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상훈]美 대선을 바라보는 기시다의 불안함

이상훈 도쿄 특파원 2024. 4. 21.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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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당선되면 자유와 민주주의가 끝장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0일 워싱턴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가진 미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미일 정상회담 당시 일본을 '글로벌 파트너'로 칭하며 "미국은 혼자가 아니다. 일본이 함께한다"고 강조했던 기시다 총리의 연설에서 이런 미국을 향한 일본의 불안감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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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도쿄 특파원
“트럼프가 당선되면 자유와 민주주의가 끝장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0일 워싱턴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가진 미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또 “(트럼프에게) 절대 질 수 없다”는 결의도 드러냈다고 한다. 같은 날 치러진 한국 총선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았을 기시다 총리는 이 말을 듣고 뭘 떠올렸을까. “이번 총선은 자유 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겠다는 범죄자 세력과의 승부”라고 외쳤다가 참패한 한국 여당 대표를 떠올렸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망상일까.


“자유 민주주의 끝” 묘한 기시감

한미 집권세력은 좀처럼 앞서지 못하는 지지율, 여러 정책 실패, 상대를 심판해 달라는 호소 등 여러모로 절묘하게 겹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한국 여당의 참패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며 기시다 총리 또한 불안감이 엄습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 또한 이달 말 보궐선거 결과에 따라 총리직을 보전하기 어려울 수 있고, 미 대선의 불확실성 또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해 일본에 “부자 나라를 왜 미국이 지켜줘야 하느냐”고 한다면 어떨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미 철강회사 US스틸 인수를 막겠다고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일 정상회담 당시 일본을 ‘글로벌 파트너’로 칭하며 “미국은 혼자가 아니다. 일본이 함께한다”고 강조했던 기시다 총리의 연설에서 이런 미국을 향한 일본의 불안감이 드러난다. “변하지 않는 동맹과 지속될 우정을 약속한다”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가깝고 일치한 적이 없었다”는 그의 노골적인 구애에는 11월 미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더라도 인도태평양에 대한 관여를 계속해 달라는 일본의 간절함이 담겼다.

일본을 바라보는 미국의 심경도 복잡하다.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일본 같은 강력한 동맹국이 흔들리지 않아야 안팎의 혼란스러운 변수를 하나라도 줄일 수 있다. 기시다 총리의 방미 중 일본을 미국, 영국, 호주 등 3국의 안보 협력체 ‘오커스(AUKUS)’에 참여시키고 미-일-필리핀 3국 정상회의까지 열며 중국 포위를 위한 ‘격자형(lattice) 안보 구조’를 마련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당시 바이든 행정부 관계자 또한 일본 취재진에게 “(미국의 동맹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미국에 깊고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것이다. 기시다 총리가 보여줬다”고 평했다.

다만 일본 일각에서는 우려도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기시다 총리의 연설은 중국과 격하게 대립하는 미국의 속내와 본질을 잘못 읽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평했다. 만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해 일본에 대폭적인 방위비 증액과 자위대 역할 확대를 요구한다면 어떻게 대처할지 일본 사회의 여론도 모아지지 않았다.

미군과 자위대의 지휘 연계가 한미 연합사령부 형태로 발전될 것이란 전망에 강하게 손사래를 치는 게 현재의 일본이다. 한미 연합사는 북한에 대항하지만 미일 동맹은 중국 견제 목적이 크다. 일본 일각에서는 미국의 대중국 억제 전략에 이용됐다가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갈지자 행보로 일본 또한 우왕좌왕하지 않을지를 가장 우려한다.


美 대선 맞춘 외교 정책 보이지 않아

일본에 ‘글로벌 파트너’ 약속을 받아낸 미국이 한국에도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으라고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답안지를 준비하고 있을까. 한미 동맹을 ‘가치 동맹’으로 평가하며 중국과 거리를 두는 현 정부의 정책도, 중국에 ‘셰셰 외교’면 된다는 야당 대표의 인식 또한 정답과 거리가 먼 것 같다. 미 대선이란 중대 변수에 맞춰 외교 정책을 가다듬으려는 고민조차 보이지 않는 게 진짜 걱정이다.

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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