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어머니의 노심초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한 어머니가 있다. 우울증이 있어 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닌다. 어머니를 괴롭히는 걱정의 근원은 중년의 아들과 손주다. 조현병 때문에 피해망상을 겪는 아들은 몇년 전 아내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했다가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상태가 나아져 퇴원했으나 치료를 중단했고 결국 아내와 이혼했다.
자신의 자녀와 함께 따로 사는 아들은 극도의 고립 생활을 했다. 가끔 장을 보러 가는 경우를 빼곤 전혀 외출하지 않았고, 어머니가 만들어다 준 음식도 거부했다. 자녀의 외출까지 통제했다. 할머니와 만나지도 못하게 했다. 어머니는 아들과 손주가 함께 저세상으로 가버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정신건강복지센터, 경찰, 아동학대센터 문을 두드렸다. 그때마다 ‘안타깝지만 도울 방법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치료의 필요성’과 ‘자해·타해의 위험성’이 인정돼야 정신질환자의 비자의입원(강제입원)이 가능하다. 그런데 집 안에 웅크리고 외부인과의 접촉 자체를 거부한 탓에 아들에게 치료의 필요성, 그리고 자해 또는 타해의 위험이 있는지 규명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몇년이 흘렀다. 어머니는 지난해에 손주가 다니는 초등학교를 찾아가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눈 밝고 적극적인 선생님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그렇지 않아도 발달이 좀 느리고 성격이 너무 어두운 아이가 신경이 쓰이던 차였다. 아버지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요청에 응할 리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경찰이 출동했다. 몇년 만에 처음으로 그 집에 들어간 외부인이 경찰이었다. 현관에만 4개의 잠금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경찰과 아동학대센터 측은 아이의 외출을 막고 가둔 것도 아동학대에 해당한다고 봤다. 마침내 아들은 입원해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심한 우울증 진단이 나온 아이에 대한 치료도 시작됐다. 지금은 온 가족이 함께 살며 식사를 같이한다. 퇴원한 아들은 어머니를 병원 외래진료에 모시고 다닐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현장에서 이런 안타까운 사례를 적지 않게 만난다고 전했다. 백 교수의 환자인 이 어머니는 최근 진료를 받으러 와서 “원래 착하고 여리던 아들이 돌아왔다”면서 우시더란다. 이 사연이 눈길을 끈 건 어머니와 아들, 손주로 이어지는 3대의 사연이 기구하기도 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개인의 고통을 오랜 시간 사회가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점 때문이기도 했다.
모든 사건은 구체적이지만 법과 제도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일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사건을 일일이 포착해 대책을 내놓기엔 그물코가 느슨하다. 그래서 사각지대가 생긴다. 위의 사례에선 끝까지 견디며 포기하지 않은 어머니의 노력에 의료진과 교사, 경찰, 아동복지담당자 등의 협조가 더해지면서 사각지대를 메우고 ‘해피엔딩’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선 ‘슬픈 결말’이 주기적으로 발생한다.
사각지대가 커질수록 법과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커진다. 2019년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살인 사건, 지난해 분당 서현역 무차별 테러 사건 등 중증정신질환자가 연루된 사건이 주목을 받을 때마다 이런 압력은 더욱 커진다.
중요 쟁점 하나는 자의 또는 판단능력 상실로 검사와 치료를 거부하는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우리나라는 가족 등 보호의무자와 전문의 판단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증정신질환은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적 문제인데 국가의 역할이 빠져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이런 지적은 외국처럼 법원이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강제입원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사법입원제’를 도입해야 한다거나, 정신건강심판원 같은 전문기관을 설립해 검사 또는 입원을 명령할 권한을 부여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으로 이어진다. 이를 두고 일부 환자단체나 장애인단체는 비자발적 장기입원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횡행했던 과거로의 회귀라고 반대한다. 강제입원은 말 그대로 본인의 의사에 반해 이뤄지는 것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어느덧 1인 가구가 1000만가구를 넘어섰다. 백 교수가 전한 사례에선 어머니의 노심초사가 있었지만 가족 없이 홀로 방치되는 환자도 많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환자의 인권과 건강, 사회의 안전을 동시에 도모할 방안을 찾기 위한 사회적 대화를 서둘러야 한다.
김재중 사회부장 겸 스포트라이트부장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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