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 핵심인데… '보조금 미비' 한국, 반도체 공장 놓친다

이한듬 기자 2024. 4. 21.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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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리포트 반도체 일병 구하기] ② 미·일 등 보조금 앞세워 공장 유치… 한국은 혜택 뒤처져
[편집자주] 불황 터널을 벗어난 반도체업계가 인공지능(AI) 시대 고부가제품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 속도를 높인다. 미국 등 주요국들은 경제성장 핵심인 반도체 공장 유치를 위해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제공할 계획이지만 한국은 아직 없다. 그나마 있는 세액공제 혜택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AI 반도체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나아가야 할 정책 방향과 업계 목소리를 담았다.

대만 TSMC의 자회사인 JASM이 일본 기쿠요시에 건설한 반도체 공장 전경. / 사진=로이터


▶글 쓰는 순서
①반도체 업황 반등 본격화… 글로벌 투자 경쟁 '격화'
②경제성장 핵심인데… '보조금 미비' 한국, 반도체 공장 놓친다
③겨우 얻은 반도체 세제 혜택… 실효성 높이려면


한국의 반도체 산업 경쟁에 비상등이 켜졌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가들이 글로벌 제조사의 반도체 생산시설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한 대규모 보조금 정책을 꺼내 든 반면 한국은 관련 논의에 소극적이어서다. 경쟁국에 준하는 보조금 혜택 없이는 투자 매력이 떨어져 해외기업 유치는커녕 국내 기업의 엑소더스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공급망 주도권 잡는다… 보조금 경쟁 치열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은 ▲설계 ▲제조 ▲후공정 ▲장비 ▲소재 등 공정별로 분화돼 있으며 국가별로 각 공정에 대한 역할이 존재한다. 통상 설계 공정은 미국, 제조 및 후공정은 한국과 대만,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산업구조의 특성상 특정 기업이나 지역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공급망 전체가 마비되는 위험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위기를 겪은 이후 주요국은 반도체 공급망 주도권 확보를 위해 산업 육성전략을 쏟아내고 있다. 세제혜택은 물론 직접적인 보조금 지급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생산 시설을 자국으로 유치,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 국가 경제안보를 확립하겠다는 구상이다.

보조금 전쟁에 불을 댕인 국가는 미국이다. 2022년 반도체과학법을 제정해 527억달러(약 73조원) 규모의 반도체기금을 편성했고 이 가운데 390억달러(약 54조원)를 반도체 제조시설 구축을 위한 보조금으로 지급키로 했다. 25%의 세액공제도 추가로 지원한다.

유럽연합(EU)도 430억유로(약 63조원) 규모의 반도체 법에 합의하는 한편 '공동이해관계에 관한 중요 프로젝트(IPCEI)'를 통해 반도체 산업에 81억유로(약 12조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당초 EU는 회원국의 무분별한 보조금 경쟁을 방지하고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국가 보조금을 규제해왔으나 반도체는 예외로 뒀다.

중국은 1·2차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대기금)를 통해 2014년부터 총 3429억위안(약 64조원)의 금액을 책정한 데 이어 2000억위안(약 36조원) 규모의 3차 대기금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일본 정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위해 2021년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을 수립하고 약 4조엔(약 35조원) 규모의 지원 예산을 확보했다.

반면 한국의 보조금은 '0원'이다. 직접적인 보조금을 지원하는 대신 세액공제를 통한 간접적인 지원에 그치며 이마저도 경쟁국에 비해 뒤처진다는 평가다. 현재 한국의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15%, 중소기업은 25% 수준이며 올해 말 일몰된다. 추가로 10%를 공제해주는 임시 투자 세액공제는 지난해 말 끝났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해외로 눈 돌리는 반도체 기업… 한국 '경고음'


한국이 지원을 망설이는 사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보조금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신규 생산시설을 짓거나 기존에 발표한 투자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 인텔이 애리조나와 오하이오, 뉴멕시코 등에서 1000억달러(약 134조원)를 투자해 첨단 반도체 시설을 짓기로 하자 미국 정부는 최대 85억달러(약 12조원)의 직접보조금과 110억달러(약 15조억)의 대출을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대만 TSMC 역시 미국 정부로부터 최대 66억달러(약 8조9000억원)의 직접보조금과 50억달러(약 6조8000억원) 규모의 정부 지원 대출을 제공 받는 것을 조건으로 미국 내 투자 규모를 400억달러에서 650억달러(약 88조원)로 62.5% 늘렸다. TSMC는 일본에서도 4760억엔(약 4조원)의 보조금을 받고 1공장을 건설한 데 이어 추가로 7320억엔(약 7조원)의 보조금을 지원을 받아 2공장까지 짓는다는 방침이다.

한국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이자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최대 64억달러(약 9조원) 규모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는다. 인텔, TSMC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금액이다. 이를 대가로 삼성전자는 건설 중인 1공장 외에 추가로 2나노미터(nm) 칩을 생산하는 2공장 건설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대미 투자액도 기존 170억달러(약 23조원)에서 400억달러(약 55조원)로 대폭 늘었다.

해외 국가들이 대규모 보조금을 대가로 자국 기업의 리쇼어링을 유도하고 해외기업의 투자까지 적극 유치하는 사이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제재 가능성을 우려해 보조금 지급에 소극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같은 돈을 투자하더라도 더 많은 보조금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투자 전략을 짤 수밖에 없다"며 "한국 정부도 경쟁국에 준하는 대규모 지원책으로 반도체 기업들의 시설투자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계는 반도체 핵심 생태계 육성 및 주도권 장악을 위해 보조금 지원 및 혁신 경쟁을 심화하고 있다"며 "정부는 반도체 육성 사업의 조속한 실현을 위해 경쟁국 대비 여전히 부족한 투자 인센티브와 보조금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한듬 기자 mumfor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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