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마의 기적’ 이끈 회장님이 뉴질랜드로 이주한 까닭은[서영아의 100세 카페]
소멸위기 섬을 현대미술 성지로
안도 다다오 등 예술가들과 작업
인구 3000명 섬에 연 50만 손님
“내가 죽더라도 지원 이어지도록…”
2월 초 ‘현대미술의 성지’라 불리는 일본 나오시마(直島)에 다녀왔다. 환경파괴로 버려진 섬을 30여 년에 걸쳐 세계적 관광지로 바꾼 나오시마 스토리는 식자들 사이에서는 꽤 알려진 얘기. 가족여행이었던지라 기사로 쓴다는 건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고향인 충북 보은에 컬처센터를 짓겠다는 김상문 인광그룹 회장을 인터뷰하다보니 나오시마가 자꾸 떠올랐다. 김 회장은 인구감소로 시들어가는 고향에 사재를 들여 컬처센터를 짓고 문화의 힘으로 생기를 불어넣고 싶어했다.
나오시마야말로 한 기업가의 소신있는 투자로 섬의 미래를 바꾼 케이스가 아니던가.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이 맞아주는 선착장
나오시마는 일본 중남부 가가와 현에 속한 인구 3300여 명의 작은 섬이다. 여의도와 비슷한 면적(8㎢)으로 자전거를 빌려 이동하는 관광객이 많다. 그 흔한 편의점도 세븐일레븐 딱 한 개뿐.
이 섬에 연간 50만 명이 찾아온단다. 관광객은 물론 지역재생을 공부하려는 건축가, 미술가, 활동가 등 면면은 다양하다.
2010년부터 3년마다 열리는 세토우치국제예술제의 해에는 연인원 1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나오시마와 주변 섬에 몰려온다.
나오시마에 도착하면 선착장의 랜드마크가 된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이 반겨준다. 한적한 자연과 아기자기한 마을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 어딜 가나 외국인들을 마주친다. 고령화율은 33.9%(2020년)로 노인들이 많다.
주택 한쪽을 개조해 직접 구운 쿠키를 파는 집, 살림집에 테이블을 놓은 식당이나 카페 등 애초에 있던 것들을 활용한 작은 가게들이 적지 않았다.
예술과 인간사랑에 진심인 기업가의 뚝심
나오시마를 비롯한 세토나이카이(内海)의 섬들은 한국의 다도해처럼 일찌감치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정도로 경관이 빼어나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용도폐기된 제련소와 폐기물들이 방치된 상태였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이런 섬에서 1990년대부터 예술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주도자는 후쿠타케 소이치로(福武總一郎) 베네세 홀딩스 명예고문(79·이하 소이치로 회장).
1992년 그는 오카야마의 출판교육 기업 ‘후쿠타케 서점’의 오너로서 나오시마에 갤러리와 호텔을 겸한 ‘베네세하우스 뮤지엄’을 세웠다. 기업 메세나의 일환이었는데 이후 이곳은 나오시마 예술섬의 출발점이자 중심축이 된다.
호텔방에는 TV가 없고 대신 투숙객들만을 위한 갤러리가 있다. 투숙객들은 나오시마의 자연과 바다, 미술작품을 감상하며 몸과 마음을 정화할 수 있었다.
베네세하우스는 요즘이야 반년치 예약으로 꽉꽉 차 있지만 초기에는 파리만 날리는 시기가 꽤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뚝심있게 다음 계획들을 밀어부쳐 1994년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등 섬 곳곳에 현대미술을 심어나갔다.
2004년에는 세계 최초의 지하미술관인 지추(地中) 미술관이 세워졌다. 자연훼손을 막기 위해 건물을 지하로 배치하고 자연채광을 최대한 살려 설계됐다. 2010년엔 이우환 미술관이 들어섰다. 이 모든 작업은 그와 의기투합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가 맡았다.
