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검찰이 언제부터 이렇게 후안무치해졌나
작년 말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돼 큰 인기를 끌었다. 실제 일어났던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영화다. 군과 같이 압도적 힘을 가진 조직에서 일부라도 정치적 중립을 외면하면 잠깐의 시간으로 국가가 처참히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영화의 울림은 과거로만 향한 걸까. 앵글은 지난 역사를 비추지만 관객과의 대화는 현재여서 그토록 관심이 높았던 것은 아닐까.
막강한 권력기관이 정치적 중립의 본분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정치에 직접 개입한 사건은 최근에도 벌어졌다. 딱 4년 전, 21대 총선을 코앞에 두고 검찰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최근 1심 판결 선고로 범죄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대검찰청 검사가 총선을 목전에 두고 여권 인사를 피고발자로 한 고발장을 작성한 후 야당의 검찰 출신 총선 후보자에게 전달해 검찰청에 접수하라고 사주한 것이다.
그런데 어떤가. 이 정도로 엄청난 사실이 유죄 판결로 드러났으면 조직의 존립 자체가 휘청거릴 법도 한데 아무런 일도 없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범죄가 검찰의 핵심부인 대검찰청에서 일어났는데, 법무부 장관도 검찰총장도 검찰의 그 누구도 사과나 용서를 구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먼저 어느 기관보다 엄정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검찰이 이를 위반하고 직접 정치행위를 한 것이 놀랍다.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막강한 권력기관이다. 그 힘으로 한 개인을, 한 가정을, 한 기업을, 한 정치인을 얼마든지 나락에 빠뜨릴 수 있다. 그렇기에 정치 중립을 철저히 지키고 절제해야 한다.
두 번째로 이 사건에는 검찰 권력의 핵심부인 대검에서 여러 사람이 관여했다. 한 명의 피고인만 기소되었지만, 법원은 다수의 공범이 관여한 사건임을 확인해 주었다. 개인의 일탈행위가 아니었다.
세 번째로 공정함을 생명으로 여겨야 할 수사기관이 스스로 공정성을 무너뜨렸다. 수사기관은 고발인과 피고발인 사이에서 절제된 균형을 유지하며 불편부당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그것이 수사기관의 본분이다. 그런데 자신이 가진 내밀한 수사정보를 이용해 고발장을 만들고 고발을 사주했다. 고발장을 직접 작성한 수사기관이 과연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을까, 피고발자도 국민들도 이러한 수사를 신뢰할 수 있을까.
네 번째로 사건 발생 후 검찰이 보인 태도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고발사주를 받은 야당 후보자를 검찰로 이첩했는데 검찰은 그를 불기소했다. 다른 관여자는 제대로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더 놀랄 일은 범인으로 지목되어 기소까지 된 피고인을 검찰의 꽃이라는 검사장으로 승진시키기까지 했다. 마치 상을 줘야 마땅한 사람처럼. 유죄가 선고되었는데도 그 누구도 국민들에게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상황일까. 검찰 출신 대통령의 등장으로 검찰이 가진 잣대와 우리가 가진 잣대가 완전히 달라져 버린 것일까. 언제부터 검찰이 이렇게 후안무치해진 걸까. 정치적 중립의 잣대에 무감각해지는 순간, 공정에 무뎌지는 순간, 슬금슬금 퍼진 독균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서울의 봄>이 그것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박용대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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