 다룬 속편)로 19일 처음 방송됐다. MBC 관계자는 20일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원조 '수사반장'을 기억하는 시청자분들이 보다 편하게 드라마를 시청하실 수 있도록 자막을 도입했다"며 "앞으로 방송될 다른 드라마로의 본방송 자막 도입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1971년 첫 방송 후 50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수사반장'을 추억하는 노년 시청자를 TV 앞에 붙잡아 두려는 전략이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커뮤니티엔 "(드라마를 보기) 편하다", "OTT로 자막에 익숙해져 친숙하다" 등의 의견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드라마 시청자 게시판엔 "집중이 안 된다"는 글도 올라왔다. MBC는 '수사반장 1958' 시청자 반응을 좀 더 지켜본 뒤 앞으로 방송될 드라마로의 본방송 자막 서비스 확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단일 민족·언어 국가의 '자막 사랑'
OTT 대중화로 "한국 드라마도 자막으로 봐야 편하다"는 시청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MBC에 이어 KBS·SBS도 본방송에 자막 서비스를 도입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SBS는 지난해 2월부터 재방송에 한해 드라마에 자막을 달아 내보내고 있다. SBS 관계자는 20일 "시청 흐름에 도움이 되는 장르물 중심으로 드라마 본방송으로 자막 서비스를 확대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만 OTT와 달리 TV는 자막을 끄거나 켤지를 선택할 수 없다. 자막 시청 확대를 위해선 자막 수신을 시청자가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방송사들이 만들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나라도 아니고, 공용어가 2개 이상인 다언어 국가도 아니다. 소위 단일 민족, 단일 언어권인 나라의 지상파 TV에서 모국어로 실시간 드라마 자막 서비스가 이뤄지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는 게 방송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런데도 자막 서비스가 점점 확대되는 건 국내 소비자의 독특한 콘텐츠 소비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빨리빨리' 문화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영상도 1.25~1.5배속으로 빠르게 돌려 보면서 자막에 대한 요구가 더 커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정보와 콘텐츠 과잉의 시대에 일상에 쫓겨 여러 일을 하면서 영상을 보느라 자막에 의존해 줄거리를 중심으로 좀 더 빠르고 쉽게 콘텐츠를 소비하는 걸 효율적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화 등 말보다 SNS와 카카오톡 등을 통해 문자 위주로 일상의 소통이 이뤄진 것도 자막 확산의 이유로 꼽힌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바뀌면서 요즘 사람들은 청각보다 시각 정보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전화를 꺼리고 소리로 정보를 주고받는 걸 불편해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문자로 된 자막이 더 편하고 정확한 정보를 준다고 믿어 자막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이라고 바라봤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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