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채의 종말’… 삼성만 남았다 [심층기획-공채의 종말]
연공제 약화 임금·노사구조 급변
대기업 공채 비율 2023년 35.8%로 줄고
수시 채용 48.3%, 상시 15.9%로 늘어
경영 불확실성·높은 고용 경직성 원인
기업들 교육비용 등 절감·전문성 강화
연공서열·평생 직장 개념은 약해지고
더 좋은 조건 찾는 ‘이직 사다리’ 활성화
청년들 직군별 맞춤형 구직활동에 초점
노사관계도 산업·직군별로 확대 전망
“정부, 청년 구직 지원·진로 지도 필요
공공·민간 임금 공시제 시행 검토해야”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대기업 채용에서 공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9년 39.9%에서 2023년 35.8%로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수시채용은 45.6%에서 48.3%로, 상시채용은 14.6%에서 15.9%로 꾸준히 늘었다.
고용노동부·한국고용정보원이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79%가 지난해 하반기 정기공채와 수시 특채를 병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기공채만 시행한 곳은 단 1%에 불과했고, 수시채용만 한 곳은 20%에 달했다.
채용 시장에서 경력직 선호 현상은 뚜렷하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의 조사를 보면 지난해 대졸 신규입사자 4명 중 1명(25.7%)이 경력을 가지고 신입직으로 지원한 소위 ‘중고 신입’이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서는 기업 74.6%가 신규 채용에서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는 요소로 ‘직무 관련 업무 경험’을 꼽았다.
수시채용 확대는 경영 불확실성과 한국의 높은 고용 경직성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선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인력을 그때그때 채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교육비용 절감도 기대할 수 있다.
수시채용을 진행하는 A기업 관계자는 “예전에는 ‘공채 후 우리 부서로 몇 명 데려와야 한다’며 기다렸다면, 요즘은 휴직 등으로 인력 보강이 필요하면 바로 공고를 내면 된다”고 전했다.
공채의 종말은 청년층의 취업부터 임금 구조, 노사관계까지 노동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청년들은 규격화된 시험·면접을 준비하기보다는 직군·직무별 맞춤형 구직활동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인재 양성을 위한 기업의 공식 교육·훈련이 사라지면서 청년들은 기업이 아닌 외부 노동시장에서 자기계발을 통해 숙련도를 쌓아야 한다.
직무 경험 기회를 찾기 어려운 청년들은 어려움이 적지 않다. 경력이 없어서 일을 못 구하고, 일을 못 해서 경력을 못 쌓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는 것이다.
공채 시대의 연공서열, 평생 고용 개념이 옅어지는 것 또한 중요한 변화다. 수시채용이 늘어난다는 것은 경력을 바탕으로 더 나은 처우와 기회를 찾아 떠나는 ‘이직 사다리’도 활성화된다는 의미다. 기업 내에서 경력을 개발하고 같이 성장해 나가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기회가 된다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기업으로 옮기겠다는 인식이 많아지고 있다.
수시채용과 이직이 보편화하면 이직이 활발한 직군과 직무부터 경력·경험·임금 등 외부 노동시장의 정보를 기반으로 직군·직무급으로 전환될 수 있다. 근무연한에 따라 책정되는 연공제는 약해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기업들이 인사 관리와 충분한 채용 정보 전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업은 우수인력 유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서야 한다. 예전에는 공채로 묶인 같은 기수들이 유사한 연령대의 구성원과 친밀감을 쌓았고, 평생 고용으로 조직 헌신도를 높였으나 최근엔 입사하자마자 다른 회사의 수시채용 공고를 확인하는 것이 낯설지 않다. 신규 인력 채용은 기업에 비용 부담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비공채는) 필요에 의해 채용공고를 내는 것이라 기업 전문성 강화 측면에선 좋은 점이 있다”면서도 “경력 사원은 그 조직에 적응하는 데 물리적인 시간이 걸리기에 이는 기업들이 계속 고민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구직자들이 직무 및 임금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안과 노동시장 진입 및 이직이 어려운 청년에 대한 지원을 고민해야 한다.
이상준 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업이 예전의 정기 공채 방식으로 회귀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미국의 노동 관련 포털 ‘오넷’처럼 한국의 임금 정보 시스템을 강화해 공공 및 민간 모두에서 임금 공시제 시행을 검토해야 한다. 노동시장 진입 및 이직이 어려운 청년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진로 지도와 구직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동수·이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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