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권의 손길]총선 후에 묻는다,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란 이상 향한 아집 아냐
적절한 수준의 타협하는 일
지난 2년간 정치 돌아보면
‘대화’ 대신 ‘적대’만 가득
묻고 들을 준비는 돼 있나?
22대 총선이 끝났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정치란 무엇인가?’
돌아보면, 이 질문에 체계적으로 답한 최초의 인물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에게 정치란 공동체가 서로 다른 이해관계, 종교, 전통을 지닌 다양한 집단들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행하는 인간적 활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서로 다름’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을 조정하는 일을 두고 ‘정의’(justice)라고 부르며, 정치란 이런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라고, 인간이 그 어떤 동물보다 정교한 언어를 가지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한다.
돌아보면, 정치의 역사는 이 사실을 인간이 받아들여온 역동적 이야기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만든 정치적 질서는 언제나 ‘억압’과 ‘공포’를 동반했다.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보는 정치적 질서의 형성이 개인이 서로 다를 자유를 받아들이는 과정과 일치했던 이유다.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정치학자 버나드 크릭은 <정치를 옹호함>(1962)에서 이렇게 쓴다. “정치란 서로 다른 진실들을 어느 정도 관용해야 한다는 것, 곧 통치란 서로 경쟁하는 이해관계들이 공개적인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가능하다는 것, 실로 그래야 통치가 가장 잘 이루어진다는 것에 대한 인식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크릭은 강조한다. 정치란 “이상을 향한 아집이 아니다. 그렇게 될 경우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이상을 위협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정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다양화하면서도 공동의 이해관계를 끌어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준의 타협점을 발견”하는 일이다. 쉽게 말해 특정한 원칙이나 신조를 고수하는 일이 아니라 그 타협점을 아는 “분별력의 문제”다.
그렇다면 그 분별력은 어떻게 생겨날까? 2500년 전 소크라테스는 그 분별력이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생겨난다고 말한다. 델포이의 신전에서 ‘소크라테스가 가장 현명한 이’란 신탁이 나왔을 때, 소크라테스는 궁금했다. ‘왜 신은 나를 가장 현명하다고 했을까?’
이런 이유로 소크라테스는 도시국가에서 현자로 알려진 시인, 정치가, 장인을 찾아간다. 그는 이들 모두가 시가, 정치가, 기술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라는 점, 그럼에도 이들 모두가 자신이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고 여기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이들보다 현명한 이유가 ‘자신이 제대로 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것’에 있음을 깨달았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정치적 삶에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다른 시민들을 위할 수 있는 충분한 지식이 없음을 인정할 때,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행위가 대화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대화 따위’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익으로 분열된 사회에서 나와 다른 견해와 이익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일이야말로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대표자들에게 필요한 분별력의 원천이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2년 만에 치른 이번 총선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였다. 유권자들은 192석, 역사적으로 볼 수 없었던 의석수를 범야권에 몰아주며 현 정부의 국정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했다.
아쉽게도 이 메시지가 제대로 수신된 것 같지는 않다.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는 모자랐다”는 대통령의 발언엔 여전히 자신이 옳다는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여전히 내가 옳다고 완고하게 믿는 이가 입장과 이익이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 역사적으로 보기 드문 선거 결과를 마주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앞으로 우리 정치에 변화가 없을 거라 보는 이유다.
아렌트는 역사를 돌아보면 자신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으로 가득한 무능한 자들로 넘쳐났다고 말한다. 진정으로 유능한 사람들은 자신만이 아닌, 동료들과 함께 세상을 바꾼다. 아렌트는 이런 사람들만이 정치적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제 당선자들에게 묻는다.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우리 정치에는 ‘대화’ 대신 ‘적대’만 가득했다. 우리 정치가 멈춤을 넘어 퇴행한 이유다. ‘여러분은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미 답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가? 아니면 동료들에게, 입장이 다른 이에게 묻고 들을 준비를 하고 있는가?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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