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은 누구의 승리일까 [서울 말고]
김유빈 | ㈔지역공공정책플랫폼광주로 이사
4월10일 수요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나는 일찍이 사전투표를 마치고 선거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나 시퍼런 색과 시뻘건 색만 가득한, 정확히 동서가 나뉜 지도를 보며 느끼는 무기력함에 개표방송을 끄고 텔레비전 앞을 떠났다. 으레 그렇듯 선거 이후 여러 전문가가 선거에 대한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비전문가인 나도 의견을 보태고자 하는데 일반 시민의 눈으로 이번 총선에 대한 시각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해 보고 싶다.
선거에 대해 체감한 지역의 분위기는 항상 그래왔듯이 더불어민주당 공천과 동시에 선거가 끝났다는 단정, 소수 정당 후보 당선에 대한 기대 그리고 특징적으로 조국혁신당에 대한 열풍이 있었다. 실제 조국혁신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을 보면 광주 47.72%, 전남 43.97%로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청년들과 선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기 부모님의 지지 정당으로 조국혁신당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것을 보면 그 열풍은 예견된 것이었다. 그 열풍에 나를 포함한 또래 청년들은 왜 공감할 수 없었는지는 평가가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완료와 동시에 선거가 끝났다는 표현처럼 광주·전남 18개 지역구는 민주당의 싹쓸이였다. 지역민들이 거대양당 구조의 문제점을 알고 있음에도 이번에도 그 구조에 전혀 균열을 내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크다. 소수정당이 옳고 거대양당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와 상상이 실현될 수 있는 토대 자체가 마련되지 못해서다. 그뿐만 아니라 민주당 일색의 지역 정치 구조는 견제와 균형의 상실을 의미하고, 정치 문화의 퇴행과 지역민의 정치 무관심을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다 보니 동서로 강렬하게 나뉜 지도에서 나는 다른 색을 찾고 응원하고 싶었다.
이번 선거의 키워드는 정권 심판이었고 많은 이들이 심판론 탓에 정책이 사라졌다고 평가한다. 나 역시 내가 사는 지역의 후보자 정책공약 공보물과 선거 홍보 현수막을 보면서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정책공약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공보물에는 공약보다는 당 대표와 함께한 사진, 자신의 나이 든 노모를 챙기는 사진 등 ‘친분 인증’이나 감성에 호소하는 내용만 눈에 띌 뿐 아무리 꼼꼼히 살펴도 우리 삶에 와닿는 공약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생각을 가졌던 이가 비단 나뿐이었을까. 그런데도 선거 결과, 여소야대 국회가 구성됐고 이에 누군가는 압승에 환호하고, 누군가는 참패의 책임을 떠넘기느라 시끄럽다. 국민이 정권 심판의 열망을 투표로 표현했다는 평가가 압도적이지만 정작 팍팍한 서민의 삶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기대까지는 할 수 없다. 정권 심판을 통해 특정 권력자에게 어떤 조치를 한다고 해서 민생이 저절로 회복되지는 않음을 우리는 ‘2016년 촛불’에서 뼈아프게 배웠다.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에게 정권 심판은 무슨 의미일까. 이번 선거를 뒤흔든 ‘대파’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 이후 상인들이 가격 하락을 예상하고 대파 매입을 중단해 농가가 피해를 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 대파의 주산지는 전남이다. 적어도 전남 국회의원 당선자라면 대파 논란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이들 농가를 살필 수 있는 대책을 먼저 이야기해야 했다. 국민의 정권 심판 열망은 누군가에 대한 복수와 특정 권력자의 퇴진이라기보다 내 일상이 무탈할 수 있는 전반적인 안전망 부재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대파처럼 권력자들의 말 한마디에 국민의 삶이 흔들리지 않도록 정책적·사회적 시스템을 보완해 나가는 것이 결국 정권 심판일 것이다. 정책이 실종된 선거 과정을 자성하지 않고 축포만 쏘아올리거나 서로 헐뜯기만 한다면 이번 선거는 어느 당의 승리도 아니다. 국민의 승리는 더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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