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식민지배 합리화하는 日

강구열 2024. 4. 2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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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강진 때 日 건설 다리 ‘멀쩡’
日언론, 일제 시혜인 양 자화자찬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때도 비슷
반성은 없고 역사왜곡에 열 올려

지난 3일 대만 화롄현 남동쪽 23㎞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7.2의 지진은 일본에서도 큰 관심을 모았다. 지진 대국인 이 나라 언론들이 전한 피해 상황과 관련된 기사에는 동병상련의 아픔 같은 게 느껴졌다. 그렇게 쏟아진 기사들 중 지진 발생 후 4일이 지났을 즈음 교각 관련된 것이 눈길을 끌었다.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화롄시와 타이베이를 잇는 가장 빠른 길에 놓인 약 25m 길이의 샤칭수이교가 지진으로 붕괴됐다. 통행이 불가능해진 샤칭수이교를 대신한 것이 1930년 건설된 인근의 약 10m 길이 다리다. 1972년 샤칭수이교가 놓인 뒤 방치되다시피 했는데, 철근으로 보수해 제한적으로 차량 통행에 활용했다고 한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일본 언론이 이 다리에 주목한 이유는 일제가 대만을 지배하던 시절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긍정하고, 대만인들도 그것을 감사해 한다고 관련 소식을 전했다. 요미우리는 “오래된 다리가 강한 흔들림을 견딘 것에 놀랍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생각지 못한 형태로 오래된 다리가 재이용되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일본이 탄탄한 인프라를 남겨 주어 감사하다’는 등의 목소리가 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신문도 같은 태도였다. 이 신문은 “현지에서도 오래된 다리의 견고함에 경탄의 목소리가 나온다”며 “SNS에도 ‘역사가 우리를 지켜 주었다’ 등의 칭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고 전했다.

이 다리 외에 일제가 남긴 건축물이 지금도 대만에 여럿 있다고 짚은 것도 같다. 산케이는 일본군이 사용했던 ‘장군부’라는 시설이 수리를 거쳐 현재는 상가로 활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입점한 한 가게 주인은 “역사를 후세에 남기기 위해 영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제는 1895∼1945년 50년간 대만을 지배했다.

큰 분량도 아닌 이 기사들을 보며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건 일제가 대만에 마치 시혜를 베푼 것처럼 과거를 포장했기 때문이다. 일제가 주변국을 상대로 벌인 가해의 역사에 대한 왜곡이 우경화된 일본에서 드문 일도 아니건만 피해 당사자인 대만인들을 등장시켜 후세에 남길 역사 운운하는 것에는 이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싶었다.

지금의 대만이 일제의 지배를 어떻게 평가하고 인식하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일본 언론이 전한 시각을 가진 대만인들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일제강점기를 분노와 함께 떠올리는 한국에도 그런 사람은 있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날로 높아지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협력이 절실한 대만의 현실이 일본을 향한 긍정적인 태도로 이어진 게 아닌가 하는 짐작도 하게 된다. 일본 역시 중국의 격한 반발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요 정치인을 대만에 보내는 등 대만의 강력한 우군임을 자처하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 스스로 식민지배를 긍정하고, 심지어 그것이 대만 발전에 기여한 것처럼 떠들어도 좋은가. 일제의 야욕에서 비롯된 불행한 과거에 일본의 태도는 반성을 전제로 한 것이어야 한다. 대만의 교각을 둘러싼 이야기를 전하는 일본 언론의 접근 방식에는 이것이 없다.

일본은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만든 한 시설을 두고도 비슷한 태도를 보인 적이 있다. 1993년 경복궁 앞 옛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기로 결정이 났을 때의 일이다. 일본 건축계는 이 건물이 아시아의 보기 드문 초기 근대 건축물이라며 보존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보냈다. 철거 결정이 알려지고 일본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고 알린 당시 한 방송 보도에서 한 일본인은 “그때(일제강점기)가 그립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조선총독부 청사가 상징하는 일제강점기의 불행은 안중에도 없었다.

날로 우경화하며 역사 왜곡에 거리낌이 없는 일본의 현재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우익 성향 정치인들의 반복되는 망언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 검정 통과가 발표된 역사교과서 내용은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칠 의지가 없음을 보여 줬다. 강진으로 큰 피해를 본 대만의 상황을 전하면서 굳이 과거 일제가 만든 교각을 둘러싼 이야기를 전하는 일본 언론의 태도 또한 같은 맥락에 있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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