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기억은 공간을 통해 이어진다
미국 워싱턴에는 동쪽 끝에 의회 의사당이, 서쪽 끝에 링컨 대통령 기념관이 마주보고 있는 “내셔널 몰”이라 불리는 긴 공간이 있다.
동쪽으로는 각종 역사박물관들이, 서쪽과 남쪽으로는 홀로코스트와 2차 대전·한국전쟁·베트남전쟁 참전용사 추모공원, 마틴 루서 킹 목사 추모공원 등이 자리해 있다. 미국 정치의 핵심부라 할 수 있는 워싱턴은 백악관과 의사당만 있는 공간이 아니라 사실상 거대한 추모의 공간이다.
비행기를 타고 뉴욕 맨해튼으로 날아가면 9·11 테러로 파괴된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있었던 자리에 “그라운드 제로”라 불리는 추모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평지에 서서는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심연을 상징하는 네모난 분수가 북쪽과 남쪽에 하나씩 있고, 당시의 참사를 기억할 수 있는 박물관이 있다.
이러한 공간들의 기능은 여러가지이겠으나 그 모든 것을 압축하여 한마디로 하자면 ‘기억’일 것이다. 즉 기억은 정보와 상징으로 직조된 공간을 통해 이어진다. 이 공간의 방문자들은 세대에 세대를 더하여, 비극의 역사를 경험했든 경험하지 못했든, 이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번 4월은 2014년 4월16일 발생했던 세월호 참사 10주기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어느새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향과, 그것을 위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회적 대참사의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사회적 흐름을 만들어냈다. 지난 10년의 시간은 한 사회가 비극과 슬픔을 어떻게 애도하고 기억하고 전승할 수 있는지를, 감추어야 했던 기억을 어떻게 공적 공간으로 끌어낼 수 있는지를 치열한 싸움을 통해 학습한 시간이었다.
희생자들의 85%가 단원고등학교 학생이었던 세월호 참사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던 공간은 이 학생들이 공부하던 2학년 열 개 교실과 교무실이었다. 유품들과 편지들, 꽃들이 놓여 있던 이 교실은 남은 이들이 떠나간 이들을 만나러 가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교실은 추모공간이 아니라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너무나 옳아서 잔인했던 주장에 밀려 세월호 선체가 인양되기도 전인 2016년 단원고 교정을 떠났다. 현재는 안산에 위치한 4·16민주시민교육원 내 ‘단원고 4·16기억교실’ 및 인터넷상 가상공간으로 복원되어 있다.
세월호 선체의 인양을 둘러싼 투쟁도 있었다. 세월호 선체는 희생자들이 마지막으로 흔적을 남겼던 공간이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우리에게 말없이 말해줄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진상규명을 말하던 와중에도 이 공간을 더 넓은 공적 공간에 출현시키는 데는 참사로부터 만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기술적으로 어려워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어려워서 걸린 시간이었다.
사라져버린 다른 하나의 공간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이다.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설치되었던 텐트 형태의 이 추모공간은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을, 그리고 다른 유가족들을 만나는 장소였다. 이 장소는 참사 4주기가 되던 2018년 4월16일 합동 영결·추도식을 끝으로 철거되었다. 이제는 사회적 추모가 끝났다는 합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확장된 가치를 지향하는 ‘4·16생명안전공원’을 건립하기로 방향이 정해졌기에 진행된 일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도록 이 ‘공원 부지’는 아직까지 공터로 남아 광야의 예배가 열리고 있다. 지금 여러 군데 흩어져 안치되어 있는 희생자들의 유골함을 이곳에 모아 추모공원을 조성하되, 봉안당 공간은 최소화하고 마치 워싱턴이나 맨해튼의 그라운드 제로처럼 모든 시민들이 이곳에 와서 공간을 소비하면서 자연스레 사회적 참사의 역사를 배우고 생명과 안전을 지향하도록 개방된 공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계획은 아직 풀들이 어지러이 자라나고 있는 공터 위를 배회하고 있다.
참사는 완결될 수 없다. 참사는 누군가에게는 지속되는 현실이고, 누군가에게는 재구성된 서사이며, 다음 세대에게는 자신의 시대를 이해하게 해주는 역사가 된다. 참사와 그 희생자들을 기리는 공간은 몸과 영혼을 지닌 인간이 각자의, 그리고 모두의 기억을 함께 이어갈 수 있게 해준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은 여전히 컨테이너로 된 팽목기억관과 서울시의회 앞 자그마한 기억공간을 불안하게 지키고 있고, 컨테이너 안에서 그날을 노래하며 4·16생명안전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사회는 이 노력에 반응해야 한다. 집단적 기억의 가치에 걸맞은 공적 공간의 조성은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그 사회의 품격이다.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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