나오시마 개발의 테마는 ‘자연과 건축, 예술의 공존’. 소이치로 회장은 이를 통해 외지인들을 끌어들이고, 이들과의 교류 속에서 지역 주민들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어했다. 실제로 지추 미술관이 건립된 2004년 경부터 나오시마를 찾는 관광객은 연간 10만 명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2020년 관광백서’(일본 관광청)에 따르면, 가가와현은 ‘광역자치단체별 외국인 관광객 총증가율(2012-2019년)’이 16배로 전국 평균의 약 4배를 기록했다. 나오시마의 예술 활동이 방문객 유치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레지스탕스 마음으로 섬에 투자
와세다대 기계공학과를 나온 그는 왜 나오시마에 예술을 심을 생각을 했을까.
그는 당초 나오시마에 투자를 시작한 원동력은 ‘분노’였다고 말한다. “오카야마에서 지척이라 청소년국제캠핑장을 만들기 위해 자주 오갔는데, 이 아름다운 곳에 국가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고 방치돼 있다는 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는 것.
당시 나오시마와 인근 이누지마(犬島)는 제련소가 내뿜는 유독가스 탓에 온통 잿빛이었고 인근 데시마(豊島)는 유독성 폐기물 불법 투기장이 돼 있었다. 자신은 ‘레지스탕스’처럼 “국가를 상대로 현대미술을 무기로 삼아 싸웠다”는 설명이다.
나오시마의 기적은 주변 섬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재단은 2008년 이누지마에 ‘제련소미술관’을 지어 경제성장에 올인해 자존심을 잃은 일본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았다. 2010년 데시마에 들어선 흰색 물방울 모양의 콘크리트 미술관은 ‘산업폐기물의 섬’이란 오명을 벗어난 데시마의 정화와 부활을 상징했다.
같은 해에 나오시마를 비롯한 주변 7개 섬(제 2회부터 12개섬)에서 제1회 세토우치 국제예술제(트리엔날레)를 열었다. 소이치로 회장은 매회 ‘종합프로듀서’를 맡아 기획과 재정을 책임지고 있다.
행사는 주민들이 작가들의 작업 과정을 도와주고 작품에 대해 관람객에게 설명하는 도슨트 역할을 하는 등 지역민과 소통하는 축제로 정평이 나 있다.
2010년 1회 때 93만 명, 2013년 2회 때 107만 명이 다녀갔다. 가가와현이 추산하는 경제효과는 제 1회때 111억 엔. 22019년에는 180억 엔, 코로나 사태로 원활치 않았던 2022년에도 103억 엔에 달했다.
‘잘 산다’는 것은
소이치로 회장은 1986년 부친 데쓰히코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40세까지의 도쿄생활을 급히 마무리하고 오카야마에 돌아와 회사를 물려받았다.
아버지의 유지였던 나오시마 청소년캠핑장 건립을 위해 여러차례 섬을 방문하면서 섬에 매료됐고,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그곳에 사는 사람들, 특히 노인의 얼굴에 미소를 찾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오시마 프로젝트’ 착수에 앞서 섬마을 사람들을 위해 중학교와 마을회관, 선박터미널 등을 지었다. 주민설명회만 2000번 이상 열었다고 한다.
주민 참여를 통한 활력 찾기는 1998년부터 시작한 ‘이에(家·집) 프로젝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버려진 민가나 절, 신사, 치과, 소금창고 등을 사들여 그들이 살았던 시간과 기억을 담은 작품으로 재창조했다. 집 한 채가 한 작가의 갤러리가 됐다.
인구감소가 멈춘 섬
7군데에 산재해있는 이 프로젝트를 모두 둘러보기 위해 지도를 들고 나오시마의 작은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각자 길을 찾아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외국인들을 마주친다. 숨바꼭질이라도 하듯이 즐거움에 눈빛이 반짝인다.
어딜 가건 길 안내를 자청하는 할아버지,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할머니, 예쁘게 정돈된 마당이 보이도록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가정집들을 만나게 된다.
나오시마에는 숙박시설이 많지 않으므로 방문객들은 대개 아침일찍 배를 타고 들어가 마지막 배로 빠져나온다. 관광객들이 섬에서 1000엔 씩만 소비해도 50만 명이면 연간 5억엔. 나오시마가 조금은 풍요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지자체와 달리 나오시마는 인구감소가 거의 멈춰 있다. 인근 쇼도시마(小豆島)는 매년 약 300명이 이주해오고 오기지마(男木島)는 도민 130여 명 중 50여 명이 외지에서 온 이주자다. 이 섬에는 이주민들 덕에 초증학교와 보육소가 다시 문을 열었다.
