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제안에도 의료계 '백지화' 고수…정부, 2000명 증원 유지할 듯
의료계 "원점 재논의" 주장…정부는 "고려 안 해"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증원 관련 2025학년도 신입생 모집인원을 자율 결정할 수 있도록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수용했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정부의 결정에 대해 "합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하고, 시민계에서도 "의료계에 굴복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논리적이고 통일된' 조정안이 나오지 않으면서 정부는 '2000명 정원 증원'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21일 정부에 따르면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특별 브리핑을 열고 "올해 의대 정원이 확대된 32개 대학 중 희망하는 경우 증원 인원의 50% 이상, 100% 범위 안에서 2025학년도에 한해 신입생을 자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밝혔다.
대학들은 2025학년도 대입 전형 시행계획을 변경해 허용된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모집 인원을 이달 말까지 결정하게 된다. 단, 2026학년도부터 다시 2000명으로 늘게 된다. 이는 원칙적으로 2000명 증원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앞서 강원대·경북대·경상국립대·충남대·충북대·제주대 등 6개 국립대 총장은 의대 정원 2000명을 증원하되, 대학별 교육여건에 따라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을 50~100%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했다.
정부의 이같은 '전향적 수용'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의 반응은 차갑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회복 가능한 기간이 1주 남았다"며 "대통령께서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원점 재논의라는 결단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도 정부의 결정을 "수용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그게 어떤 생각에서 그렇게 발표됐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며 다음주로 예정된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의대 학장들의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도 이날 대정부 호소문을 발표하며 "2025학년도 입학정원 동결, 의료계와의 협의체 구성 및 후속 논의를 촉구한다"고 했다. 2025학년도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동결하고, 2026학년도 이후부터 입학정원의 과학적 산출과 향후 의료 인력 수급 등을 결정할 수 있도록 협의체를 구성해달라는 설명이다.
KAMC는 이번 정부의 결정에 대해서는 "숫자에 갇힌 대화의 틀을 깨는 효과는 있었다"면서도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국가 의료 인력 배출 규모를 대학교 총장의 자율적 결정에 의존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19일 "의대생 수업 거부 정상화를 위한 국립대학교 총장들의 건의를 전향적으로 수용했다지만, 정부가 의료계 집단행동에 다시 굴복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며 "모집인원 확정을 앞두고 돌연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를 빌미로 기존의 원칙과 결정을 번복한 채 백기를 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그동안 의료계와의 대화에 열려있다고 밝혀왔다. 지난 19일에도 한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께서 지난 1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정부의 정책은 늘 열려 있다고 말씀했다"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의료계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단일안을 제시한다면 언제라도 열린 자세로 대화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정부가 내놓은 대안에도 '원점 재검토'를 주장했다. 대학들이 이달 말까지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확정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제출해야 하는데, 시한이 불과 10일밖에 남지 않았다.
정부의 의료개혁을 구체화하기 위해 출범할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다음주 첫 회의를 열 계획이지만, 의협 비대위가 참여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으면서 '2000명 증원'이 최종 확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결정이 최대 1000명까지 의대 모집인원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파격적'인데, 의료계가 협의에 나서지 않는다면 관련 여론도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19일 브리핑에서 "정치권이나 의료계에서 요구하는 원점 재검토나 증원 1년 유예는 필수의료 확충의 시급성, 2025년도 입시일정의 급박성 등을 감안할 때 현재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의료계와 대학의 부담을 줄이는 결정을 한 만큼, 대화가 이뤄지면 좋겠다"며 "의대정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에 대해 정부는 열려있다"고 밝혔다.
lg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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