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장애 인권 퇴보를 마주한 장애인의날
매년 4월20일 장애인의날이면 전국에서 온갖 행사가 열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러했다. 서울시장도 기념행사에서 장애 아동과 가족에 대한 지원부터 고령 장애인의 돌봄까지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몇년간 계속되는 장애 인권의 퇴보는 그야말로 참담한 수준이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을 없앴다. 2020년 시작한 이 사업은 최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되 탈시설 장애인에게 우선권을 주고 최저시급을 지급하면서 전국적으로 각광받았다. 일자리에 사람을 욱여넣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일자리를 맞추는 원리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올해 갑자기 ‘장애 유형 맞춤형 특화일자리’ 사업으로 대체됐고, 그 후 신체기능과 직무수행 가능성을 따지는 단순노동 연계 사업으로 축소되면서 400명에 달하는 최중증장애인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2003년부터 매년 봄마다 축제로 열리던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도 사상 최초로 무산 위기를 맞았다. 서울시에서 올해부터 갑작스럽게 예산 지원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21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도 시민들의 후원으로 영화제는 4월18일 무사히 개막했다. 열악한 상황이지만 배리어프리 상영을 위해 영화마다 음성 해설·수어 통역·자막 해설을 삽입하고, 발달장애인을 위한 알기 쉬운 안내서와 예고편을 제공하며 비장애인 중심의 미디어 환경에 유의미한 경종을 울렸다. 향후 지속성을 장담할 수 없는 채 그야말로 쥐어짜 낸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시의회는 급기야 장애인의날을 지나며 탈시설조례 폐지 조례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에 관한 실질적인 내용을 담아서 모범적인 자치법규로 꼽히던 서울시 탈시설조례는 2021년 6월 제정되었다. 탈시설하여 지역사회에서 살고 있는 중증장애인들이 중요한 조례의 폐지를 막기 위해 지난주 국가인권위원회에 찾아가 긴급 시정 권고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용원·이충상 두 상임위원의 전례없는 활약으로 설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이 진정을 빨리 처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자립 생활과 지역사회 통합에 대한 규정을 통해 탈시설의 ‘권리’를 글자로 박아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 협약을 비준한 지 15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중앙정부 차원의 탈시설 정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국회도 무관심하다. 2020년 말, 발의된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은 소관 상임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21대 국회가 남은 기간 각별히 살펴야 할 법률 중 하나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옆에서 돌봐주는 사람이나 먹고살 만한 수준의 지원금도 필요하지만, 사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 장애인을 ‘그 자체로 완전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완전한 사람인데 왜 도움을 받냐고 되묻는 것은 ‘비장애인은 도움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오류로 빠지기 쉽다. 고도로 분업화된 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은 남이 지어놓은 집에 살면서 남이 수확한 먹거리를 먹으며 남이 만들어 놓은 도로와 교통수단을 이용하며 돌아다닌다. 장애가 있든 없든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 살아간다.
지난 3월26일에는 탈시설 장애인상 시상식이 열렸다. 수상자 박만순씨는 발달장애인으로 여덟 살에 장애인 시설에 입소한 뒤 무려 49년이나 시설에서만 지냈다. 2021년 여름에 탈시설하여 지역사회에서 노동자로, 배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수상을 축하하는 관중들의 환호에 두 손을 흔들며 “(시설에서) 나와서 너무 좋아요”라고 해맑게 웃는 그의 얼굴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장애인은 그 모습 그대로 완전한 사람이다.’
김예원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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