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450년 된 英 맥주 회사, 포장 로봇도 업그레이드

파버샴(영국)=연선옥 기자 2024. 4. 21. 06: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셰퍼드 님, 생산·에너지 효율 개선에 투자 확대

영국 런던에서 동쪽으로 80㎞ 떨어진 켄트주(州) 파버샴에 있는 셰퍼드 님(Shepherd Neame) 브루어리(맥주 양조장).

매년 2850만ℓ의 맥주가 생산되는 이곳은 영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最古) 브루어리다. 셰퍼드 님 양조장이 파버샴에 공식 설립된 해는 1698년이지만, 지역 비공식 기록에 따르면 최소 1573년부터 여기서 상업적인 양조가 이뤄졌다고 한다. 4세기 넘게 이곳에서 맥주가 생산돼 시장에 판매된 것이다.

450년이 넘은 오랜 역사는 브루어리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에 담가 싹을 틔운 보리(맥아)를 말리기 위해 석탄을 때던 ‘맥아 가마’는 1600년대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사용된 시설이다. 수백 년 전 맥주를 가득 실은 마차가 다니던 좁은 통로로 지금은 트럭이 완제품을 실어 나른다.

파버샴에 있는 셰퍼드 님 브루어리 여과조에서 직원이 작업하는 모습./연선옥 기자

오래된 길에 꾸며진 스팀 룸(steam room)에는 셰퍼드 님이 영국 공학 기술자 제임스 와트에 직접 주문해 100년 넘게 사용한 증기기관이 전시돼 있다. 지름 5m의 거대한 원통 장비가 가동되는 공장 내부에는 영국 엔지니어링 회사 비커스(Vickers)가 백 여년 전 나무로 만들어 공급한 맥아 제조 장비도 있다. 브루어리 전체가 영국 맥주 양조의 역사관인 셈이다.

그런데 셰퍼드 님은 최근 몇 년, 생산 자동화에 막대한 투자를 지속하며 주목받았다. 역사가 오랜 회사일수록 전통적인 생산 방식을 고수하는 것을 중요한 브랜드 가치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셰퍼드 님은 이보다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 여기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셰퍼드 님은 원료·제품 품질 관리와 맥아 담금·발효, 제품 포장 등 전 과정에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그 수준도 꾸준히 높이고 있다. 덕분에 셰퍼드 님은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브루어리라는 명성과 함께,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생산 효율과 제품 품질을 높이는 데 성공한 대표적인 가족 회사로 인정받고 있다.

셰퍼드 님 브루어리 내 전시된 증기기관. 셰퍼드님은 1789년 제임스 와트에 증기기관을 주문해 맥주를 만드는 공정에 사용했다./연선옥 기자

세계적인 홉 생산지로 유명한 켄트 지역 농가에서 원료를 공급받아 맥주를 생산하는 셰퍼드 님 브루어리는 ‘스핏파이어 앰버’와 ‘마스터 브루’, ‘비숍스 핑거’ 등 영국 정통 에일로 평가받는 자사 제품을 포함해 미국 라거 ‘사무엘 애덤스’와 태국 라거 ‘싱하’를 생산한다. 브루어리에서 생산된 맥주는 셰퍼드 님이 런던과 잉글랜드 동남부 지역에서 운영하는 300개의 펍을 포함한 다양한 유통 채널을 통해 국내외 시장에 판매된다.

브루어리를 방문한 지난 3월, 은색 거대한 여과조(Lauter tun)에서 맥아즙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여과조 근처에는 스크린 여러 개가 설치돼 있었는데, 작업자는 수시로 스크린을 확인했다.

마이크 언스워스(Mike Unsworth) 셰퍼드 님 브루어리 디렉터는 “상호작용 스크린을 도입해 생산 공정 전반을 정확하게 제어할 수 있다”며 “이 시스템 덕분에 생산 효율성을 크게 높였다”라고 설명했다.

마이크 언스워스 브루어리 디렉터./셰퍼드 님 제공

지난 2020년에는 효모 배양 과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벽돌 건물의 일부를 허물었다. 그 자리에 강철 프레임을 세우고 스웨덴 산업용 장비 업체 알파라발에서 수입한 효모 배양 플랜트를 설치했다. 실험실에서 배양된 소량의 효모를 대량 증식하는 이 플랜트가 설치되면서 셰퍼드 님의 효모 배양 시스템은 완전히 자동화됐다. 작업 효율성이 개선됐고, 맥주 품질 일관성도 높아졌다.

최근에는 독일 산업용 로봇 제조업체 쿠카(Kuka)가 생산한 로봇이 공장에 새로 설치됐다. 이 로봇은 빈 맥주통을 컨베이어에 올려놓고 세척한 뒤, 맥주를 채워 적재함에 올려놓는 과정을 반복해 하루 최대 2000통을 처리한다.

과거 맥주통을 옮기고 쌓는 작업을 담당했던 직원 프랭크 러쉬(Frank Rush)의 이름을 따 ‘프랭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셰퍼드 님은 20년 전 이미 해당 작업을 자동화했지만, 작업 능력이 더 빠르고 에너지 소비가 적은 쿠카 로봇을 설치하기 위해 추가 자금 투입을 결정했다.

셰퍼드 님이 최근 독일에서 수입해 설치한 자동화 설비. 로봇이 세척한 맥주통에 맥주를 충전한뒤 적재한다./셰퍼드 님 제공

셰퍼드 님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작업 효율을 높인 사례는 역사만큼 오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양조 과정에 증기기관을 활용한 것이다.

1800년대 초까지도 많은 양조장이 맥아를 분쇄하는 작업에 말을 사용했다. 셰퍼드 님은 런던 외 지역의 브루어리 중 처음으로 맥아 분쇄와 펌핑 공정에 증기기관을 도입했다. 1789년 와트의 증기기관을 시작으로 1874년까지 4대의 증기기관이 맥아를 분쇄하고 가열, 세척하는 작업의 동력원이 됐다.

셰퍼드 님의 적극적인 신기술 수용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언스워스 디렉터는 “히트펌프같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공정에 더 많이 도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