“경제는 문화에 종속돼야 한다”
그는 부친으로부터 자본금 6억엔, 매출 593억 엔 규모의 ‘후쿠타케 서점’을 물려받아 연결매출 4000억 엔 규모의 상장기업 베네세로 키워냈다.
기업철학은 ‘경제는 문화의 종복이어야 한다’는 것. 기업이 경제활동으로 얻은 부를 경제가 아닌 문화에 투자해 좋은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쓰는 것이 인간이 ‘잘 사는’ 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기업은 사주의 이익만이 아니라 사원과 그 가족, 고객, 거래처,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 전체에 대한 공헌(공익)을 중시하는 자본주의로 가야 한다는 것. 그는 이를 ‘공익 자본주의’라 부른다.
2004년 개인재산을 기부해 ‘나오시마 후쿠타케 미술관재단’을 만들었다. 나오시마의 개발과예술제 등에 그와 가족은 2억 5000만 달러(약 3500억, 2022년포브스)가 넘는 비용을 내놓았다.
2012년에는 기존 재단들을 통합해 ‘공익재단법인 후쿠타케 재단’으로 하고 베네세 홀딩스 주식 5%와 현금, 보유 작품, 자산 등을 추가로 기부했다. 주식기부는 이후로도 이어져 현재 재단이 보유한 베네세 주식 지분은 8%(약 1억3600만 달러 상당, 2022년 포브스)가 넘는다. 이 주식에서 나오는 배당금이 매년 베네세에서 재단으로 흘러들어간다.
한 언론이 인터뷰에서 그에게 “회장 가족과 베네세 그룹이 나오시마에 들인 돈이 1000억 엔(9000억 원) 정도 된다던데”라며 질문하자 소이치로 회장은 “그 정도까진 아닐 걸?”이라고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예술을 지원할 자금을 사수하라”
관련 자료들을 찾고 공부하다보니 소이치로 회장의 근황이 더 재미있다. 그는 더 이상 일본에 살지 않는다. 2009년 부부가 뉴질랜드로 이주해 그곳에 정착했다. 자녀가 없어 조카 히데아키(47) 씨를 양자로 들여 후쿠타케 재단을 맡겼다.
일본 언론은 1383억 엔(2022년 포브스)의 순자산을 지닌 그가 뉴질랜드로 옮겨간 이유로 ‘절세’를 꼽았다. 뉴질랜드는 상속세나 증여세가 없고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은 33%(일본 45%)다. 일본의 상속세는 50%.
재단의 예술지원활동은 베네세 주식에서 나오는 배당금으로 유지되는데, 자신이 사망하면 이전 배당금을 유지할 수 없다. 이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 뉴질랜드로 이주해 재단의 ‘지속가능한’ 구조를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여기 더해 최근 베네세는 아예 상장폐지의 길을 택했다. 1월부터 경영진 참여 주식공개매수를 통해 대부분의 주식을 매입하고 3월 4일부로 기업을 비공개로 전환한 것.
지난해 3월 일본 정부가 상장기업들에게 주주가치 확대를 강조하며 주가순자산비율(PBR) 1.0 이하 기업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방침을 내놓은 것과 관련이 있다.
앞으로 행동주의 펀드 등으로부터 ‘기업 이익과 상관없는 예술지원을 그만두라’는 압박이 들어올 가능성을 아예 잘라버리겠다는 것. 일본 언론은 이번 주식공개매수가 80세를 목전에 둔 ‘에술의 패트론’ 소이치로 회장의 최후의 과업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발표에 맞춰 소이치로 회장은 “새 미술관은 35년 이상에 걸친 지금까지의 활동의 집대성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2025년은 세토우치국제예술제도 열리는 해다. 이번에도 소이치로 회장은 축제의 종합프로듀서를 맡을까.
나오시마=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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